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70주년을 맞이하며, 전쟁을 "기념"하는 전시를 다녀왔습니다.
⟪낯선 전쟁 UNFLATTENING⟫ #1.
2020.06.25-2020.09.2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3,4 전시실 및 공용공간, 멀티프로젝트 홀.
#1. ⟪낯선 전쟁 UNFLATTENING⟫의 1-2부 살펴보기.
20년간 함께 살았던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전쟁에 대하여 배우던 날 할머니에게 전쟁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끝끝내 저의 질문들을 못 들은 척하셨었죠. 어린 저였지만 할머니가 다신 전쟁을 회상하지 않으려고 하시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6.25 전쟁’. ‘분단의 아픔’, ‘우리의 소원, 통일’
이제는 너무 낯선 단어들이 되었습니다. 여름이 되면 동남아 휴가를 떠나고, 선행 학습을 하기 위하여 학원과 과외를 병행하고, 스마토폰 게임이나 SNS를 하며 여가 시간을 보내는 우리 아이들에게 전쟁이란 어쩌면 낯설 수 밖에 없는 단어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초등학생일 때 당시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전쟁이나 통일에 대하여 어른들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탄식을 금치 못하시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세대의 아이였던 제가 이제는 성인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쳐보니, 우리 아이들에겐 제가 바로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더군요.
'빠르게' 그리고 '자주'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우리 사회에서 ‘전쟁’은 점점 더 낯선 단어가 되어 가는 듯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오랫동안 문을 닫았던 국립현대미술관이 새로운 전시 <낯선 전쟁>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6.25 전쟁 70주년에 맞춰 6월 25일에 전시를 오픈하고 9월 20일에 마감합니다. 과연 전쟁을 기념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전쟁을 직접 경험한 전쟁 1세대나 실향민, 그리고 이산가족들은 점차 줄어드는 이때에 예술로 전쟁을 회고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이번 전시는 '직, 간접적으로 전쟁의 영향을 받은 세대'에서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로의 세대교체과정에서, 전쟁이 점차 '개인의 체험'에서 '역사적 사실'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한 때 개개인의 상실이자, 공동체적인 상처였던 6.25 전쟁의 기록물을 재조명합니다. 물론 이번 전시는 전쟁의 파편들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습니다. ⟪낯선 전쟁⟫은 지금도 지구 어디선가 진행 중인 내전을 기억하게 하는 동시에, 변화하고 있는 국가 개념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는 전쟁과 그 폭력성에 대한 사유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지금을 하는 우리의 윤리적 책임을 요구하죠.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관람객들은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전쟁’과 이를 반대하는 가장 주된 이유인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깊이 있는 사유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1부에서는 ‘낯선 전쟁의 기억’을 전시합니다. 전쟁 세대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국 전쟁은 어떤 모습일까요? 전시의 1부는 1950년대, 전쟁의 한 복판에서도 붓과 사진기를 놓지 않았던 국내 화가들과 외국 기자들의 자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김환기, <판잣집>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김환기의 <판잣집>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김환기는 당시 종군 화가단에 소속된 작가였습니다. 그는 해군의 화가로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바다 근처에서 경험한 전쟁을 주로 그렸습니다. 1부 작품들을 전반적으로 어두운 색감에 암울한 현실을 담고 있으나, 김환기의 그림은 유난히 밝고 다채로운 색감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이목구비 없는 얼굴이 어딘가 서늘한 느낌을 주지만, 무심한 듯 평온해 보이는 색감들은 전쟁통에서도 일상의 평온함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화가의 마음을 투영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윤중식, <피란길>
전시장을 거닐다 보면 한 구석 모여 있는 피란길 연작을 마주칠 수 있습니다. 피란길 연작을 그린 윤중식 작가는 평양 미술학교 출신이자 6.25 전쟁 당시 종군화가로도 활동했습니다. 작가는 빠른 필치로 여러 점의 피란길 연작을 그려 전쟁의 난리를 피해 고향을 떠나 피란길에 오른 사람들을 그림으로 생생하게 기록해왔습니다.
작가가 유독 피란길의 정한을 담은 그림을 많이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작가의 개인적인 사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윤중식 작가는 가족들과 남으로 향하는 피란길에 올랐다가 그만 아내와 딸의 손을 놓치고, 홀로 가난 아이와 막내를 업고 부산까지 가야 했습니다. 가족을 잃고 자신에게 달린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홀로 부산으로 가야 했던 작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그림에는 미처 다 담을 수 없겠지만, 작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피란길의 긴박함과 긴장, 그리고 그 안에서도 사그라들지 않는 인간을 향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그림뿐 아니라 한국 전쟁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담은 외국 기자들의 사진과 영상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전시장을 찾기로 예정되어 있던 외국 작가들의 그림이 코로나 여파로 인하여 운송되지 못했기 때문에 미술관 측에서는 스크린을 설치하여 당대 작가들의 자료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타지에서 온 젊은 작가들 덕분에 우리도 다 알지 못하는 우리 역사들의 조각이 전시장에서 재생된 것입니다.
그들은 주로 전쟁을 일으킨 국가에서 파견된 병사들로서, 이방인의 시선으로 우리 역사의 단면을 기록하였습니다. 전쟁 통에 연속되는 상실을 겪어야 했던 고달픈 얼굴과 눈물겨운 현실, 그 안에서도 사그라들지 않는 아이들의 천진함과 미소 어디서나 볼법한 보편적 인류의 모습에 가까운 듯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열강의 정치권력 투쟁의 틈에서 분단이 되었고, 언제 전쟁이 발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휴전국으오 7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2부에서는 전쟁 이후 휴전상태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를 돌아봅니다. 성인 남성이라면 모두 군대에 가야 하고, 군대를 가지 않는 자는 루저가 되는 나라, 그리고 영토의 규모에 비해 막대한 예산을 무리하게 방위비에 투입하는 나라, 국가주의와 군사문화를 빼놓고는 사회를 설명할 수 없는 기형적 병영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을 다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노순택, <좋은, 살인>
노순택은 <좋은, 살인>(2008-2009) 연작을 통하여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군수 산업 등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전쟁과 군사주의를 다룹니다. 작가는 성남 서울비행장에서 개최되는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풍경을 덤덤한 시선으로 담아내고자 합니다.
남자아이들의 로망인 총과 탱크를 실물 크기로 볼 수 있는 이 행사장은 세계 무기상들이 모여 계약을 체결하는 곳이자 가족들의 주말 나들이 장소이기도 합니다. 가족애와 주말의 낭만, 그리고 국가의 폭력 수단이 뒤섞인 공간에서 우리는 곧 전쟁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도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마주하게 됩니다. 아이는 사진기 앞에서 천진하게 기관총을 발사하는 모습은 살생의 수단의 일종의 유희가 되어 우리의 일상에서 가볍게 치부되는 현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기도 하죠.
작가는 이 아이러니하고 이질적인 풍경 속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을 렌즈에 담고자 했습니다. 그는 직접적으로 전쟁의 슬픔을 보여주거나 비판하지는 않지만 담담한 시선으로 일상 곳곳에 묻어 있는 분단의 흔적과 우리 사회의 특수한 상황을 담아내어, 이에 대하여 깊이 있게 사유하게 한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한석경, <시언, 시대의 언어>
한석경 작가는 여성 작가입니다. 1,2부를 통틀어 여성 작가를 찾아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인지 유독 작가의 작업이 기억에 남습니다. 재미있게도 ‘남성적인’ 전쟁을 이야기하는 자리여서 그런 것인지, 유독 남성 작가들의 작업이 많았습니다. 전쟁은 모든 국민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 다르게 겪은 것인데, 유독 남성들의 전쟁이 두드러지는 부분이 의문입니다. 전쟁의 역사 속에서도 여성은 지워지거나 ‘억센 엄마’ 정도로 남은 건 아닐지, 의문이 드는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필자는 한석경 작가도 남성 작가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점은 조금 부끄럽기도 합니다.)
<시언: 시대의 언어>는 평면, 설치, 각종 아카이빙을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설치 작업입니다. “시언”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사전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나, 작가의 작업 속 ‘시언’은 그녀의 외할아버지의 이름입니다. 작가는 외할아버지 ‘박시언’이라는 개인을 통하여 전쟁의 역사에 접근하고자 합니다.
<시언>의 공간은 작가의 외할아버지 ‘시언’의 수집품들로 가득합니다. 작가의 외할아버지는 고향 땅을 밟을 수 없고, 고향에서의 삶을 더 이상 영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하자, 집착적으로 북한과 관련된 수집품들로 방을 채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어린 시절 작가는 외할아버지의 방에 들어가 때마다 ‘북한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고도 하죠.
작가는 보편의 문제 속에 가려진 개인의 삶을 드러내고, 사적인 서사를 통하여 거대한 역사를 추적합니다. 작가에게 북한이란 이념의 전쟁에 속 ‘우리’의 ‘주적’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시언>을 통하여 북한을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의 공간이자,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한 상상의 공간으로 재구성하고자 합니다. 실향민으로 한평생을 살았던 그녀의 외할아버지 <시언> 통하여 관람객들은 한반도의 북부 역시 그저 한 인간이 삶을 영위하였던 삶의 터전이라는 사실을 반추하게 됩니다. 동시에 이미 사유를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로부터 거리를 두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와, 이미 그 이데올로기에 침식되어 있는 개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기도 하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전시를 감상했습니다. 방학을 맞이하여 아이들이 붐비는 미술관에서 이제는 차갑게 식어버린 전쟁을 가만히 만져보는 평일 오후였습니다.
노순택 작가가 남긴 작가노트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을 사고’할 만큼 충분히 냉정하다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한나 아렌트.
젊은 세대에게 전쟁이란 더 이상 뜨겁고 생생한 경험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쟁의 폭력성과 잔인함에 대한 사유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의 존엄성을 사유하는 행위와 직결됩니다.
전쟁 70년이 지나간 지금, 예술과 함께 전쟁을 기념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기념'이라는 단어는 주로 즐겁고 흥겨운 일을 기릴 때 사용하기 때문에 전쟁과 함께 쓰일 때는 이질적인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가 남긴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사유를 시작하는 할 때 우리 삶은 한 뼘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전쟁을 '기념'하는 보다 좋은 방법이 되어줄 것입니다.
*사진 참조
- 국립현대미술관: https://www.mmca.go.kr
- 박건희 문화재단: http://geonhi.com/korean/pf-introdu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