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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경변호사 Jul 15. 2018

도시에서 살아갈 나에게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정희재


29살이 되자 원칙 없는 내 삶에 하나둘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족, 회사, 친구들 모두 다 '지금 보다 더 잘해달라!'고 요구하는데

나는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전지전능하지 않아 모든 것을 할 수 없으니,

앞으로 어떤 원칙을 갖고 살아갈 것인지 결정해야만

내가 원하는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늘 신뢰하는 책 속에서 

그 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 시작은, 정희재 작가의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현대인에게 있어 도시(City)의 이미지는 삭막하기만 하다. 

도시를 따뜻한 공간으로 묘사한 글이나 매체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정희재 작가는 이런 '도시 사람들'에게 

도시가 단지 삭막하기만 한 곳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도시에 계속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걸?", "도시도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혼자 밥먹고 택배를 받고 면접을 보는 것이 도시 생활이다. 

정희재 작가는 이런 사소한 도시 생활의 소소한 행복과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 아쉬움 마저도, 결국 도시와 사람에 대한 애정에 근거한 시선에서 이야기하고 있어서

도시에 사는 삶에 대해 희망을 갖게 된다. 

'지금은 힘들지만 도시가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라는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피로는 도시라는 공간의 책임이 아니다



서문에서 작가는, 


"결국 행복이나 아픔은 도시라는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주는 것이다."


"언제나 도시 때문에, 사람들 때문에 지치고 피로에 짓눌린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도시가 아니었다. 결국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였다. 내가 지금 서있는 곳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세상 그 어느 곳을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 라고 말했다. 


우리는 도시의 삭막함이 우리는 병들게 한다고 믿고 있고

도시를 떠나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만 같은 꿈을 꾼다. 


그러나 도시를 떠난다고 해서 근원적인 외로움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가 

사라질까? 아니다. 


도시는 단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의 피로가 극명화하게 드러날 수 있는 공간일 뿐

우리의 피로가 도시의 책임은 아니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도 곧 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도시에서도, 도시가 아닌 어느 공간에서도 행복하다. 

즉, 사실은 도시가 아닌 '사람'이 

그리고 '사람'보다도 '내 자신'이 내행복을 결정해왔던 것이다


도시의 삭막함을 탓했던 것은

그냥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도시의 탓으로 돌리고 싶어서 였을지 모른다. 





완벽한 시간과 완벽한 방식


작가는 책 속에서, 


"나는 모든 것이 완벽한 시간에 완벽한 방식으로 온다는 것을 믿는다. p34 " 


"인생이란 어느 한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이며, 가장 나다운 나와 만나는 먼 여정임을 이해했다. 면접만 해도 그렇다. 면접장에 앉기까지, 서류를 접수시킨 뒤 연락을 기다리고, 면접 날짜를 기다리고, 긴장한 대기자들과 함께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설사 탈락하더라도 '완벽한 순간에 완벽한 방식'으로 다가올 기회를 기다릴 것. 새로운 것이 오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니까.  p37"


이런 이야기를 했다.

'완벽하다'는 단어에서 이런 편안함을 느꼈던 적이 없다. 


작가는 이 말을 하면서 

맹목적이고 불확실한 기다림의 시간을 '완벽한 시간을 위해 준비를 하는 시간'으로 바꾸어 주었고,

내가 원하는 것과 타인이 원하는 것이 다를 때 (일이든 사랑이든)

타인을 이해하고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발휘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완벽한 방식을 위해. 


그래서 완벽한 시간과 완벽한 방식을 기다리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삶에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 우리가 원할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되는 것에

기뻐하고 행복함을 느낀다. 

그러나 개인인 나의 바람을 넘어서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을 기다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완벽한 시간과 완벽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면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 여유가 행복이다.





나를 믿는다는 것


작가는 자신의 가치에 대해 회의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아야 '쓸모'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꼭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이 있어야 '잘쓰이는'삶을 살 수 있다고, 그 확신은 자신을 믿고, 재능이 꽃필 시간을 기꺼이 기다려 주는 일부터 시작된다고  p 38"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를, 게으른 나를, 의욕과 노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했던 나를, 그동안 성실하고 신중하며 그럭저럭 괜찮은 인간이란 착각 속에 빠져 살았던 나를...... p60"


현대 사회의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외적인 것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잘' 살기 위해서 나라도 나를 믿어주자.

나를 기다려 주자. 

결국 나는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더 대단한 방향과 끝에 이를 것이다.





영원하지 않은 기쁨과 슬픔


마지막으로 작가는 마치 종교인과 같이 이런 말을 한다.


"기쁨도 슬픔도 영원하지 않다. p136"


그렇다. 

기쁨도 슬픔도 영원하지 않다. 


그러니까 따뜻한 도시에서

부족한 나라도, 나를 믿고 나를 격려하며

나를 위한 완벽한 시간에,

완벽한 방식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나가며 살자. 

이런 원칙으로 살자. 


p.s. 이 책은 이후에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이라는 제목으로 개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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