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아이를 견디지 못하는 내면을 다뤄가는 길이 아닐까
한 주를 쉬는 동안에는 정말 평안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자마자, 눈앞에는 밀린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월요일 오전이 되자 휴가 동안 연락을 주셨던 어머님께 전화를 드리기 시작했다. 아이에 대한 불안은 부모의 마음을 가장 먼저 움직이게 하나보다. 쉬는 동안 받은 여러 통의 연락은 모두, 그 불안에 관한 것이었다. 아이 실력이 퇴행하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학원을 끊고 해외에 있는 내게 연락을 하셨던 어머님도 계시고, 아이가 학원에서 받아온 피드백에 불안감이 높아지셔서 급히 보강을 부탁하시는 어머님도 계시고- 그리고 아이가 학원 거부 증상을 다시금 나타내기 시작하자 다른 과목 선생님도 소개시켜줄 수 있는지를 여쭤보는 어머님도 계셨다.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지만. 아이에게 문제가 발생할 경우 어머님들의 일차적인 반응은 아이에게서 보이는 이 문제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하여 당장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어머님들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싶은 불안함과 정죄가 있을 것이고, 그리고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하여 아이의 문제를 단번에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모든 어머님들에게 그런 모습이 있지만 사회적으로 아주 성공한 어머님의 경우는 더욱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 어머님은 아이의 모든 일정을 계획하고, 아이가 조금도 실수하지 않은 플랜 위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어머님은 아이의 모든 시간을 관리하시곤 하신다. 아이의 쉼까지도 하나의 일과로 기록하고 계획하시는 모습을 볼 때면, 아이는 누구의 삶을 사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주 어릴 때부터 유학을 다녀오고, 지금은 모두가 선망하는 국영수 학원을 다니고 있다. 학교에서는 임원도 하고, 운동도 꽤나 잘하고 유머감각도 좋은 친구다. 겉으로 보기에 아이에겐 큰 문제가 없어보인다. 문제는 학원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지만, 들어가서의 아이 생활이 아주 엉망이고_ 언젠가는 이것이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머님은 아이가 조금이라도 문제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그 피드백을 빠짐없이 기록해 보여주시곤 하신다. 그럴 때면 나는 늘 질문하게 된다. 도대체 이 아이는 왜 그렇게까지 모든 걸 잘 해내야만 하는 걸까. 실패조차 허락되지 않는 삶 속에서 이 아이는 얼마나 숨이 막힐까.
아이의 결점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어머님의 육아 방식은, 어쩌면 어머님이 스스로의 결점을 보지 않기 위해 평생을 버텨오신 결과는 아닐까. 어머님은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분이시다. 많은 이들이 그분을 존경하고, 그 화려한 이력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그 길까지 오는 동안, 어머님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희생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노력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완성된 ‘성공한 자아’를 만들어내기 위한 싸움이었을지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결점’은 허용할 수 없는 단어가 되었고, 그 단어 하나로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어머님은 더 완벽하고 더 인정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 애쓰셨을 것이다. 결점을 느끼는 순간이 올 때마다, 그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사회적으로 유효한 잣대들—좋은 엄마, 성공한 여성, 이상적인 가정—안에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끼워넣으려 하셨던 건 아닐까.
하지만 아이를 기르는 일은,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통제가 되지 않는 일이다. 아이는 내가 정해놓은 대로만 자라주지 않고,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딱 맞게 성숙해지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아이의 결핍이 드러날 때마다 눈에 보이는 성과와 성취를 통해 불안을 덮고자 하는 어머님의 시도는, 때로는 안타까울 만큼 절박하게 느껴진다. 이 모든 게 불완전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어머님이 짠하기도 하다.
정신분석학자인 융은 "우리를 자극하는 타인의 모습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쩌면 아이를 견딜 수 없는 그 상황 속에서 내면의 억압된 감정이나 어두움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문제에 대하여 눈에 보이는 성취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건 빠르고 손쉬운 방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방법은 스스로를 마주하지 않으려는 일종의 회피전략이자, 장기적으로 아이가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인으로 자라게 할 뿐이다.
결국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아이를 잡는 게 아니라, 아이를 견디지 못하는 자신의 내면을 다뤄가는 길이 아닐까.
“Everything that irritates us about others can lead us to a better understanding of ourselves”
- Carl Jung, <Memories, Dreams, Ref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