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는 게 화가 나.
눈부시게 찬란한 봄 어느 주말.
아내와 함께 봄날의 저녁 빛을 맞으며 레이크를 걷고 있었다.
아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여보, 냄비를 오븐에 얹어 놓고 Power On 해 놓은 채 그냥 나온 거 같아."
"뭐? 뭐라고???..."
지난해 가을, 나는 보통 한 시간 걷기를 했는데 그날은 일찍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현관문을 열자 집 안이 타는 냄새의 연기로 뿌옇게 가득 찼다. Oven 위 냄비 안에 감자는 숫덩이가 되었고 냄비는 벌겋게 달아 있었다. 평소처럼 1시간 운동을 하고 왔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날의 악몽 같던 기억이 번개처럼 스쳤다.
우리가 집에서 나온 지 이미 30분 정도 지났다. 지금 쯤이면 냄비가 과열되어 불이 났을 거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나는 이리저리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집으로 뛰기 시작했다. 집에 불이 났을 거라는 상상을 하며 뛰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평소 십여분이면 동네에 도착하는데 뛰고 또 뛰어도 동네가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뛰다 쉬다를 반복했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겨우 동네 초입에 도착했다.
하늘을 보니 연기는 없고 불이 난 듯한 주변 정황은 보이지 않았다.
"집 내부에서 불이 아직 외부로 번지지 않았을 거야."
나는 불안한 상상을 안고
터질 듯한 심장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헐~ Oven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집안은 평소처럼 정돈된 청결이 새댁처럼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울을 수도 없었다.
웃을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