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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Oct 14. 2021

현실 한 켠에 구멍을 내어 상상력을 불어넣는 작가.

에릭 요한슨 사진전, ⟪Beyond Imagination⟫ 전시 관람 후

    

    나이를 한 두 살 먹을수록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만 생각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갈수록 현실에서 벗어난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걸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죠. 어른들이 가지는 최대 상상력의 최대치는 가보지 않은 해외여행 정도가 아닐까요. 그것도 주로 편안한 휴양지에서의 쉼 정도 말입니다. 주어진 일상도 간신히 살아내는 어른의 삶에 공상이나 상상이 숨 쉴 수 있는 여유는 없는 듯 보입니다. 게다가 꿈을 꾸거나 상상을 하는 일은 주로 생산성 없는 일로 치부되기 때문에 때론 쓸모없는 일, 그래서 불안을 유발하는 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결국 상상이란 주어진 하루를 비생산적으로 보내도 죄의식을 갖지 않는 ‘어린아이들’의 몫으로 남겨지게 되죠. 



에릭 요한슨 사진전,  ⟪Beyond Imagination⟫
2021.09.16-2022.03.06
서울시 영등포구 63로 50, 한화생명빌딩(63빌딩) 60층.



그런 측면에서 에릭 요한슨은 여전히 어린아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필자의 어린 시절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꼽혔던 63빌딩의 꼭대기 층에 올라가면 위트 넘치는 에릭 요한슨의 사진들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관람객들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Erik Johansson, <Full Moon Service>, 2017. ⓒErik Johansson



    스웨덴 출신의 에릭 요한슨은 흔히 '사진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사진작가'라기에는 디지털 사진 기술과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하는 21세기 형 초현실주의 예술가다운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그의 상상력 넘치는 작업물과 달리 대학시절의 요한슨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다고 합니다. 한 때 그는 기업 엔지니어로 취직을 하여 전형적 공대 졸업생의 삶을 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을 하는 중에도 틈틈이 사진을 찍고 리터칭 하는 취미를 이어갔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의 사진이 광고 회사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했고, 사진을 구매하고자 하는 고객들도 나타났으며, 이후 그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는 전시회까지 열게 됩니다. 그렇게 요한슨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전업 작가가 되었죠. 



Erik Johansson,<Cumulus & Thunder> , 2017. ⓒErik Johansson




    요한슨의 사진은 디즈니 영화처럼 100% 판타지를 소환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누구나 한번 즈음 보았을 법한 현실적인 사진에 가깝죠. 그는 현실에서 볼 법한 이미지들을 위트 있게 비틀고, 그 자리에 한 줌의 상상을 채워 넣어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 이미지 한 켠에 꿈이나 환상 속에서나 볼 법한 요소들이 자리를 빛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지점을 마주할 때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웃음을 터뜨리죠.





    위에서 보여드린 <Full Moon Service> 와 <Cumulus & Thunder>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두 작업입니다. 두 작업은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친숙한 이미지의 한 켠에 상상의 숨을 불어 완성되었습니다. <Full Moon Service>는 달을 배달하는 배송 차량과 달을 하늘 한 구석에 걸어두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배달부들은 아주 태연하게 달을 배송하고, 또 그 달을 하늘에 걸어둡니다.  마치 그들이 원래부터 그렇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Cumulus & Thunder> 속에 있는 장인은 버석거리는 양털들이 잘라 구름을 만들어냅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구름의 원천이 마치 양털이었나 싶은 착각마저 듭니다. 


    요한슨은 아주 뻔뻔스럽게 '배달차에서 꺼낸 달'이나 '구름이 되는 양털'이 현실의 이미지인 것처럼 제시합니다. 그리고 관람자들은 그의 뻔뻔함 앞에서 함박웃음을 짓게 되죠. 요한슨의 재미난 상상력은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태연하게 현실 속으로 자리 잡게 하여, 꽉 막힌 현실을 사는 관람객들이 한숨을 돌리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합니다. 


Erik Johansson, <Demand & Supply>,  2017. ⓒErik Johansson


    그의 상상력은 인류의 행보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Demand & Supply>는 인류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터전의 기반을 갉아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진 속 이미지는 인류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고 있는가 적나라하게 드러내죠. 여전히 가동 중인 크레인들과 바다 위에 위태롭게 떠 있는 마을의 모습은 눈앞에 있는 이익을 위하여 자연환경과 이 땅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있는 지구인들의 행태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도록 합니다. 왼편에 보이는 또 다른 섬들의 형상은 인류가 단순히 이 우매한 짓을 '한 번만'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해왔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듯 보이죠.



좌) Expecting winter, 2013. 우) The cover-up, 2013. 필자가 사랑하는 요한슨의 작업.


    <Expecting winter>과 <The cover-up>은 필자가 가장 사랑하는 요한슨의 사진입니다. <Expecting winter>에서 요한슨은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는 장면을 흰 천을 수놓는 장면으로 표현을 합니다. 버석하게 마른풀, 이미 딱딱한 갈색으로 변한 나무들 옆으로 흰 눈이 쌓인 들판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The cover-up>에서는 흐린 날씨가 점차 개고, 해가 지는 들판의 모습을 '빨래를 너는 장면'으로 표현하였죠. 계절이나 날씨의 변화는 연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 눈으로 다 포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슨은 이 연속적인 변화가 만나는 지점을 '흰 천을 바느질하는 과정' 혹은 '풍경 빨래를 너는 장면'으로 표현하며, 순간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였습니다. 두 작업은 변화하는 풍경 아름다움과 재치 넘치는 표현법이 잘 조화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rik Johansson, <Go your own road> , 2008. ⓒErik Johansson


    사진이 처음 등장하던 때, 사진이란 기존 예술의 영역, 즉 회화나 조각과 달리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예술적 도구였습니다. 사진이란 곧 실제로 사진 속 대상이 존재했다는 물리적인 지표로서 기능했죠. 그러나 디지털 사진의 발달과 사진 보정 기술이 거듭 진보하며, 사진이야말로 ‘이상’을 정확히 재현하는 예술이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포토샵을 이용하여 현실을 위트 있고 미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이 가능해지면서 사진이 현실 속에서도 초현실을 꿈꿀 수 있는 다리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상상력이 풍부한 사진들은 갑갑한 현실에서 작은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합니다. 





    예기치 못한 전염병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인간들을 한없이 위축시켜왔습니다. 당장에 먹고살 것에 대한 근심으로 현실 이상의 세계를 생각하기도 어려운 세대에, 에릭 요한슨 전시를 거니는 일은 잠시 갑갑한 현실을 잠깐 벗어나 숨통을 트이는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현실과 맞닿아 있지만, 현실이 아닌 그의 사진들은 우리의 마음에 여유를 주고, 일상에서 아껴둔 웃음이 마음껏 흐르도록 허락해주니 말입니다. 



    에릭 요한슨에 따르면 ‘태생적으로 기발한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누구나 각기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아이디어들이 있다는 것이죠. 그의 전시를 보며, 관람자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엉뚱함을 발견해보기를, 그리하여 그 상상력이 생기를 얻고 날개를 다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여 봅니다. 




*전시는 내년 3월까지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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