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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Jul 07. 2021

무심코 지나쳤던 '과정'이 예술이 되는 순간.

정지현, <Reconstruct> Series에 대한 짧은 단상.


    이사를 왔을 때는 앞 집의 건물이 막 허물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허무는데 한참, 다시 쌓아올리는데도 한참일 것이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보기 좋은 결과물을 얻기까지 먼지와 소음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앞 집에 사는 나는 그 먼지와 소음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번듯한 건물이 들어서기까지, 먼지로 가득한 대기 상태와, 조용한 주택가와 어울리지 않는 소음은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누구도 이 과정을 반기지 않는다. 조금만 견디면 우리 눈을 즐겁게 해 줄 건물이 들어서는데도 말이다. 


    우리 삶에서 '과정'은 언제나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다. 건축만 보아도 과정이란 모두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 귀를 틀어막고 싶은 소음을 일으키는 것들이 아닌가. 다가올 좋은 것들을 위하여 참아내야만 하는 게 과정이기 때문에, 과정 자체를 귀하고 반짝이는 순간으로 여기기는 여간 쉽지 않다. 





    며칠 전 시간을 내어 전시장을 찾으니, 건축의 '과정'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조명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정지현 작가는 건축물의 생성과 소멸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작가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만들어진 주경기장 근처 대단지 아파트에서 태어났다. 국내 재개발 붐이 일기 시작하자 근처의 저층 아파트 단지들은 일순간 사라지고, 고층 빌딩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작가는 유년시절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동네를 허무하게 떠나보내는 경험을 했고, 이 경험은 이후 작업에서 중요한 영감을 주었다. 


Demolition Site 01 Outside|정지현|2013|Pigment print|120x160cm Ⓒ Jihyun Jung



    그 후 그는 거대한 도시 개발의 주축이 되는 건물들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지켜보며,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기록해왔다. 그는 새롭게 건설되는 신도시의 건설 현장이나 사라지는 구도시의 철거 현장에 들어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의 사진은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 어떤 공간인지 명확하게 드러낸다. 자본을 따라 빠르게 생성되고 소멸하는 이 도시성은 한 장의 사진으로 가시화된다. 



Demolition Site 11 Outside|정지현|2013|Pigment print|120x160cm





    작가에게 실례가 되는 표현일 수 있으나, 며칠 전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만난 작가의 작업은  ‘미적'인 느낌을 물씬 풍겼다. 건물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리모델링 과정을 담아낸 작업이 일종의 국내의 단색화나 서양의 추상화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기존 정지현 작가의 작품이 비판적 시선에서 도시화를 드러낸 작업이었다면, 최근 <Reconstruct> 시리즈는 재건축 과정 자체를 바라보는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지는 작업이었다. 




 

   <Reconstuct>시리즈에서 정지현 작가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건물이 부서지고 세워지는 과정은 대개 불쾌함을 동반한다. 그렇기에 이는 신속하게 처리되고 끝마쳐져야 하는 과정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누구도 이 과정을 '예술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재건축의 과정이 아니라 공사가 끝난 뒤 '완공된' 건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의 시선은 기존의 장소성을 벗어내고, 새로운 장소성을 입는 과정 자체에 머문다. 하나의 낡은 건물이 세련되고 현대적인 건물로서의 장소성을 획득하기 위하여는 무수한 이들의 시간과 노동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작가는 장소성이 변화하는 이 지난한 과정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서 주목하고, 이에 관람자들의 시선이 머물도록 유도한다. 






    정지현 작가의 작업 앞에 서면 우리의 삶이 떠오른다. 삶이란 과정의 집합, 과정의 연속이다. 삶의 순간은 대부분 '과정'이라는 단계로 메워져있다. 그 지난한 과정을 지나야만 만날 수 있는 정상의 풍경이 있다. 


    매일을 버텨내야 했던 학창 시절, 그리고 유난히 자존감 낮아졌던 취준생으로서의 시기, 서로 다른 사람과 부단히 싸우며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게 되었던 시간, 아이가 독립하기까지 무수히 흘린 땀과 눈물까지- 우리 삶은 과정 그 자체다. 정상의 탁 트인 공기를 마시는 것은 아주 가끔,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일일뿐이며, 정상을 지난 뒤에는 다시금 산을 오르는 과정을 마주해야 한다. 


    삶이 이토록 과정의 연속이라면, 빛나는 한순간만을 바라보기보다 우리를 둘러싼 이 매일을 예술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작가의 시선이 이 과정에 머무르듯, 우리 역시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 과정에 우리의 시선을 두는 건 어떨까. 모두가 다 지나야 하는 과정이라면, 그 누구보다 더 빛나는 과정이 되도록 말이다. 




ps.


지리산에 다녀왔다. 새벽 두시 사십분에 일어나 차에 몸을 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 반 정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산을 탔다. 날이 밝아올 때까지 서로를 의지하여 걸음을 재촉했다. 정상이 보이고, 붉어지는 하늘도 보이기 시작하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여행에서 돌아오니, 함께 산을 올랐던 우리 마음에 깊이 각인된 것은 붉은 하늘도, 홀로 우뚝 솟은 정상도 아닌, 한 치 앞만 간신히 보이는 어둠을 걷는 시간이었다. 물이 흐르는 소리도 잎사귀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도 전부 두려웠던 그 컴컴한 산길을 오르는 과정 말이다_ 



 


 -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청담동 송은 아트스페이스, ⟪아티스트 테이크 오버 Part 3⟫

전시는 7월 3일 종료되었다. 

송은 아트 스페이스, ⟪아티스트 테이크 오버 Par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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