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온 상념
*저녁에 온 상념 *
머지 않은 언젠가 내가 떠난 뒤의 세상을 상상했다.
필멸 하는 인간의 짧디 짧은 수명에도
아우성 치는 전쟁 같은 삶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성과 감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위험했던 곡예사의 사랑
세상과 투쟁한다며 올바르지 못했던 결정의 순간들
부질없는 자존심과 끝 간 데 없는 욕심에 목숨 걸었던 시간
무릎 꿇고 엎드려 기도하며 나의 삶과 사랑을 생각했다.
내가 죽어 떠나면 영원한 이별의 슬픔도 잠시,
사람들은 하루에 한 줌 씩 기억의 무게에서 나를 비울 것이다.
남아있는 사람은 기억을 비운 빈 자리에 꽃을 심어야 숨을 쉴 테니까...
내가 사랑했던 이들도 지금 이 순간 함께 살아 숨 쉬는 그 어떤 인간도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은 세상,
그것은 무섭도록 쓸쓸한 상상이다.
가뭄으로 쩍쩍 갈리진 불치의 고질병 가슴앓이
눈물도 나지 않는 바위 같은 단단한 외로움은
처방도 없는 기우제를 지내며 그리움은 늘 방황한다.
여름을 찬양하는 들꽃과 청청한 전나무 숲
그 곳에 내리 꽂히는 정오의 날카로운 햇빛도
소란하던 난장의 도시 빌딩 숲에도
어김없이 찾아 올 저녁과 무섭도록 고요한 밤은
어둠을 덮고 어제와 같은 내일을 또 다시 잉태할 것이다.
길도 없이 달린 어두운 방황의 끝에서
손에 닿은 것은 잡히지 않는 공허한 꿈.
그 지난한 여정을 모두 품고 삭힌 야윈 가슴으로
늦가을 저녁 바람이 낙엽을 몰고 지나간다.-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