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잃은 벤치
미국이 코로나 19 확진자가 290만 명을 목전에 두고 사망자는 무려 13만 명에 이른다. 이 와중에도 트럼프 미 대통령은 11월 재선의 승리를 위해서 지지층을 결속하려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백악관 참모들도 2차 코로나 팬데믹을 우려하며 집회를 만류를 했다지만 권력 욕심에 눈이 먼 대통령 트럼프는 자국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미국에 젖 줄을 댄 멕시코마저 미국과 국경을 잠정 폐쇄했다니 아니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반면 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캐나다는 확진자 10만 명, 사망자 8500명으로 코로나가 하향 곡선으로 내려갔다고 발표했다. 미국에 비해서 십 분의 일도 안된다고 8500명이 날벼락 맞고 사망한 숫자를 다행이라고 해야 되는 건지 나 같은 소인배는 알 수가 없다.
캐나다 역시 미국과 국경을 몇 달째 폐쇄하였으나 미국의 코로나 2차 팬데믹으로 국경 폐쇄는 연장될 것이라 한다. 그러나 긴급을 핑계로 미국 시민들이 캐나다를 특별 입국하여 여행하는 사례가 증가해 캐나다 정부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웃픈 뉴스도 나왔다.
혹자가 말하기를 캐나다는 산과 나무와 호수만 있는 나라라며 아름답고 청정한 일등 자연환경 국가다. 작은 도시를 병풍처럼 둘러싼 거대한 산들의 풍광은 사계절이 다른 그림으로 일상에 다가와서 지친 안구를 정화시킨다
내가 사는 도시는 밴쿠버에서 약 1.5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시골 도시다. 시골 이미지 때문인지 사람들이 촌스럽도록 순수하여 모두가 이웃처럼 지낸다. 오래전에 사업장과 가까운 곳에 임시 정착한다고 밴쿠버에서 이 도시로 이사 온 후로 아예 정착하게 되었다. 작은 시골 도시지만 극장 갤러리 문화센터 월마트 코스코 등등 도시의 면모는 완전하게 갖추고 있다. 다만 한인 마켓만 없을 뿐이다.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가에서 책을 읽다 졸다를 반복했다. 비 오고 흐리기를 반복하던 날씨가 며칠 만에 쏟아지는 햇 살을 타고 푸른 하늘에 하얀 솜구름이 떼 지어 나들이를 한다. 머리에 헤드 폰을 끼고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딱히 공원이라고 하지만 동네가 모두 공원처럼 푸르고 아름답다.
노란색 속 살이 비쳐 색정스럽게 입을 벌리고 유혹하는 나리꽃에 소나기처럼 햇살이 쏟아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 세상을 무차별하게 공격하며 휘젓고 뛰어다니는 바람에 언제 왔다 떠났는지도 모르게 봄은 도망가고 어김없이 여름이 발등에 떨어졌다. 햇볕이라면 환장하는 서양 사람들조차도 모두 몸을 감추고 집안에 꼭꼭 숨었는지 눈에 잘 띄자 않는다.
내가 걸어가는 앞에서 나를 향해서 걸어오는 부부가 보였다. 나는 그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도로를 횡단해서 건너편 길로 걸어갔다. 잠시 후 내가 가는 방향 앞에서 노인 한 분이 걸어오다 나를 보더니 길 옆으로 바짝 붙어서 나를 피해 지나갔다. 다시 신호등 없는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좌 우를 살피는데 길 건너에서도 아주머니 두 사람이 나와 마주 보며 건너려다 다시 뒤로 돌아 모퉁에 피해서 내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산책을 나가면 길에서 부딪치는 모든 사람들은 평소 알고 지낸 이웃처럼 웃으면 인사를 했던 때가 불과 몇 달 전이다. 그러나 이제 이웃은 더 이상 없다.
사람들은 서로 웃지도 않고 인사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피해서 도망가기에 급급하다. 길이나 공원에는 사회적 거리를 두자는 그림이 잘 보이는 곳에 큰소리로 외치듯이 서 있다. 이제 사람들은 함께 살지 않고 더불어 살지도 않고 사람이 사람을 피하면서 사는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코로나 이전처럼 함께 어울려 살던 세상은 다시는 없을 거라고 말한다.
딸네 집에 잠시 가 있는 아내에게서 매일 카톡이 온다. “가급적 외출하지 말고 외출하면은 마스크 꼭 쓰고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해서 다니라”라고 습관처럼 잔소리부터 시작한다.
아내가 딸네 집에 간지 한 달이 거의 다 되어간다. 외출은 동네 산책 서너 번이 고작이고 그 좋아 햄버거를 사 먹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별 궤적을 찍는다고 밤에 산속으로 들어가서 카메라와 단 둘이 다섯 번 밤 새운 것 외에는 없다.
전나무 숲이 울창한 공원에 노 부부가 햇볕은 받으며 즐겨 앉아있던 벤치는 몇 일째 비어있다. 가끔 지나치다 마주치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수다를 떨며 나를 붙잡던 할머니도 몇 일째 보이지 않아 궁금해졌다.
빈 벤치는 오늘도 노부부와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를 다시 만나 잡다한 수다를 듣는 기쁨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