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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Apr 24. 2023

뉴욕이 사랑하는 작가, 호퍼가 왔다!

서울 시립 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개인전 ⟪길 위에서⟫


Hopper has come! 드디어 국내에도 호퍼가 왔다. 



에드워드 호퍼, 내면의 풍경을 그대로 옮기고자 했던 작가.


19세기 사진의 등장으로 인해 회화 작가들 사이에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하지만 사진이 눈에 보이는 세계를 정밀하게 재현할 수 있게 되면서, 회화란 세계를 최대한 유사하게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모방이나 이상화를 강조했던 고전 명화들은 차차 부정되기 시작하고, 회화란 상상과 무의식, 그리고 우연의 영역까지 그 외연을 확장했다. 기존 ‘회화’의 규율과 이상이 해체됨과 동시에 선과 색, 표면 등으로 이루어진 추상 회화가 미술계의 최신 유행을 선도했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 때문일까. 회화가 현실을 온전히 재현해야 하는 의무에서 자유로워진 후에도 '기록'의 도구로서의 회화 개념은 시대를 초월하여 건재하다. 어쩌면 인간이 망각이라는 본성의 한계를 거슬러 자신이 보고 느낀 세계에 대하여 보다 정확한 기록하고자 하는 갈망을 가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세계를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느낀다기보다, 내면세계와 조응했던 외부의 세계의 순간순간을 기록하고자 하는 갈망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햇살 아래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웃고 떠들었던 피크닉, 아이의 첫 옹알이를 포착했을 때의 감격, 가까운 이를 잃은 후 상실 속에 맞이해야 했던 쓸쓸한 풍경이나 퇴근 후 지친 심정으로 거닐었던 거리의 공허함 같은 것들 말이다. 삶을 구성하는 순간들은 모래알처럼 우리의 손아귀를 빠져나갈지라도, 빠르게 스쳐 지나가버리는 일상과 그 안에서 느낀 다양한 감정들은 우리의 존재와 깊이 맞닿아있는, 우리를 존재의 기반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 〈햇빛 속의 여인〉, 1961. 리넨에 유채, 101.9 × 152.9 cm. 휘트니 미술관 소장.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에드워드 호퍼 역시 캔버스와 물감이라는 ‘제한적인’ 재료를 가지고 그의 내면에 간직된 세계의 이미지를 가능한 정확하게 포착하고자 했던 작가였다. 비록 그가 한창 그림을 그리던 시대는 추상 회화가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무언가를 재현하는 회화는 '구식'예술이 되어가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는 꿋꿋하게 직접 신체로 보고 느끼고 마음으로 그렸던 세계를 캔버스 위로 옮기고 싶어 했다. 

그는 세계를 적확하게 담아내려 하지 않았다. 그저 그는 보고 느낀 세계를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욕망은 10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관람자들이 호퍼의 작업에 깊이 몰입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호퍼가 바라본 쓸쓸하고 고독한 도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여전히 닮아있다. 



대도시의 산보자 VS 자연 애호가


에드워드 호퍼의 ‘밤의 창문’(1928. 캔버스에 유채, 73.7 × 86.4㎝). (C) 2023, 모마 소장.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막 씻고 나온듯한 여성의 뒷모습과 어두운 건물, 가만히 빛나고 있는 조명, 그리고 저녁 바람에 선선히 날리고 있는 커튼의 모습은 치열하게 도시의 삶을 견뎌낸 이의 적막과 쓸쓸함을 담아낸다. 호퍼의 그림 속에는  사람들이 ‘함께’ 거주하는 빌딩에서도 파편화된 개체로서 무심히 하루를 마감하는 도시인들의 쓸쓸한 삶이 놓여있다. 


에드워드 호퍼, 〈이층에 내리는 햇빛〉, 1960. 캔버스에 유채, 102.1 × 127.3 cm. 휘트니미술관 소장.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그러나 이번 전시의 특이점이 있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보편적 고독을 포착한 뉴욕의 작가'로서의 호퍼 보다도, 삶의 일부를 자연과 가까운 시골에서 보내며 자연에서의 시간을 즐기던 호퍼의 면면을 엿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뉴잉글랜드나 케이프타운에서 마무리된 작업들은 호퍼 특유의 깔끔하고 정갈한 풍경을 보여주지만, 보다 생동감 넘치고 밝은 색상으로 그려졌다는 특징이 있다. <이층에서 내리는 햇빛>은 그가 많은 시간 여가를 보냈던 케이프코드에서의 일상을 담아낸다. 2층 햇살에로 내리 쐬는 햇살과 건물을 둘러싼 하늘과 숲을 보면, 자연과 빛을 애정했던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 〈작은 배들, 오건킷〉, 1914. 캔버스에 유채, 61.6 × 74.3 cm.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오건킷에서의 작업도 비슷하다. 오건킷은 이미 환상적인 빛과 거친 파도로 인해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해 온 공간이다. 푸른 바다는 높은 채도로, 보트와 대지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선명하고 밝은 색감으로 그려졌다. 그림 앞에 서는 순간 청정하게 보존된 바다 마을의 여름이 파도치듯 몰려오는 듯하다. 자연 속의 호퍼는 도시의 쓸쓸함을 그릴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오랫동안 풍경을 관찰한 이 특유의 섬세한 시선과 붓질로 자연의 면면을 화폭에 담아낸다. 


에드워드 호퍼, 오전 7시, 1948, 캔버스에 유채. 휘트니미술관 소장.



글을 마무리하며


호퍼에게 위대한 예술이란 다름이 아닌 인간이 느끼고 경험한 세계를 가능한 정확하게 캠버스에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미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가 느낀 도시의 공허에, 그리고 자연의 눈부심에 함께 공명한다. 


전시장에는 호퍼가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전에 그렸던 삽화와 그녀의 아내가 잘 모아두었던 장부와 기록물들을 엿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화가로 살아가고자 했지만 전업 작가가 되기에는 충분한 인지도를 쌓지 못했던 시절, (약 10년 정도 된다고 한다)  그가 남긴 일러스트들은 지금 이 시대의 '전업 작가'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독특한 인상을 남겨주리라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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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의 개인전 티켓은 개막 전부터 13만 장이 팔렸다. 얼리버드 티켓값은 성인 기준 1만 원이고, 필자와 같이 얼리버드 기간을 놓친 이들은 1만 7천 원을 지불해야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님에도 많은 이들이 호퍼의 개인전을 고대하며 기꺼이 티켓 비용을 지불한 까닭은 무엇일까. 프랑스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두 시간을 대기해야 입장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현대인들을 사로잡은 호퍼의 매력이란 무엇일까_ 전시장에서 직접 확인해 보자.


전시는 8월 20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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