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도 되는구나”를 배울 수 있다면

눈속임하는 아이에 관하여.

by 정미

비가 많이 온다. 오늘 비가 오면 내일은 곳곳에서 봄꽃이 필 것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축축하거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결국 이 비는 꽃을 피운다. 견디기 힘든 시간도, 가라앉는 마음도 때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가르침도 그런 것 같다. 당장은 고되고 무거울지라도, 언젠가는 그 안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무언가가 있음을 믿게 된다.




2025년 3월 21일


아이 수업을 그만두었다.


아이가 실력에 비해 시험을 너무 잘 보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의심을 하던 무렵이었다. 아이가 수업 중간에 시험을 볼 때도,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었단 사실이 오늘에서야 확실해졌다. 아이는 완벽하게 문제집 뒤편에 있는 평가 문제들의 답안을 작성했지만, 답지가 없는 내가 직접 만든 문제들에 대하여는 답하지 못했다. 같은 문제였고, 몇 문제는 문제집 문제보다 훨씬 쉬웠음에도 말이다.


아이에게 내색을 해야 할지 잠깐 고민하다가. 들추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아이가 내가 눈치챘다는 사실에 대하여 눈치를 챘는지는 모르겠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에게 공부가 하기 싫으냐고 물었다. 아이는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유일하게 솔직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선생님과 진실하게 관계할 수 있는 아이들이 더디든 빠르든 성장할 수 있다. 거짓말을 칠 수는 있어도, 거짓된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는 아이들이, 그러니까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에게 성장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 아이와 수업을 하던 날, 그 점에 대하여 더 명확해졌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에게 공부가 하기 싫으냐고 물었다. 아이는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유일하게 솔직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거짓되기 시작한 아이는 자신이 만든 거짓 자아를 유지하기 위하여 할당된 에너지를 다 써버리게 된다. 그리고 교사와 보다 친밀하고 가까워지는데 불편함을 느낀다. 언제 들통날지 모르는 거짓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님은 좋으신 분이었다. 소녀 같기도, 공주 같기도 했었다. 어머님은 늘 예의를 갖추고 품위를 잃지 않고자 하셨다. 그리고 나는 이 아이를 보며, 아이의 가정이 거짓을 덮어두고 숨기는데 능숙하단 마음이 들었다. 이런 가정에서는 아이의 감정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는 자라가면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거짓되더라도 '보이는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학습했을 것이다.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진실한 상태에서 자유하게 지내는 것보다 더 중요할 테니까.


오랫동안 수업을 하면서 말을 하지 않는 아이, 거짓말을 숱하게 반복하는 아이, 실수 하나에도 눈물을 쏟는 아이, 조금만 혼이 나도 견딜 수 없어하는 아이 등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왔다. 결과적으로 말을 하지 않던 아이는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하고, 거짓말을 하던 아이는 그냥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면서 관계에도, 그리고 학습에도 변화가 있었다. 실수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던 아이나 혼나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하는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갈 수 있었다.


아이는 자라가면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거짓되더라도 '보이는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학습했을 것이다.


하지만 끝끝내 거짓된 태도를 고수하며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왜냐하면 그들과는 진정한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학습의 기초는 관계다. 아이는 관계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그 안에서 비로소 배우기 시작한다. 어른의 애정 어린 시선과 따뜻한 말, ‘나는 받아들여지고 있구나’ 하는 감각,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이 어른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모든 것들이 쌓여 한 아이를 성장하게 만든다.


아이가 자신을 가장하거나 방어하기 위하여 에너지 쓰기를 멈추고, 그 에너지를 남겨두기만 해도. 아이는 조금 더 많이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좀 더 행복하게 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아이의 마음이 이미 굳어져있다 해도. 언젠가 아이를 다시 만났을 때는, 아이가 누군가의 곁에서 진실되어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학습보다 더 중요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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