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 -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1
재미난 전시를 보고 왔습니다. 몇 주 전 송상희 작가의 작업을 보러 시립미술관에 들렸습니다. 오랜만에 전시장을 찾았더니 작가의 전시만을 관람한 뒤 돌아가기 아쉬운 마음이 들어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하듯 '경로재탐색' 전시에 들어가 보았죠. 보물을 발견한 마음으로 재미나게 전시를 관람하고 왔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전시였죠. (물론 송상희 작가 전시도 좋았습니다, 백번 천 번 좋았습니다!!!)
추운 겨울 코트 옷깃을 여미고 전시장으로 향해 걷던 모든 순간들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전시장 안에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작업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전시장에 방문하면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그간 소개되지 않았던 작가들의 특별한 작업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정말 좋은 전시였지만 전시에 참여한 작가나 작업에 관한 자료나 소개가 부족한 것 같아 직접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전시장소
서소문본관 1층 전시실
전시기간
2021.12.14~2022.03.06
“호주”하면 어린아이들에게는 캥거루나 코알라의 나라, 젊은이들에게는 어학연수의 나라, 그리고 중년들에게는 아름다운 자연의 나라라고 정의할 수 있는 듯 보입니다. 지금 호주는 백인들의 나라로 잘 알려져 있으나,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든 사실상 호주는 '원래부터' 백인들의 땅은 아니었습니다. 호주는 다양한 원주민 부족들의 역사와 문화가 수천 년부터 숨 쉬고 있던 땅이었죠. 그러나 유럽 열강들이 학교 앞에서 땅따먹기를 하듯 다른 나라의 땅을 침략하고 나눠가지던 시대, 호주 역시 서구 열강들에 의하여 식민화되지 시작합니다. 그래서 호주의 근대 역사란 곧 원주민들의 문화가 억압되고 타자화되던 역사라고 할 수 있죠.
서구의 침략 이후 이곳에 살아가던 원주민들의 예술 역시 20세기 초까지 자연사박물관 같은 곳에서 원시 문화로 분류되어 전시되곤 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전시는 큐레이터가 아닌 문화인류학자들에 의하여 꾸려지곤 했죠. 호주에서의 원주민 미술은 오랫동안 '예술'로 다뤄지지 못하고 "인류학적인 유산"으로만 남아있었습니다. 이들의 예술은 예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보다 서구 중심적인 예술의 범주에는 편입되지 않는,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문화재’들로 정의되어 온 것이죠. 그래서 원주민들의 미술은 곧 이국적인 예술, 혹은 유토피아적인 예술, 변하지 않는 파라다이스적인 예술로 낭만화되기 십상이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시작된 호주의 원주민 예술가들의 운동은 원주민들의 예술을 호주 현대미술의 중심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세계의 예술계가 미술에 서려있는 식민주의적, 백인 중심적인 시각들을 예민하게 다루기 시작하는 분위기도 호주 원주민들의 미술이 재평가되는데 한몫합니다. 결과적으로 1990년 이후부터는 원주민 출신의 예술가들이 베니스 비엔날레 호주관의 작가로 선정되거나, 호주 및 국제 주요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기 시작하며 호주 동시대 미술의 '아류'가 아닌 '주류'로 급부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서울 시립미술관 역시 보다 다채로운 시각에서 현대의 호주 예술을 조망하고자 원주민 출신 예술가들, 예술가 콜렉티브 등 35명의 작가들을 초청했습니다. 전시는 ‘호주’라는 나라를 떠올렸을 때, 일차적으로 떠오르는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호주의 문화와 사회, 정치와 역사를 다층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장이 되어줄 것입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작가들의 목소리를 통하여 기존의 "호주"를 재탐색하고 싶다면, 혹은 특권이나 권력, 식민이나 지배의 개념을 호주 토착민들의 예술을 통하여 사유하고 싶으시다면 기대를 가지고 전시장을 방문하셔도 좋습니다!
몇 가지 흥미로운 작업들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아, 작가의 관련된 작업들도 함께 첨부하였습니다!)
매디슨 바이크로프트, <구성된 신체들(내재된 악덕)> , 2021.
남호주에서 주로 활동하는 작가 매디슨 바이크로프트는 젠더와 주체, 그리고 정체성을 재현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해왔습니다.
어딘가 그로테스크한 느낌은 작가 특유의 감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작업은 대개 어딘가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는 현실세계의 부조리함을 표현하는 작가만의 방식입니다.
시립미술관 2층 전시장에 들어가는 순간, 바이크로프트의 거대한 작업들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언뜻 보기엔 귀족들의 초상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괴한 형상들의 불규칙한 조합에 불과합니다. 쉽게 읽히지도, 납득이 되지도 않는 이미지들 앞에 선 관람객들은 당혹감과 불쾌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18세기 초상화를 변주한 듯한 이미지들은 어딘가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정상’과 ‘미’의 범주를 벗어난 광기 어린 이미지들에서 비롯되는 낯섦과 기괴함은 관람객들이 인상을 쓰게 만드는 주된 원인일 것입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정상성'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정상적임'을 벗어난 이미지들 앞에 선 관람객들은 자연스레 불편함의 근원에 대하여 사유하게 됩니다. 사실상 아름다운 이미지란 편안하고 익숙한, 즉 소위 말하는 '정상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죠. 이 정상성의 단단한 경계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할 때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것들'을 조금 다른 시선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리처드 벨, <대사관>, 2021.
리처드벨은 호주의 원주민 출신의 예술가로, 호주의 원주민 예술집단인 ProppaNow의 창립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퀸즐랜드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벨은 원주민 보호 구역 텐트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백인들이 버린 철판으로 집을 지어 지내고, 그마저도 하루아침에 철거되는 삶을 경험하면서 호주 내 차별과 폭력의 문제에 대하여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죠.
성인이 된 그는 "호주의 미술은 원주민의 것"이라고 선언하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현재 벨은 스스로를 미술가로 위장한 활동가라고 표현할 정도로 원주민의 인권이나 호주 내 원주민 차별, 그리고 사회 정의와 토지 소유권 갈등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더불어 서구 중심적인 문화나 관습적으로 타자화되는 유럽의 식민주의적 시각 역시 재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작가기도 합니다.
<대사관>은 1972년 캔버라 국회 의사당 잔디밭에 설치된 원주민 텐트 대사관을 재현한 작업입니다. <대사관>은 담긴 빼앗긴 땅을 슬퍼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목소리를 아주 직접적인 텍스트로 제시합니다. 국내 설치된 <대사관> 내부에는 "백인 침략자들아, 당신들은 훔친 당에 살고 있다"라는 한국어 메시지가 담긴 보드가 함께 설치되어 있죠.
그는 '시위'를 위한 천막을 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옵니다. 그의 텐트는 주로 미술관 내부 혹은 미술관 앞마당에 설치되는 예술적 '작업'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의 <대사관>은 인종주의와 차별을 직면하고 논의하는 아주 정치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대사관> 작업은 그동안 모스크바, 뉴욕, 자카르타, 시드니, 예루살렘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 도시들에서 이미 여러 차례 설치되었던 작업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는 도시의 중심부에서 목소리를 높일 예정이죠. :)
* 2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