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렉시테리언의 비건 지향기
내가 무언가를 결심하게 되는 시작점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댄스동아리에 들어가게 된 것은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거리 부스 앞에서 자유롭게 춤추던 동아리 사람들 덕분이었고, 영국 교환학생 준비를 하겠다며 과감히 휴학을 낸 것도 밤새워 준비한 영어 발표를 거하게 망친 날에 해리포터에서만 들어봤던 교수님의 지인분의 멋진 영국발음 심사평에 반해서였고, 또 지금까지 후원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나누는 가치를 일깨워준 친구 덕분이었다. 그리고 작년에는 처음으로 비건을 실천하는 분을 만났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일터에서였다. 협업하는 상대 브랜드의 담당자인 그는 처음 같이 일하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게 ‘일잘러'로 남아있다. 일을 잘한다의 기준은 개개인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양측의 이해관계를 모두 고려해 같이 잘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러다 우연히 식사 미팅을 잡다가 그가 비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멋진 사람이 지향하는 바까지 멋있다니!’. 서로의 입장을 모두 품는 그의 일하는 방식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도 동일하구나 싶었다. 사람, 동물 나눌 것 없이 같은 존재로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
어느 날에는 미팅을 위해 그를 따라 비건식당에 처음 가봤다. 비건 메뉴라고 하면 괜히 샐러드가 메인이고, 배가 차지 않을 것 같은 편견이 있었는데 그 편견이 모조리 깨졌던 날이었다. 버거부터 시작해서 라자냐, 튀김, 파스타 등등 그 당시의 내게 비건스럽지 않았던 비건 메뉴가 가득했다. 일반적인 식당에서 볼 법한 메뉴들이었던 것과 동시에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메뉴도 있었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과의 대화도 즐겁고, 음식도 새롭고, 무엇보다도 너무 맛있어서 두둑이 배를 채웠다. 분명 평소 같았으면 부른 배가 다음 날 점심까지도 안 꺼지는데 자고 일어나서 출근하는 동안 이상하게 몸이 가뿐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제 먹은 비건 메뉴 덕분이구나 싶었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향하는 바도 멋있는데, 경험주의자인 내게 새로운 경험까지 안겨준 그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비건이라는 가치에도 자연스럽게 더 관심이 갔다. 꽤나 오래전부터 ‘비건'을 개념적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내 행동의 영역으로는 들어오지 못했다. 실제로 비건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으니 언젠가 해보고 싶다 마냥 생각만 했지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도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도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그냥'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패러글라이딩을 해보고 싶다, 언젠가 세계일주를 해보고 싶다, 언젠가 책을 낸다면 좋겠다…’와 같이 그냥 좋아 보이니까, 좋다고 하니까 나도 한번? 하는 기약 없는 마음 말이다. 아무리 좋은 것, 선(善)이라도 그 마음에는 나 나름대로의 이유와 의식이 없다. 그런데 그를 알게 된 이후로는 적어도 내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지향하는 가치'라는 이유가 생겼다. 그와 미팅하는 날에는 비건 옵션으로 마실 수 있는 음료를 준비하고, 그도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준비했다. 소소하지만 응원하는 마음을 채웠다.
하지만 그 후 몇 개월이 지날 때까지도 여전히 그를 따라 비건을 실천할 결심까지는 이르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비건 연대인 정도. 그렇지만 연대하는 마음이 생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의식의 영역에 비건이라는 키워드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충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