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를 눈 가리고 동시에 놓치면서 살았던 이유
떠나고 싶은 나 : 분명히, 떠나고 싶다고 네 입으로 말했잖아.
그럼 떠나야지 뭐 하고 있는 건데...?!
떠날 수 없는 나 : 내가 떠나고 싶다고 했지, 떠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는 안 했잖아!!!
더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해. 떠나지 못한 건 떠나지 못해서 인데....
떠나고 싶은 나 : 결국, 네가 말하자 하는 건 시기를 말하는 것 같은데...
정신 차려!!! 일생에 완벽한 시기는 절대 오지 않아.
https// : 현실에서 절망은 끝이 없다. 내가 없으니까. com
또 다른 내일이 되어도. 떠나지 못하는 나와 떠나고 싶은 내가 싸우는 광경을 목격할 것이다.
그래. “하겠다” 와 “하고 있다”는 명백히 다른 말이었고 "가는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말의 방어기제는 주장할 때 보다 변명할 때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역시나 말은 너무 허약하다.
통로는 늘 열려 있었지만 삶을 유지한다는 핑계로 통로를 틀어막는데 바빴다, 오늘을 견뎌내기 위해 지금을 놓치는 일이 일쑤였다. 그랬다. 난 내일을 살기 위해 오늘을 그리 밀어내고 살았던 건지도 모른다.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국 지나가니까. 하지만 절망은 끝이 없었다. 내가 없으니까.
그날이 왔다. 애써 외면하려 했던 시간이 한꺼번에 폭풍우가 되어 몰아친다. 나를 날카롭게 찌르는 감정들. 후회. 미련. 자책. 원망. 시기. 더 이상 피할 곳은 없다. 서서히 알 수 없는 것이 쓰나미처럼 나를 덮쳐버린다. 곧.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처 없이 의무 속에 떠밀려 다니다 이내 사라져 버린다.
난 살만큼 살아왔고 살 수 있을 만큼만 살았다. 난 후회할 만큼 후회했고 주저할 수 있을 때마다 주저했다.
떠날 수 있는 조건은 나 하나고, 그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인데, 언제부턴가 내가 누군지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모르겠다. 나를 모르는 나를 데리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결국, "내가 없어서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이 느껴진다."는 고집스러운 알리바이는 민망할 정도로 되풀이된다.
일기장에 쓰라고 한다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이름표도 없이 나를 버리고 오고 싶은 심정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과거는 현재의 나를 대변하고 과거는 불안이었고 불안이 곧 나였다. 그랬다. 매번 후회와 미련이라는 놈에게 발목을 잡혔다. 허상과 환상에 범벅된 미래 때문에 불안감을 놓지 못해서 매 순간 경직된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현재를 눈 가리고 동시에 놓치면서 살았던 이유가....
오늘을 죽이는 걸로 삶을 유지하는 짓은
상자 속에 갇힌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상황과 무엇이 다를까?
※ 슈뢰딩거의 고양이
고양이가 상자 속에 갇혀 있다. 상자엔 방사성 핵과 독가스 통이 연결되어 있다.
그 핵과 독가스가 붕괴할 확률은 50%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이 상태를
"고양이가 반쯤 살았고, 반은 죽었다."라고 표현한다.
즉. 고양이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