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노래

산장에서 부친 편지

by 여목 임재광

깎아지른 절벽을 곡예하듯이 2시간을 돌고 돌아서 산 고개를 넘으면 하늘과 손이 닿는 마을 한쪽 숲에 숨어있는 오래된 움막집이 있습니다. 문명과 선을 그은 산장에는 그 흔한 인터넷도 전화도 없습니다. 푸른하늘과 별 그리고 고요와 청청한 바람만 이따끔씩 다녀 갑니다.

봄에는 숲 속에서 쏟아지는 향기가 취해 쓰러지고 여름에는 이름도 알 수 없는 백만 송이의 들꽃의 유혹에 비틀거립니다.

새 소리, 벌레 소리, 바람 소리가 비발디의 사계처럼 적막강산의 고요를 흔들어 깨웁니다.

가끔 사슴 가족이 내려와 창문 안을 기웃거리고 토끼가 뒷 뜰에서 나를 본체만체하며 풀을 뜯습니다.

산장에서는 해가 뜨고 진다는 것이 유일한 해시계이듯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루 종일 멍 때리고 앉아있기도 합니다.

겨울에는 벽난로에서 장작 타는 소리만 타닥타닥 고요한 적막에 돌을 던지곤 합니다. 첫눈은 가을과 함께 찾아오고 겨울 내내 쌓인 눈은 창문 밑까지 차오릅니다. 봄에는 우주의 모든 별들이 이곳으로 모여서 5월을 찬미하고 짧은 가을은 스쳐가듯 지나갑니다.

나는 일년에 서너 달씩 산장에 머물며 고독이라는 친구하고 그리움을 나누며 때로는 풍덩 빠져서 허우적 거립니다. 가끔 교교시절 여자친구가 어디서 잘 늙어가고 있을까 궁금해 지기도하고 실패한 사랑에 허우적거리던 청춘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죽을 때까지도 알수 없을 사랑과 애증의 모순, 청결한 고독 그리고 살아있슴에 의미를 찾아서 끝도없는 나락으로 빠지기도 합니다. 인간의 영악한 두뇌에 그려진 사랑, 차라리 고독을 선택하여 그리움과 동거하고싶은 시간들을 오롯이 사랑하고 싶기도합니다.

매일 반복해도 다르지 않고 빠르게 달려가는 시간이지만 올해도 벌써 허리가 뚝 잘려나갈 시간입니다.

이름도 친숙하던 바이러스의 습격에 세상을 아우성의 패닉에 빠트리는 올 해는 그 어느 해보다 더 숨차게 달려가는 것 같습니다. 문득 내년 오늘의 내 모습을 어떠할지 궁금합니다.

나이 때문인지 바이러스 때문인지 건강하자 건강해야 한다는 덕담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주고 받습니다. 불행하게도 천성이 부지런하지 못해서 게으른대로 그냥 하고싶은 거하며 살다가 떠나렵니다. 그리고 나를 기억 안에 두었던 분들을 위한 감사 기도도 잊지않을 것 입니다.

다만 바램이 있다면 별명이 종합병원인 아내를 보살펴 주고 보낸 뒤에 딱 몇 일만 아프고 잠자듯이 떠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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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난산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며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

가게 문틈으로 도망쳐 나온 피자 굽는 소리

카폐에 둘러앉아 수다 떠는 여인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이것은 하지마라, 저것은 먹지 말라는

아내의 쉼 없는 잔소리가 그립다.

사십년을 날마다 지지고 볶고하던

살아있음을 감사케하는 잡다한 소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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