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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도설 Mar 28. 2024

[햄버거와 양배추]

- 어른다운 어른을 만나는 행운 

[햄버거와 양배추1 ]   

요즘 양배추요리, 양배추 썰기, 다이어트와 건강식으로 핫하다.

닭가슴살에서 이제는 양배추로 이슈화 되면서 유투브에도 요리프로그램에도 자주 올라오는 식재료. 요즘 새로나온 양배추 채칼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      


스무 살이 되던 해.

집에서 지하철 역이 가까웠던 한 골목 코너에 자리잡은 햄버거 가게에서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지하철 역을 오고 갈 때마다 그 햄버거 가게를 지나치면서 '언제이고, 저기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삼십여년 전이니까 당시에는 햄버거 가게가 드물었다. (신기하고, 요즘 말로 앞선 트랜드가 우리 동네에 있구나 하는 뿌듯함의 이유), 12월 말쯤이던가 출입문에 부착해둔 '아르바이트 구합니다'라는 종이를 보자 마자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었다.     


모자를 쓰고, 파란 티셔츠를 입은 사장님이 '어서 오세요'인사로 시작한 아르바이트. 시급이 얼마였었는지 기억이 아련하지만, 두 달동안 꽤 많은 돈을 벌었던 듯 싶다. 오후에 출근해서 밤 10시까지 재료손질부터, 서빙, 계산, 청소까지 두루두루 다 해본 것 같다.   

  

사장님이 내게 가장 먼저 시킨 일은 다 만들어진 '햄버거 포장하기' 유산지를 다이아몬드형으로 두고 오른쪽 먼저 다음 왼쪽 각도를 맞추도록 하는 법, 마지막 접음으로 여며질 수 있도록 하는 법 등 섬세하게 가르쳐 주셨고, 마지막에 꼭 '먹는 사람이 먹을 때 불쾌하지 않도록 하라' 했던 말씀이 떠오른다.   

  

일주일 쯤 지난 뒤 통으로 된 양배추를 큰 도마에 가져다 두고 우선 반으로 갈라 주시고서는 '심지를 잘라내는 법' 이후 다시 이등분하여 중간 심지를 손질하고서는 '국수굵기'의 채를 썰어보라고 한다. 사장님이 아침마다 갈아놓은 칼, 공사장에서 남자들이 낄 법한 목장갑을 끼라고 한다. 최대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양배추 국수굵기로 채썰기'를 하라고 한다. 얇게 써는 것은 두번째 치고, 햄버거 사이에 끼워넣으려면 얼마나 썰어야 할까 싶은데, 중독성이 강하다. 얇게 얇게 썰릴 때마다 그 희열에 두 세시간을 계속 썰고 있으면 수도승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묵묵히 썰었다.     


요리도 장비빨이 되어버린 세상.

지금이야 뚝딱뚝딱 할 수 있지만, 그 때는 일일이 채썰었던 반복적인 행동. 그 사장님은 생애 처음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노하우를 가르쳐 주었을까?

채칼은 김장속 만들 때 무나 써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양배추를 채칼로 할 수도 없던 그 때, 얇디 얇은 채를 썰기 위해, 출근하면 무조건 두 세시간씩 써는 동안 귓가에 계속 울리는 말이 있었다. 그 한 마디.     

사장님의 한 마디 때문에. 멈출 수 없었다.


‘얇게 썰면 썰 수록 햄버거는 더 맛나진다.’

‘먹는 사람이 먹는 순간에 더 행복해지게 해라.’


[햄버거와 양배추2]     

친구들과 떡복이를 해먹을 때,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었던 거였다 해도, 아빠 생신에 미역국을 끓여보겠노라고 정말 곰솥에 미역을 반쯤 넣어 불리고는, 솥 밖으로 미역이 튀어나와 외출했다 돌아온 엄마가 보시고는 화들짝도 잠시 박장대소도 그런 웃음이 다시 있으랴 싶다.     


미역국 사건 이후 한 달 뒤쯤 하게 된 햄버거집 아르바이트는 탄력이 붙었달까, 설걷이를 하건 시종일관 흥얼거리며, 나는 즐겁고 매우 열씸히 일을 하였다. 집에 와서도 양배추와 재료를 사다가 햄버거를 만들어서 가족들에게 은근 잘난 척을 하면서 햄버거 맛을 보여주곤 했다.   

  

하나의 음식이 완성될 때, 사람들이 모르는 비장의 카드.

식감을 좋게 하거나, 맛을 더 돋보이게 하는 히든카드를 혼자 알고 있는 것인 양, 나는 의기양양했다. 두 달이 되어 가던 영업시간 종료 한 시간이 채 남지 않았던 밤 9시 넘은 시각.     

아저씨 두 분이 들어와서 햄버거와 맥주를 시킨다. 맥주는 음료냉장고 가장 밑에 잘 보이지 않았던 곳에 비치되어 있었다. 간혹 맥주를 주문하는 손님이 있곤 했다. 사장님은 맥주를 먼저 가져다 드리고 데스크 안으로 들어와서 햄버거 준비를 한다.  

   

'아가씨, 이리 와서 술 좀 따라봐봐'

'어려보이네' '술 맛이 좋겠네'     

데스크 안에서 포장지를 정리하고 있던 나는 '저요? 저 말씀하시는 거예요?'

오픈주방처럼 데스크 안 한쪽에서 햄버거를 만들고 계셨던 사장님은 바로 손을 멈추고는 계산대 앞으로 가서는 돈을 꺼내신다.     


'햄버거 안팝니다' ,'다른 곳으로 가시죠'

아저씨 손님은 큰 소리로 '아니 그럼 술을 팔지를 말던가'

'햄버거를 맥주와 같이 드시는 손님도 있어서 파는 것일 뿐입니다.'

'네 애인이냐'

'집에 따님 있으실 것 같은데요', '경찰 부릅니다'     

그들은 계산했던 돈보다 2배쯤 되는 돈을 들고 가게를 나갔다.

사장님은 나의 귀가길을 걱정하며, 집으로 전화를 해서 아빠와 동행하게 했다.    

 

집으로 오는 동안 아빠는 내게 서운하겠지만 부탁한다고 하셨다.

"세상에 어른다운 어른을 만나는 건 행운이야!

네가 거기를 그만두어 주는 것이, 사장님을 돕는 일일 수도 있겠다.

너를 위해 용기를 낸 분이니까"               

나의 아저씨 드라마에 어른다운 어른을 만났다는 지안의 대사를 들었던 때와 양배추가 유난히 이슈가 되는 요즘 부쩍 사장님 목소리가 들린다.
얇게 썰면 썰수록 햄버거는 더 맛나진다.’

먹는 사람이 먹는 순간에 더 행복해지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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