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아트뮤지엄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전시 후기.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2021.07.24-2021.10.24.
월-일 10:00 - 20:00 (입장 마감 19:00) | 추석 당일 휴관
마이아트뮤지엄
들어가며,
운전을 시작해서 좋은 점이 있다면 평소 듣고 싶던 강의나 토크쇼들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따로 확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의 이야기 듣는 걸 유독 좋아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좀처럼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을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더라. 강연을 틀어 놓고 익숙한 길을 운전하고 있다가 보면 문득 강연자의 목소리에 코 끝이 시큰해지기도 하고, 너무 큰 소리로 웃어버려 민망함에 창문을 급히 닫을 때도 있다.
며칠 전 수업을 다녀오는 길 한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감독은 지망생 친구들이 이 길을 계속 걸어도 되는지 자주 묻는다는 말을 꺼냈다. 그럴 때면 그는 "지금껏 너는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살아왔으니 앞으로 딱 몇 년은 네가 오롯이 원하는 길을 가"라고 답한다고 했다. '100세 시대를 사는 우리가 인생의 십 분의 일은 정말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말이다.
감독의 대답은 뻔하고, 또 당연했다. 그럼에도 이 말이 유독 감동적으로 느껴졌던 이유가 있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가라'라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진정 자신이 사랑하고 원하는 것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있는 힘껏 좋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그들의 작업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일 테다.
어쩌면 상업성 짙은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전시가, 그토록 좋았던 이유도 그래서가 아닐까 싶더라.
여름의 한가운데, 설치미술을 전공했던 친구와 함께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전시를 찾았다. 두 시간을 대기해야 한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고민했으나,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내어 전시장을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니 일단 기다리로 했다.
긴 기다림 끝에 작가의 그림을 만날 수 있는 차례가 왔고, 우리 두 사람 모두 전시에 흠뻑 적셔지기 시작했다.
전시장에 발을 디딘 순간, 우리는 그녀가 빛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쏟아지는 빛과 그 반대편에 생기는 그림자들 앞에서 얼마나 많은 감탄을 했는지, 자연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얼마나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림은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다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작업을 했다고. 지구 반대편에서 그림이 그려진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녀의 작품은 빛과 빛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유난히 사랑한 작가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전시는 크게 네 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작품들은 코로나로 잃어버렸던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곰곰이 되뇌게 만든다는 점에서 일관된 맥락을 가지고 있었다.
두 번째 전시실에서 만난 <창에 비친 산딸나무 Dogwood reflected>는 봄날 특유의 맑은 햇살과 꽃들의 모습을 가득 담아낸다. 창에 비치는 산딸나무의 모습은 간접적으로 즐길 수밖에 없던 두 번의 봄을 떠오르게 했다. 코로나와 함께 맞이한 봄을 거치는 동안 사람들은 꽃놀이에 가는 대신 창가에 비치는 꽃을 바라보며 완연한 봄기운을 느끼곤 했었다. SNS 피드에는 골목 어귀에 피어난 꽃들, 회사 근처에 만개한 꽃나무들이 자주 올라왔다. 내 집 앞, 회사 앞 꽃놀이하는 봄을 보내던 사람들은 회사 건물 뒤편으로 피어나는 꽃봉오리 앞에 우두커니 서서 다가오는 봄을 생각하곤 했다.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기 어려운 채로 매서운 겨울 보내는 동안에도 봄은 열심히 제 걸음을 걸어 우리에게 찾아왔었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온 봄의 기운을 알아차렸을 때, 꾹꾹 눌러두었던 감수성이 다시금 고개를 들곤 했었다.
<창에 비친 산딸나무>는 우리가 사랑했던 따사로운 봄을 떠오르게 했다. 비록 창가에서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던 봄도, 회사를 오가는 길 잠깐 머물러서 즐겼던 봄도, 동네를 산책하며 한두 송이 피어난 꽃봉오리에 감격하던 봄도, 우리 모두에게는 반가운 봄이었다. 그리고 달튼의 그림은 그 반가움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의 감정이 다시금 떠오르게 하였다.
전시장의 중반부에 이르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황금빛으로 물드는 노을 Long Golden Day>을 만날 수 있다. <황금빛으로 물드는 노을>이 있는 전시관은 노을 특유의 붉은 황금빛으로 가득했다. 노을빛으로 물든 전시장에 들어선 사람들은 마치 노을을 바라보듯 벤치에 앉아 작품을 감상했다. 손을 잡고 같은 곳을 응시하는 연인도 있었고, 홀로 와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자리를 뜨는 손님도 있었고, 친구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해 질 무렵의 바다를 감상하는 이들도 있었다. <황금빛으로 물드는 노을>은 사람들의 가슴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바다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듯 보였다. 그림 앞에 선 사람들은 켜켜이 쌓여있는 추억을 꺼내보고, 한편으로는 다채로운 추억을 만들기 어려웠던 지난 2년의 아쉬움을 달래는 듯했다.
<정적인 순간 In the Quiet Moment>, <느지막이 부는 바람 Late Breeze> 은 그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다. (듣자 하니 인테리어 회사에서 가장 잘 팔리는 그림이라고도 한다.) 요즘 일반적인 전시들과 달리, 이번 달튼의 회고전을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데, 특별히 이 그림들이 있는 전시장에서는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햇살 부서지는 바다 앞에서 찰칵찰칵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한 편에는 바람에 나부끼는 커튼과 찰랑이는 호수, 그리고 하늘에 유유자적 떠 있는 구름이 벽면을 메우고 있었다. 전시는 간접적으로 '힐링 여행'의 경험을 선사했다.
사람들이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는 여행은 일상과의 단절, 낯설고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무용하게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전시는 '일상과의 단절',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시간의 흐름 느끼기'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공간을 재현했다. 마음껏 여행할 수 없는 지금 그녀의 그림은 마치 대리 여행을 권하는 듯했다. 아마 팬데믹 속에서도, 그리고 결코 낮지 않은 거리 두기 단계 속에서도 전시장이 사람으로 붐볐던 이유는, 그녀의 작품과 전시 자체가 일종의 ‘여행’ 같은 기분을 선사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전시장을 나오며,
흔히 현대미술을 정치적으로 ‘올바른’ 예술과 동일시하는 이들이 있다. 좋은 예술이란 곧 정치적인 예술, 그래서 결코 사소하지 않은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 마음 한편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전시를 감상하며 오롯이 자신이 사랑하는 순간을 그림으로 재현하고, 또 그것으로 타인에게 따뜻한 경험을 선사하는 그녀의 작품도 좋은 예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녀의 작품은 자신이 사랑하는 풍경 앞에 오랜 시간 머무르며, 그것들을 관찰하고 감탄한 결과다. 온라인 세계와 SNS의 발달로 인해 타인의 시선과 평가가 더욱 복잡하게 개개인을 얽매는 시대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 앞에서 과감히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그녀의 작업이 주는 인사이트가 전시를 찾는 관람자들에게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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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품은 나름의 위로를 주고, 일상에서 사랑하는 풍경들을 다시금 기억하게 하고, 차가워지는 바람 속에 우리가 사랑했던 그 따사로움을 기억하게 한다. 무엇보다 바쁜 일상 속에 늘 뒷전이 되었던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을 생각하도록 부추긴다. 아직 방문하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따사로운 봄과 여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이 전시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