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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Jan 21. 2022

《올해의 작가상 2021》#3. 오민 작가 신작 리뷰

고요함과 관조 속에 깨어나는 감각, 오민의 <헤테로포니>


오늘날만큼 인간이 수많은 자극에 아무 방어기제 없이 노출되어 살았던 적은 없을 것입니다.


오민, ‘헤테로포니’, 2021, 필름 스틸 컷 Ⓒ 국립현대미술관 2021



    사회학자들은 이렇게 빠르고 신속하게 뭐든 이룰 수 있는 사회를 ‘이벤트 사회’라고 칭합니다. 이벤트 사회는 감각적 자극이 넘치지만 그것을 향유할 시간은 부족한 사회를 의미하죠. 이미 차고 넘치는 감각적 자극의 양과 점점 더 빨라지는 자극의 속도는 인간의 감각이 포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중입니다. 


    자극이 넘치는 시대, 변화의 속도를 종잡을 수 없는 시대에 사람들은 가만히 감각을 향유하는 일을 죄악시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공간과 시간을 감각하는 일은 지루한 순간, 곧 제거되어야 할 순간이 되어버리죠. 그리고 스마트폰은 이 지루함을 빠르고 간단하게 삭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미국의 유명 대학 심리학 교수진은 현대인들이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를 얼마나 견디기 어려워하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아무런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생각만을 하게 될 때 보이는 반응을 관찰했습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아무것도 안 하기’를 택하는 것보다는 ‘스스로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기’를 택할 정도로 지루함을 참고 견디기 어려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가만히 감각하는 일,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리와 풍경에 감각을 집중하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아무것도 안 하기’를 택하는 것보다는 ‘스스로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기’를 택할 정도로 지루함을 참고 견디기 어려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현대인들은 계속 무언가를 하지만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합니다. 그런 현대인들에게 미술관은 쉽게 지루한 공간이 됩니다. 물론 오감을 자극하는 화려한 작업을 보여주는 미술관도 있습니다만 대부분 현대미술 작업은 골똘히 생각하고 교감하지 않으면 그 의미에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이들에게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재생되는 현대의 영상 예술 작업은 더욱이 집중하기 어려운, 그래서 때로는 기피하게 되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2021년 올해의 작가 상 후보 작가로 선정된 오민은 고요한 영상 작업을 전면에 내걸었습니다. 전시장 안에는 다른 설치나 회화 작업 없이, 다섯 개의 스크린이 전부입니다.  오민의 신작 이름 <헤테로포니>는 다성 음악의 일종으로 하나의 선율을 여러 사람이 동시에 연주할 때 원래의 선율과 그것을 달리 한 선율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를 말하는 음악 용어입니다. 작업은 다섯 개의 화면과 입체적인 사운드 속에서 이미지와 소리뿐 아니라 빛과 신체, 그리고 이것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서로 다른 영상과 소리를 검고 어두운 공간에 느리게 흘러가도록 설치하였죠.


오민, ‘헤테로포니’, 2021, 전시 전경 Ⓒ 국립현대미술관 2021

   


   오민의 작업 앞에 선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화면을 직시합니다. 느리게 움직이는 화면들과 고요히 퍼지는 사운드는 일상에서 느끼기 어려운 어떤 고요를 마주하게 합니다. 그리고 공간 속에서 관람자들은 일상에서 포착하기 어려웠던 움직임과 소리를 포착하게 됩니다. 어떤 선율과 미세한 움직임에 집중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일상 속에서 놓치고 살았던 감각의 틈새를 만나게 되는 듯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시간 기반 설치(time-based installation)”라고 칭하였습니다. 때문에 관람객들은 오민의 작업을 마주할 때, 움직이는 신체와 소리와 화면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감각하고 사유할 수 있습니다. 


오민, ‘헤테로포니’, 2021, 필름 스틸 컷 Ⓒ 국립현대미술관 2021


    사실 오민의 작업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읽어낼 수 있었던 방정아 작가의 작업이나, 많은 것을 화려하고 분명하게 보여주는 김상진 작가의 작업과 달리 오민의 작업은 대중들이 즐기기에는 조금 난해한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요. 대단한 깨달음도 없는 채로 작업 앞에 그저 머무르는 건 예술을 감상하는 좋은 방법은 아니지 않을까요.  



오민, ‘헤테로포니’, 2021, 필름 스틸 컷 Ⓒ 국립현대미술관 2021



    그러나 저는 무언가를 깨닫고 읽어내려는 노력은 잠시 제쳐두고, 그저 오민의 작업 앞에 멍하니 서있기만 해도 된다는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좋은 감상이란 꼭 무엇인가를 이성적으로 깨달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저 눈앞에 있는 모델의 움직임과 적막을 뚫고 흘러오는 영상 소리들에 눈과 귀를 집중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이성의 언어는 오민 특유의 예술적인 언어를 읽어내기에 미흡하니,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거나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를 해석하기 위하여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오민의 영상에 감각의 초점을 맞추면 됩니다. 작업 앞에 온 감각을 집중하는 그때, 우리는 고요와 느림에 좀처럼 적응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의 불편한 시간이 지나면,  작품이 속삭이는 말들이 각자의 마음 안에서 떠오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운이 좋다면  빠르고 감각적인 이 세계 속에서 잠들어 있던 또 다른 감각이 깨어나는 것을 경험할 수도 있겠죠. 저는 작품 앞에서 경험하는 이 모든 과정이 깊은 고뇌의 결과물에 대한 예의이자, 이 결과물을 가장 잘 감상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오민의 신작을 만날 준비가 되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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