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에 오는 것

삶과 이별의 두 그림자

by 여목 임재광

장인은 평생을 교단에서 교육자로 사셨고 교회 장로로 봉사하셨다.

지적 장애인 자원봉사 활동을 KBS "현장 사람들" 프로에서 방영하기도 했다.

서울시에서 "서울 시민상"을 받으신 분이다.


1남 6여 처갓집.

외아들은 코로나 역병 때 치매를 앓다가 정신병원에서 홀로 떠났다. 사업을 매번 실패를 하고 부모에게 손을 내밀고 며느리는 목회를 한다며 밖으로 돌았다.

큰 손자는 미국에서 목회자이며 둘째 손자는 할아버지 산소가 어딘지도 모른다.

큰 처형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딸 5은 미국 캐나다 흩어져 살며 막내 딸만 서울에 산다.

장모님 떠나신 후,

아들은 황소 만한 아들 둘 데리고 아버지를 모시겠다며 스물댓 평 남짓한 방 두 개 짜리 좁은 아파트로 밀고 들어왔다. 바보처럼 선한 장인은 밀고들어오느아들가족을 물리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스트레스와 고통이 얼마나 무겁게 장인을 짖눌렀을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마침 서울 현장으로 발령 받아 잠실 아파트의 세입자를 내 보내고 장인을 2년 동안 모셨다.

몇 년 후,

평온하게 지내시던 어느 날, 이민 비자를 받고 "이민 간다"라고 장인에게 말씀드렸다.

이민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사위 딸에게 들었을 때 장인이 받은 충격은 짐작할 수가 없을 것이다.

2월 첫 주 금요일, 그날 아침은 유난히 춥고 눈 바람이 아파트 건물 사이를 휘젖으며 들쑤셔대고 있었다. 오늘 떠난다는 인사를 못들은 체 하시며 검은 트렌치 코트를 입고 축 처진 어깨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시던 장인의 뒷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가 이민을 떠난 9 개월 후, 장인은 하늘 나라에 계신 장모님을 만나러 떠나셨다.


장인은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당신의 가묘를 정성 들여 가꾸었다.

가끔 한국에 오면 장인 산소에 간다. 산소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흉물스러운 무연고 묘처럼 숲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서울에 사는 처제와 우리는 하루 종일 주변 나무를 자르고 풀 뽑고 정리를 했다.

장인은 사후의 당신 묘지에 왜 그렇게 집착을 하셨는지, 나는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아내와 딸에게 부탁했다.

우리가 떠나면 화장해서 즐겨 걷던 동네의 호수에 뿌려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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