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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Dec 03. 2021

《올해의 작가상 2021》#2. 방정아 작가 신작 리뷰

일상에 기입된 권력의 행방을 찾아, 방정아의 <흐물흐물>.

    

    만약 누군가에게 ‘딱딱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날 하루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완고한’, ‘고집이 있는’ 혹은 ‘듣지 않는’ 사람들을 ‘딱딱하다’고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기피 대상 1호인 ‘꼰대’들 역시 '딱딱한 사람들'에 속합니다. 물론 물렁한 사람이 좋다는 건 아닙니다. 물렁물렁한 사람은 스스로를 책망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을 너무 자주 마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물렁한 이들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반면,  딱딱한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죠.


    각설하고, <올해의 작가상>의 두 번째 작가 ‘방정아’ 작가의 신작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작가는 빠르게 발전하는 우리 세계를 ‘딱딱하다’고 표현합니다. 작가는 문명화의 역사를 거쳐 전 세계 곳곳이 급속도로 도시화되어 가는 흐름을 보며, 이 편리하고 발달한 세상을 ‘딱딱하다’는 형용사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방정아가 내세우는 ‘흐물흐물’이란 그 딱딱해져가는 세상에 대한 작가 나름의 견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정아, <전시중입니다만>,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 X 400 cm.


그간 환경, 4 대 강, 핵, 세월호 등 당대의 딱딱하고 굵직한 이슈들을 말랑한 일상의 이미지로 변주해왔던 방정아 작가가 2021년 올해의 작가상 후보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방정아만이 구현할 수 있는 특유의 감성이 담긴 신작을 무수히 다양한 대중들이 만나게 된 것이죠.


작가는 올해 전시를 크게 두 가지 섹션으로 분할하였습니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한국의 정치 풍경을 다루고, 두 번째 섹션에서는 과도한 플라스틱 사용 이면에 무너져가는 생태계를 포착하여 고발합니다.




섹션 1, 분단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결같은 미국의 태도에 관하여.  


<미국, 그의 한결같은 태도>, 2021.


    섹션 1에서는 분단이래 7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껏 변하지 않는 국내외 정치의  ‘딱딱함’을 비판적으로 사유합니다. 이를 위하여 작가는 부산 시민의 일상에 스며든 우리나라와 미국의 불평등한 관계를 포착했습니다.


    아래 그림은 부산의 '주피터 프로젝트'를 다룬 <미국, 그의 한결같은 태도>입니다. 작가는 네 변이 올곧은 직선을 이루고 있지 않은 흐물거리는 천 위에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의 한 가운데는 산이 있고, 산을 중심으로 작은 도시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도시를 둘러싸고는 강이 흐릅니다. 아마 이 도시는 작가가 거주하는 부산을 상징하는 듯 보입니다. 도시 중앙 위에는 제우스가 앉아있습니다. 


방정아, <미국, 그의 한결같은 태도>, 2021.



    제우스 이미지는 마치 제우스와 같이 우리나라에 군림하고 있는 미국의 모습과 동시에 국내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지던 생화학 실험 '주피터(제우스의 영어식 이름) 프로그램'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주피터 프로그램은 미국이 부산 제8부두 미군 전용 시설에서 행했던 맹독성 세균 실험입니다. 미군은 수많은 시민들과 어린아이들이 살고 있는 8부두 근처에서 맹독성 화학물질에 대한 실험을 비밀리에 강행해왔습니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죠. 이에 대한 사실은 불과 몇 년 전 밝혀졌을 뿐이나 미국의 반응은 뻔뻔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작가는 2차 세계대전 때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미국이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내외 정치뿐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태에 대하여 이야기를 건네고자 합니다. 뭉개지고 흔들리는 선, 방향을 잃은 듯한 색의 조화는 일상에 기입된 불편한 권력에 대한 사유를 촉발하는 매개가 됩니다. 





<팠어, 나왔어>, 2021.


    마스크를 쓴 여인은 공원 벤치에 앉아있습니다. 그리고 여인의 옆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웅크리고 앉은 인물 형상 같은 덩어리가 놓여있죠. 여인과 물체는 흐물거리고 비뚤어진 선들로 묘사되어 있으며, 액화되는 듯 흘러내리는 덩어리는 무엇인가를 위장한 듯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견고해 보이는 형체들 곳곳에는 칼로 긁어낸듯한 균열 자국들이 보입니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요.


    그림의 배경은 미군이 부대 주둔지였으나 이후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부산의 한 시민공원입니다. 현재는 부산진구청과 대형마트가 있으며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무수히 많은 부산 시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죠. 최근 이곳에서 고엽제, 석면, 유류 오염 및 기타 발암 물질이 검출되면서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2013년 하야리아 기지 부지를 시민공원으로 개발할 때, 부산시에서는 부지 오염의 실태를 정밀조사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국방부는 이에 대한 허가를 내주지 않았던 사건이 발단이 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이미 십 년 가까지 지난 2021년이 되어서야 이 당시의 우려를 그냥 넘겨서는 안 되는 것으로 밝혀졌죠. 


방정아, <팠어, 나왔어>, 2021.


    방정아는 작업을 통하여 부산의 시민공원에서 발암물질이 가득한 오염터가 나온 사건을 시각화하고자 합니다.  높은 담과 철조망으로 둘러 싸인 미군 기지나, 미국과 우리나라의 정치적 관계를 상징하는 건물들은 개인의 삶과는 무관한 군사적 장소로만 여겨져왔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두 국가간 일방적 불평등 관계가 개개인의 삶에 개입하여 이들의 일상을 위협하고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를 부산시민공원의 풍경을 통하여 가시화합니다. 곳곳에 균열을 껴안고 있는 선과 색은 우리 일상에 깊이 묻어있는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은유하고 있죠.




섹션 2, 기후를 위협하는 플라스틱 공장

<플라스틱 생태계>, 2021.


    섹션 2에 들어선 순간 대형 걸개 그림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대형 걸개 그림은 작가가 여러 군데에서 수집한 캔버스 천을 모아 만들어졌습니다. 형체가 불분명한 이미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괴한 꽃들이 보입니다. 마치 국화를 연상시키는 곷들은 어딘가 기묘하게 틀어진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굵은 선과 몽롱한 색조로 완성된 괴이한 꽃들의 모습은 아름답고 쉼을 주는 자연 보다는 한 차례 자연재해 후 무더기로 스러져있는 자연의 무덤을 연상시킵니다.  


    작가는 거대한 걸개그림을 감상하기 위하여 전시장 곳곳에 의자를 설치해두었습니다. 필자 역시 의자에 앉아 한참을 걸개그림을 바라보았고, 필자를 제외한 다른 관람객들도 이곳에서 작품 사진을 찍거나 잠시 쉬어가기도 했죠. 알고보니 의자는 핵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연료봉을 상징하는 형상으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폐연료봉은 폐기된 후에도 수만 년 동안 방사능을 유출하는 위협적인 존재로서 환경과 우리 삶에 막대한 손해를 입힐 수 있는 위협적 존재입니다. 작가는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의자'가 실은 생명을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는 방사능의 원천임을 암시하며,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 뒤에 숨어있는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지적합니다


방정아, <플라스틱 생태계>, 2021, 이어붙인 조각 광목천에 아크릴릭, 700×880cm.


    섹션 2 공간 자체가 하나의 핵발전소과 같았습니다. 따라서 전시실에 들어선 순간 관람객들은 '아름다움' 찾아 들어온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방사능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핵발전소를 만나는 아이러니를 겪게 되죠. 재밌는 사실은 유독 이 작업 앞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미술관 인증샷을 남기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무수한 인증샷은 SNS를 통해 전시를 알리는 기능을 하겠죠. 우리가 천진하게 웃으며 작품을 감상하고 인생샷을 남기는 이곳이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핵발전소를 은유한다는 점에서 섹션2는 아이러니의 완성이 되지 않을까요.




    작가의 보여주는 일상의 모습은 결코 소소하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작업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슬로건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이면에는 우리 삶에 깊숙이 기입된 정치사회적인 권력들이 있습니다. 방정아의 작업은 사소한 일상을 통하여 개개인의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정치학에 섬세하게 드러냅니다. 그녀는 거대한 사회정치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현실에 대한 심오한 발언을 하진 않지만, 그저 형태나 윤곽이 분명하지 않은 일상의 이미지를 통하여 기존의 관념적 회화와의 차별성을 모색하는 동시에 일상 곳곳에 묻어있는 폭력과 권력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를 건넨다는 점에서 충분히 그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간 그녀의 작업은 민중미술이나 여성주의라는 거대한 그늘 아래서 해석되어 왔지만, 오늘날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변화해온 그녀의 작업은 단순히 특정 프레임으로만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전시 주제인 그녀의 ‘흐물흐물’은 결코 우유부단하거나 둔하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흐물흐물’ 뒤에는 우리 사회의 ‘딱딱함’을 재단하고자 하는 시선의 날카로움과 예리함이 서려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의 일상'을 예민하고 정교하게 다루는 작가의 시선이 단단한 세계 속에 얼어붙은 우리 사유를 일깨우는 날카로운 ‘도끼’가 되어주기를 기대하여 봅니다. :)



전시는 내년 3월까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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