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과 현실 세계를 동시에 살아내는 현대인의 군상.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1' 리뷰 -
가상과 현실 세계를 동시에 살아내는 현대인의 군상,
김상진의 <비디오 게임 속 램프는 진짜 전기를 소비한다>
⟪올해의 작가상 202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21.10.20.-2022.3.2
올해도 여지없이 '올해의 작가상' 전시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의 작가상'은 한 해가 저물어 가기 시작했다는 증거이자 봄과 여름 동안 장 깊숙한 곳에 꽁꽁 묻어두었던 겨울옷을 슬슬 꺼낼 때가 되었다는 알람이기도 합니다. 평소보다 조금 두터운 외투를 꺼내 입고 오전의 햇살이 드는 전시장을 찾았습니다. '위드 코로나'가 시작된 지 2주 남짓 지났지만, 여전히 다수가 모이는 곳은 조심스러워 부러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을 택하여 방문했습니다.
비어있는 전시장을 예상하고 미술관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공간 안에는 예상과 달리 많은 이들이 예약 확인을 위하여 대기 중이었습니다. 전시장 내부 역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작품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미술관에서는 관람객들이 거리를 두고 안전하게 영상작업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방석을 배치해두기도 하였는데, 방석 자리가 좀처럼 비어 있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서서 영상 작업을 감상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예상치 못한 활기가 낯설었지만, 한편으로는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김상진의 전시실은 유독 활기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다수의 관람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작품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전시실 중앙에는 화려하고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스크린이 지면과 공중에 설치되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전시실의 한쪽 모서리에는 크로마키 녹색 불빛이, 다른 한쪽에는 텍스트가 새겨진 거대한 작업물이 LED 조명을 발하며 전시실 내부의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었죠.
김상진은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활용하여 인간,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야기하기 위하여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과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조리함에 집중합니다. 이번 작업에서는 사람들의 인식 체계가 단순히 단순히 물리적인 현실인식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며, '가상세계'와 현실이 뒤섞인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제시합니다.
전시 공간 한가운데는 거대한 설치 작업, ‘로파이 마니페스토_클라우드 플렉스’(Lo-fi Manifesto_Cloud Flex) 가 웅장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작업 바닥에 설치된 의자와 책상은 학창 시절 우리가 흔히 접했던 교실 풍경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의 몸은 또 다른 세계에 들어간 듯 공중에 매달려있습니다. 이미 머리와 손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유영하고, 간신히 다리만 현실에 걸치고 있는 듯한 모습이죠.
소위 말하는 '요즘 것들'은 현실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온라인 가상 세계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다고 합니다. 가상현실이 더 친숙한 세대인 것이죠. 이들은 가상세계에서 친구들을 만나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를 즐기기도 하고, 브랜드 신제품을 구매하기도 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플루언서가 브랜드 모델이 되고, 가상현실로 맺어진 관계들이 삼삼오오 모여 가상의 인물에 열광하기도 합니다.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가 동물의 숲 게임 속 마을에서 선거 캠프를 진행한 것만 보아도 가상세계는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일상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가상세계는 이미 현실과 하나가 되어 그 경계가 불분명하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김상진 작가는 그 불분명한 지점에서 자유로이 두 세계를 넘나드는 젊은이들의 일상을 포착했습니다. 초기 과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가상 세계'의 가능성이 제시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주로 극도의 기대와 불안이 그 사이 어디 즈음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가상세계가 점차 우리 삶에서 그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가상 세계란 그저 일상의 또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그리고 작가는 신체는 교실에 있지만, 동시에 가상현실을 살아내는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전시실의 구석 한편에는 <크로마키 그린>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크로마키 그린>은 기다란 원통형의 틀 속에 웅크린 인간의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딘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인간 형상이 초록의 조명 아래 무엇인가를 가만히 관조하는 듯 보이는 작업이죠.
일반적으로 초록색이란 도시나 개발과 대비되는 자연친화적인 색상으로 불렸습니다. 전혀 인공적이지 않는 태초의 지구 그대로를 형상화하는 색상인 것이죠. 그러나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며 '초록'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크로마키 그린' 색상이란 영상을 합성하거나 특수 효과를 내기 위하여 사용되는 초록색을 의미합니다. 크로마키 그린은 고도로 발달한 디지털 기술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손길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자연의 초록'과는 확연히 대비됩니다. 더불어 있는 그대로 보존될 때 가치를 가지는 자연적 초록색에 비하여, 이미지나 영상 세계 속 '크로마키 그린' 색상은 은 또 다른 이미지를 위하여 대체되거나 삭제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작가는 디지털 시대의 '초록', 즉 '크로마키 그린' 색상이 지니는 고유한 의미에 집중하며, 가상의 이미지나 영상을 재현하기 위하여 스스로 삭제되고 대체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또 다른 가상의 자아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현실의 자아를 잠시 지워냅니다. 그 결과 웅장하고 웅장한 특수 효과가 가상 세계 속 펼쳐지죠. 간신히 그리고 버티듯 매일을 살아내는 자아는 크로마키 그린으로 칠해지고, 색상이 칠해진 자리에는 한계 없는 가상 세계를 누리는 또 다른 화려한 자아가 웃으며 서있게 됩니다.
현실에서 받지 못한 인정 욕구와 관계 욕구가 가상 세계를 경유하여 채워진다면, 인간은 더 행복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자신의 자아가 조금 지워지는 듯 느껴져 기술 발달 이전의 삶보다 더 깊이 있는 만족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김상진의 작업 속 인간은 여전히 쓸쓸해 보입니다. 어쩌면 위축된 듯 보이는 인간 형상은 빠르게 발달하는 기술 속에서 지속적으로 소외되어 가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 위한 작가의 의도는 아니었을까요?
김상진의 전시실은 유독 활기로웠습니다. 작업들이 비주얼적 측면에서 압도적이고, 작품 해석도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수많은 대중들이 찾는 미술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김상진의 신작은 장소를 찾는 관람객들의 특성을 잘 고려하여 제작된 것 같았습니다. 따라서 관람객 들은 현대미술 특유의 어렵고 난해한 느낌을 받기보다, 직감적으로 작업의 메시지를 깨닫고 작가의 의도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아마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감각적으로, 그리고 한뼘 더 쉽고 직관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은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자들이 좀처럼 전시장을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하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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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2022년 3월까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