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공간에 변화를 주는 예술가 '오스 제미오스'의 개인전에 관한 이야기
<You Are My Guest>, 오스 제미오스 국내 최초 개인전.
2020.07.15-2020.10.11
현대카드 스토리지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48)
날이 무척 덥습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려는 듯 보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땀을 흘리는 일에는 좀처럼 적응이 되질 않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전시를 가는 일을 미뤄두던 차에, 친한 언니가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새 전시를 오픈한다는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전시를 보자는 핑계로 언니와 함께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실 계획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늘 그렇듯 맛집과 감성카페 사이에 전시를 넣는 순간 약속의 질은 한 단계 더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는 브라질에서 활동 중인 예술가 오스 제미오스(Os Gemeos)의 국내 첫 개인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스 제미오스는 공공장소 건물 외벽이나 콘크리트 구조물 등 거리의 다양한 풍경을 예술의 소재로 삼는 스트리트 아트 작가입니다. 예술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 개입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보다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비록 작업이 금전적인 이득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작업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이 지점이 바로 제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 곳곳을 예술의 대상으로 삼는 스트리트 아트 작업들을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죠.
모던 아트 시기만 해도 예술은 그 자체로 숭고했기 때문에 삶과 예술은 분리되어 있었고, 둘 사이에는 엄격한 경계가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동시대 미술은 그 자체로 고결한 예술의 외연을 우리 삶의 현장까지 확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다양한 동시대 작가들이 삶과 예술 사이에 존재하는 단단한 벽을 허무는 것을 그들 작업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재난의 시기에도 우리에게 예술이 필요한 이유에 대하여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참고: "재난 상황에서 예술은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https://brunch.co.kr/@imsense/17)
오스제미오스 국내 개인전을 살펴보기 앞서, 이들의 기존 작업을 하나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마 국내에 소개된 오스제미오스의 가장 유명한 작업은 2014년 벤쿠버 비엔날레에서 소개된 <Giants> 일 것입니다. 오스제미오스는 거대한 시멘트 공장을 하나의 예술품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2014년 봄 제 3회 벤쿠버 비엔날레에 초청되기도 했죠. 작가들은 23m 높이의 거대한 원형 타워에 6명의 거인을 그렸습니다. 작가들은 이 작업을 위하여 중장비를 타고 시멘트 사일로에 직접 올라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벤쿠버시 최초의 벽화 작품이자, 원형 벽면 구조물에 입체적인 도색을 시도한 최초의 작품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콘크리트 공장은 일종의 기피시설이자, 조경을 헤치는 구조물로 꼽힙니다. 그러나 작가는 기피시설을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하여 지역 주민 뿐 아니라 무수한 관광객들로부터 모두 호평을 받았습니다. 과거 주민들의 원성을 사던 시설이 주민들의 대환영을 받는 시설이자, 대중들의 창의력을 자극하는 시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알록달록한 인물 형상이 된 콘크리트 구조물은 이제 마을 전체를 화사하게 만드는 일종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이번 현대카드 스토리지 전시에서는 미술관에서 오스제미오스의 스트리트 아트 작품들을 직접 관람할 수 있도록 큐레이팅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전시 팜플렛에 따르면 이번 전시에서는 '오스제미오스 작품 세계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회화와 조각, 설치, 영상작업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14개의 작품을 선보인다'고 적혀 있죠.
이번 전시는 스트리트 아트로 각광받는 오스제미오스를 국내에 소개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많은 인정을 받은 작가임에도 국내에서는 정보를 얻기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내 최초의 개인전이라는 사실에서부터 이번 전시는 각별하게 다가왔지만 이번 전시가 전적으로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쉬움이 더 진하게 남았죠.
이번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고자 합니다. 전시 공간은 그 자체로 권위를 가집니다. 공인된 '미술관'의 경우는 더욱이 그렇죠. 따라서 작가의 작품이 ‘미술관’이라는 권위에 편입되기 시작할 때, 작업은 권위를 가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제가 그린 그림을 집에 걸어두었을 때는 큰 가치도, 권위도 가지지 못할 수 있지만 저의 작품이 유명 미술관에 전시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미술관에 걸린 작품이 가지는 의미와 권위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작품이 미술관에 전시되기만 한다면 온전히 좋은 걸까요?
어떤 작품들은 미술관에 들어온 순간 ‘권위’는 가질 지 몰라도, 작업의 의미와 독특성, 정치성, 아우라는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스트리트 아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스트리트 아트는 일종의 장소 특정적 예술입니다. 장소 특정적인 예술은 장소에 얽힌 정치 사회적 이슈와, 장소라는 맥락의 의미와 작품이 상호작용하며 의미를 파생합니다.
장소 특정적인 예술은 단순히 ‘보기에 아름다운’ 공공 예술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직접 예술적 개입을 통하여 다양한 정치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예술입니다. 따라서 장소 특정적인 예술은 장소가 제공하는 맥락, 그 장소에 얽힌 정치 사회적 이슈, 그리고 작품의 의미가 상호작용하며 의미를 파생합니다. 그리고 그 점에서 오로지 미술관에 놓이기 위하여 제작되는 예술품과는 차이가 있죠.
이런 장소 특정적 작품이 장소에서 분리될 경우, 기존 맥락 속에서 가지고 있던 특유의 의미와 아우라, 그 정치성이 탈각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때 작품은 작품은 그다지 새롭지도, 재미있지도, 충격적이지 않게 됩니다. 작품은 미술관이 부여하는 권위는 가질 수 있으나 작업과 맥락이 함께 어우러져 창조하던 특별함은 사라지게 되니까요.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선보인 이번 전시에서도 이 점이 아쉬웠습니다. 아마 작가의 작업이 어떤 맥락 속에서 구현되었는지 알고 있었던 관람객이라면, 이번 전시가 기존 작업이 주던 특유의 해학미를 살리지 못한 전시라는 평가를 내릴 것 같습니다. 만약 작가들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관람자가 전시장을 방문했다면 "이 전시는 일러스트 작가의 전시인가?"라는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필자 역시 작품이 주는 통통 튀는 느낌과 장소와 결합했을 때 나타나는 당혹감과 재미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들의 작업이 독특한 일러스트 작업 정도로 축소되는 것 같아 보여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만약 미술관에 설치된 작업들이 어떤 맥락에서 선보였던 작업들인지, 혹은 주로 어떤 작업 속에 등장하던 인물들인지 볼 수 있었다면, 이번 전시는 대중들에게 한걸음 더 수월하게 다가가는 전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오스제미오스 특유의 재치와 해학이 살아있는 전시가 되었더라면 조금 더 즐거운 마음으로 전시에 대한 리뷰를 작성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번 전시 역시 재미난 캐릭터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지루하기만한 전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뭐,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
평소 스트리트 아트 작품에 관심이 있으셨던 분이라면, 꼭 한 번 다녀오시고 의견도 공유해주세요. 여러분은 어떠셨을지, 궁금합니다:)
*사진 출처*
- 오스제미오스 공식 웹 사이트 http://www.osgemeos.com.br/en
- 벤쿠버 비엔날레 공식 웹사이트 https://www.vancouverbiennale.com/artworks/gia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