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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Mar 14. 2020

우리는 소비자이기 전에 한 인간이다.

재난의 때에도 우리가 소비자이길 바라는 세상에게,

재난의 때에도 우리가 소비자이길 바라는 세상에게,
제니 홀저 <Protect me from what I want>.    



    

    집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일상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집니다. 삶을 윤택하게 해주던 것들은 결코 우리가 원하는 좋은 집이나  혹은 아름다운 외모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아 갑니다.  앞에서 동네 친구와 차를 마시는  조차 조심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 그제서야 저는 삶을 이루는 소소한 즐거움과 기쁨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행복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누리는 즐거움의 합.

    

    상대적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간 미뤄두었던 좋은 강연들을 하나 둘 보기 시작했습니다. 좋다는 것을 알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좀처럼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던 일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몇 가지 강연들을 둘러보던 중 우연히 잉그리드 페텔 리(Ingrid fetell lee)의 TED를 보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작가이자 디자이너인 잉그리드 페텔 리는 우리 일상에 숨겨진 즐거움을 찾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행복을 달성해야 하는 '목적'으로 설정할 때, 우리는 그 목적에 도달하기 위 삶의 매 순간 마다 마주하게 되는 작은 즐거움들을 지나치게 됩니다. 그러나 목적에 도달한 순간은 아주 잠깐이고, 목적으로 향하는 여정은 길고도 지난합니다. 만약 우리가 행복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에서 작은 즐거움들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역설적으로 우리는 ‘행복’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디자이너 잉그리드 페텔 리(Ingrid fetell lee)

    

    잉그리드 페텔 리의 강연은 흥미로웠습니다. 그녀의 강연은 거실에 앉아서 봄 특유의 노란 햇살을 받거나, 토스트를 구워 따뜻한 차와 함께 먹거나, 뜨끈한 김치찌개에 계란말이를 함께 먹으며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는데 삶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는 요즘, 제게 꼭 필요한 강연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단조로운 일상들이 주는 행복감은 분명했습니다. 일상 속에서 누리는 기쁨은 성취감이 크거나 교환가치가 대단히 높은 일은 아니었지만, “삶은 살아갈만 한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엔 부족함이 없었죠.





소비만이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끊임없이 외치는 자들.


    그러나 제 스마트폰 쇼핑몰 앱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 합니다. 그들은 일상에서의 행복감은 그런 사소한 즐거움에서 오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재난문자가 쉴새 없이 울리는 와중에도, 그들은 굴하지 않고 “집순이를 위한 예쁜 파자마”, 혹은 “나만의 공간을 따스하게 만들어줄 원목 테이블과 무드등”, “마음을 안정시켜줄 캔들과 디퓨저” 같은 메세지를 보내며 소비를 유도합니다. 부드러운 파자마를 입고, 내 집을 아늑하고 꽃향기가 적절히 나는 카페처럼 꾸며둘 때에야 사람은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소비하지 않는다면, 그 행복을 얻을 수 없다고 큰 소리 치는 것이죠.


파자마 광고의 일부. 파자마를 구매할 때에야 비로소 따뜻하고 만족스러운 겨울나기가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돋보이네요.


    자본주의에 기반한 우리 사회는 위태로운 순간에도 새것을 가지면, 무언가를 더 갖게 된다면 행복해질거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메시지에 노출된 사람들은  그 물건들을 가지고 싶은 갈망을 갖게 됩니다. 현재 삶의 부족함과 상품이 가져다 줄 만족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상품을 소비하지 않는다면 제 삶은 어딘가 덜 행복할 것 처럼 느껴집니다. 결국 알람을 터치하고, 상품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쉼없이 구매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구해줘.


    녹스칼리지 심리학과 교수이자 물질 만능주의와 행복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팀 캐서(Tim Kasser)는 “수년간의 연구 결과 사람들의 가치체계가 물질주의를 지향할 때, 삶의 만족도와 행복, 자아실현의 수준은 낮아지며”, “두통이나 복통, 요통 등 육체적인 증상 뿐 아니라 불안, 슬픔, 분노”를 느끼는 일이 많다고 밝혔습니다. (NewPhlosopher, Vol.2 2018) 우리의 소비는 결코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이 소비하라고 떠들어댑니다. 그러나 소비가 생존을 위한 소비 정도로 축소되는 재난의 때에도, 세계는 “소비하라”고 목청껏 외칩니다. 그 메시지로부터 자유롭기란 쉽지 않습니다.

 

  제니 홀저의 작품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집에 머무는 시간 동안에도 쇼핑을 멈추기 어려운 필자 자신을 보며, 제니홀저의 작업 “PROTECT ME FROM WHAT I WANT” 가 떠올랐습니다. 학부생일 시절 참 좋아했던 작가입니다. 그러나 이제서야 그녀의 절박함이 가득 담긴 메시지와 공명하는 듯 합니다.


제니 홀저, <Protect me from what I want>, 1983-1985.



    우리가 무언가를 원할 때, 우리는 종종 그 욕망이 우리의 주체적 욕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가 그것을 원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의 욕망은 사실상 "욕망하라"고 조작된 메세지들에 대한 조작된 반응일 수 있습니다. 제니 홀저는 이 지점을 명확히 짚어냅니다.


    <Protect me from what I want>는 소비, 오락, 광고, 쇼핑 등 자본주의적 부의 중심지인 라스베이거스 거리의 전광판에 설치되었습니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하여 사람들이 상품을 소비하고 싶은 욕망을 일으키도록 고안된 전광판을 역설적으로 '욕망을 경계하기 위한 도구'로 탈바꿈 하였습니다. 그녀의 메시지는 화려한 라스베이거스 시내의 중심에서 소비와 사치를 통하여만 만족스러운 삶을 얻을 것이라 떠들어대는 소비자본주의를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욕망하는 것'의 근원을 의심하라고 소리칩니다. 그녀의 작품은 화려한 네온사인들 속에서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 강렬한 외침입니다.



제니 홀저, <Mass Media Shapes Identity>


 

    전염성이 강한 질병으로 세계가 시끄러운 이 때에도, 끊임없로 인간을 '소비자' 취급하는 기업들의 손짓에 씁쓸한 주말입니다. 욕망하게 만드는 이 세계로부터, 그리고 쉼 없이 반응하고 원하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과연 우리는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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