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기도설 Mar 28. 2024

[캔디바]

1.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으로 시작하는 인기가수 최헌의 노래를 동생이 대여섯살 즈음 잘 불러대곤 하였다. 이른바 바가지머리에 명랑 쾌활한 작은 아이가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 앞에서 연신 잔망지게 춤을 추면서 얼굴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 '오동잎'을 불러대면 관객들은 귀여워서 십원, 이십원 용돈을 손에 쥐어주고 떠난다.    

 

이삼일 그 십원짜리를 모아서 동생이 나에게 사먹자고 한 것은 '아이스 캔디바'이다. 캔디바가 출시된 지 얼마되지 않아서 아이들 사이에 신비로운 아이스크림이 생겼다고 하여 자매는 백원모으기에 신났던 시절이었다. 하나 사서 내가 한 입 베어 물고는 막대기는 동생 몫이었다. 다 빨아먹을 때까지 쳐다보며 그 맛을 같이 음미했다. 하늘색 옷을 입은 하얀 우윳빛 그 맛은 보석 같은 귀한 맛이었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엄마는 그 시간에 동네 인형공장에 가서 아빠 모르게 인형 눈을 붙이고 계셨던 것 같다. 그러다 우리는 캔디바를 세 네번 사먹고, 엄마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언니가 되어서는 동생이랑 집에서 놀지 밖에 나가 별 짓을 다한다고 된통 심하게 야단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찬장 위칸 멸치도 반찬거리라고 못먹게 했잖아, 친구들 다 사먹는데 한 번은 같이 먹어야지' 말대답을 했었다.    

 

2.

재수하던 때, 학원비만으로도 벅차 보이는 집안살림에 나는 꼬박꼬박 도시락을 챙겨들고 저녁은 극구 집에 와서 먹겠다며 우겼다. 내게 유일한 용돈은 버스 회수권 뿐이었다. 앞 뒤로 앉은 애들이 점심시간 아이스크림계를 한다. 돌아가며 다섯명의 후식을 사는 것이다. 비비빅, 누가바, 바밤바, 빠삐코, 그리고 캔디바. 

회수권 열 장의 묶음을 자르기 전에 열 한장으로 만드는 묘수를 부려서 한 달동안 모았다가 그 모임에서 열외되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었다. 그 때 캔디바는 우유가 녹아 내려 비린 맛이 감돌았다.     


3.

이런 이야기를 친정아버지한테 한 적이 없는데, 손주들이 군것질을 시작할 무렵부터 냉동실에 각종 아이스크림을 수십개를 사다 놓으신다. 손주들이 집에 간다고 하면 냉동실을 확인하고 가득 차있지 않으면 동네슈퍼로 바로 달려가신다.     

명절이면 진수성찬 밥상의 설겆이가 채 끝나기도 전에 손주들은 물론이고 사위와 딸들까지 서로 원하는 아이스크림을 앞다투어 뒤진다. 이 모습에 아버지는 으쓱하여 좋아하는 종류별로 세 네개씩 가득 더 채워 놓으신다.     


우리집에선 31아이스크림도 필요없고, 

붕어싸만코, 누가바, 죠스바, 수박바 등이 최고이다.

그 중에 내가 선택하는 건 캔디바가 아니라 부라보콘이다.     

늘 삼백원씩은 더 비싸서 사먹지 못했던 

언제라도 사다 쟁여둘 수 있는 아이스크림

과자옷을 입은 우윳빛 바삭하고 포근한 맛, 부라보콘. 

아빠가 사줘서 더 맛있는 부라보콘.

지나온 그 시절, 

없어서 두근대던 내 지갑의 그 기분을

다 녹여주는 

보드라운 하얀 맛.

작가의 이전글 [고기파, 사시미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