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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Mar 05. 2020

재난 상황에서 예술은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재난 속에서도 보다 '인간적인' 삶의 방식을 모색했던 건축가, 반 시게루



    아이들 수업이 여유로운 날이면, 필자는 주로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예술 감상이 마감이나 평가와 무관해졌고, 이에 따라 졸업 후 예술 감상이 즐겁고 설레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고, 문화예술 향유는 더욱이 자제해야 하는 이 상황이 필자에게는 조금 갑갑하게 느껴집니다. 이 시국에 미술관을 간다는 사실은 죄스럽게 느껴질 뿐입니다.


    그제서야 예술은 안정되고 부유한 사회에서나 향유할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을 공부하기 위하여 젊음과 돈과 에너지를 들였습니다. 그러나 예술의 무용함을 즐길 수 없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도대체 예술은 무슨 쓸모가 있는 것일까. 라는 질문이 필자의 머릿 속을 끊임없이 배회했습니다.


도대체 이 상황에서 예술은 무슨 쓸모가 있는 걸까요.


    지난 몇 년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던 사건들이 발생하는 동안 예술 소비는 큰 폭으로 감소하였습니다. 사람들을 격렬하게 흔들었던 사건들의 상흔이 점차 희미해지고, 사회가 점차 안정을 찾기 시작할 무렵에야 사람들은 다시 예술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가 전국 곳곳을 휩쓸고 있는 시점이 되니, 다시금 예술 소비는 급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깊은 두려움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습니다.


    사회가 혼란과 불안에 빠져있는 시기를 경험하니, 그제야 예술은 사회의 안정과 풍요를 나타내는 지표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유행하는 전시장을 방문했다가 근처 맛집을 찾아가는 주말의 일정은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재난 상황이 찾아오면, 이런 주말 약속은 아주 특별하고 풍요로운 일상을 의미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은 생존 이외에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안정의 욕구 조차 채워지지 않는 불안정한 사회에서, 예술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예술은 재난의 상황 앞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치일 뿐일까요.




    필자는 이 시점에서 일본의 건축가 반 시게루(Shigeru Ban)의 작업을 떠올렸습니다.


건축가 반 시게루 (Shigeru Ban)

  

   일상을 영위하기 어려운 재난의 상황을 마주했을 때, 예술가들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이는 듯합니다. 예술가들은 후대를 위하여 재난 상황을 기록하거나 혹은 현재를 위하여 재난 상황에 직접적으로 개입합니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로는 종군 기자 혹은 종군 화가를 들 수 있죠. 기술이 발달한 지금의 예술가들은 사진이나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착취와 폭력, 재난과 재해의 상황을 고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건축가 반 시게루는 직접적으로 ‘현재’를 위하여 재난상황에 개입하는 예술가입니다. 반 시게루는 '목재'나 '종이'와 같이 친환경적 소재를 사용하여 재난 상황에 처한 이들을 위한 독특한 건축물을 만드는 건축가입니다.


2011년 뉴질랜드 지진 이후 새롭게 지은 종이 성당,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당시 지은 '종이 성당' (현재 대만에 위치), 고베 지진 당시 임시 대피소 등.


    그는 지난 20여 년간 일본과 터키, 중국, 아이티 필리핀 등 각종 재난 현상을 돌며,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한 집을 지어왔습니다. 전쟁으로 집을 잃은 르완다의 난민들, 세계 곳곳의 지진 피해자들, 쓰나미로 집을 잃고 대피소로 온 수많은 사람들은 시게루의 건축물 안에서 삶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임시 대피소도 우리나라의 대피소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게루의 개입 이후 대피소는 최소한의 개인적 삶이 보장되는 동시에 보다 미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재난이 발생한 이후 많은 이들이 대피소나 체육관 등에 단체적으로 수용되어 가까스로 목숨만을 연명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합니다. 그러나 시게루는 개인의 최소한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동시에 미적인 공간을 짓고자 하였습니다. 의식주가 제대로 보장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사람들이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최소한의 공간을 보장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조국인 일본 고베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에는 이재민을 위한 종이와 천으로 아름답게 구획이 된 수용소를 지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쓰촨 성 대 지진 당시에는  임시 학교를 건설하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이 내일을 꿈꾸는 환경을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시게루는 쓰촨 성 대지진 이후 종이와 목재를 이용하여 임시 학교를 지었습니다. 채광이 좋고 따사로운 공간은 아이들의 학업을 유지하게 하는 동시에 심리적 안정감 또한 줍니다.
구자라트 지진은 2001년 인도에서 발생한 아주 큰 규모의 지진이었습니다. 시게루는 친환경적 소재를 활용하여 피해자들을 위한 임시 대피소와 아이들 배움터를 지었습니다.


    필자는 예술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생존이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보다 아름답고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보장할 수 있는 건물을 꾀했던 시게루의 작업들은 예술이 가지는 가능성에 대하여 다시금 사유하도록 합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생존과 관련 없어 보이는 이 예술이 재난 상황에 어떤 쓸모가 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술을 통하여서 보다 인간다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유가 오로지 생존에 고정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고귀한 생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술은 우리의 삶을 보다 ‘인간’적인 삶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사진 출처>

반 시게루 공식 웹사이트

http://www.shigerubanarchitects.com/

뉴욕 타임스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19/10/15/t-magazine/shigeru-ban.html

BBC

https://www.bbc.com/news/entertainment-arts-2673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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