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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 Mar 24. 2024

주말 농사가 바꾼 삶

삶이 힘들 때는 밭으로 간다

이사오고부터 매일 아침에는 밭 산책을 갔다. 그 덕분에 땅이 얼어있는 순간부터 녹는 것까지 두 눈과 발로 확인 할 수 있었다. 첫 삽을 뜨기 전, 모든 생명체가 잠든 땅을 걸으며 얼른 다시 싹이 돋아나길 바라면서도 당장 봄부터 이곳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농사를 지어 본 경험이라고는 네 달짜리 주말 농사가 다였고, 직업으로 따지면 경력직도 아닌 계약직으로 농사를 맛보았기 때문에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주말 농사는 3평이라는 정해진 구획이 있었고, 다수의 사람과 함께 밭을 갈아 푹신한 땅을 만들었고, 관계자들이 사 온 모종을 디자인한 대로 심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고민할 건 '여기에 뭐 심지?'가 다였다는 게 지금과 다른 점이었다.


주말 농사를 주최한 곳은 기존 관행농과는 다른 탄소배출을 줄이는 농업 방식을 지향했다. 비료나 농약 없이 작물 간의 상생 작용과 자연스러운 생태계를 이용해 농사를 짓게 했다. 우리는 그 흔한 비닐 없이 상추나 깻잎, 배추, 파 등을 심었고, 상생 작용을 위해 일반적인 작물 간의 거리보다 더 밀집해서 심었다. 종종 풀이 나도 거의 뽑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과연 잘 자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작물은 내 속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아주 조금씩, 그러나 갑자기 성장해 있었다. 갈 때마다 자라있는 모습이 내 자식처럼 흐뭇하고 대견했다. 당연하게 사 먹는 식료품이라 생각해 왔기 때문에 살면서 그들의 탄생에 대해 궁금한 적이 없었다. 직접 밭을 갈고, 모종을 심고, 솎아내거나 뽑아내고, 길지 않은 시간 끝에 농작물을 수확해 내는 과정은 놀랍기만 했다. 잘 자란 상추나 겨자채 같은 잎채소를 수확해 갈 때마다 마트에서는 좀처럼 맡아볼 수 없는 진한 향과 맛으로 감동하기도 했다. 밭은 그저 소중히 가꾸고 지켜보는 것만으로 살면서 쉽게 알 수 없는 가치를 알려주었다.


그 이후로 농사는 당연히 자연 친화적으로 지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었고, 지구를 위해서는 인간이 변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식량난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든 이의 직업이 농부가 되어야 마땅했다. 농사는 환경문제와 밀접하게 닿아있기에 더욱 피부로 와닿았다. 그래서인지 생각만 해 왔던 것들을 몸으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텀블러에 음료 받기, 최대한 음식물 남기지 않기, 물티슈나 휴지 같은 일회용품 쓰지 않기, 사용할 수 있는 건 버리지 않기, 새 물건 대신 중고 물품 사기 등 서서히 생활패턴을 바꾸어나갔다. 처음에는 불편하고 어려웠다. 하지만 지키고 나면 마음이 편안했다. 지구에 유해한 건 최대한 안 하고 있으니 당연했다. 그런 흐름에 따라 우리는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는 농사 방식을 지향하게 되었다.


3평짜리 밭 2개를 가꿨던 1년 전과 다르게 지금의 우리는 몇십 배가 넘는 땅을 가꾸고 있다. 그곳에서 삽으로 땅을 파서 연못을 만들고, 두둑을 만들고, 식재 계획을 세워 해당 구역에 씨를 뿌리고, 풀을 매거나 예초기를 돌리고, 작물을 수확한다. 이 과정을 1년 동안 경험해 보면서 나는 땅이 가진 힘을 믿게 되었다. 몸 곳곳이 뻐근해 툴툴대기도 하고, 고된 일을 한 후에는 지쳐 쓰러져 자기도 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작물을 길러냈다는 뿌듯함과 자연과 함께 키운 땅과 작물에 대한 떳떳함이 있다. 여전히 나는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가 옳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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