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crete jungle where dreams are made of, 꿈들로 이루어진 콘크리트 정글
There's nothing you can’t do, 이곳에서 당신이 해낼 수 없는 건 없어요.
Now you’re in New York, 당신이 뉴욕에 있으니까요.
저녁을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날 만큼 어둑해진 밤,
선릉역으로 향하는 골목에서 한 남자가 나에게 묻는다.
"(부끄러운 듯) 저.. 혹시.."
가던 길을 멈춘 난
"(어서 빨리 말을 해).. 네?!"
이내 용기를 낸 남자는
" 아까 그 노래 제목이 뭐죠?"
제이 지와 앨리샤 키스가 부른 <Empire State Of Mind>는 수년째 나의 휴대폰 벨소리다.
5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는 내 모든 것을 회사에 바쳤다. 주말도, 밤늦은 시간도, 심지어 가족과 보내야 할 소중한 순간들마저도 회사를 위해 희생했다. 나의 업무는 투자상품 판매였다. 롤모델이 있어서 입사 1년 만에 빠르게 성장해 팀장까지 역임했었다. 주어진 업무는 죽이 되는 밥이 되는 어떻게든 결과물을 얻어내려고 회사를 위해 헌신하며, 나 자신을 뒤로한 채로 살아왔다. 그런데 돌아오는 것은 ‘누가 그렇게 하래?’라는 씁쓸한 충고와 비아냥뿐이었다. 진심 어린 동정과 위로를 바랐던 건 욕심이었던 것일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기에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분하기보다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멘탈이 흔들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이왕 떠나는 거 멀리 아주 멀리, 그래서 선택한 곳이 뉴욕이다. 내 머릿속 뉴욕은 <섹스 앤드 더 시티> 드라마와 나오미 왓츠 주연 영화 <킹콩>밖에 없었다.
퇴사를 앞두고 지점장 면담이 있었다. 지점장님은 한 달 쉬고 다시 일해보라고 하셨다. 그래도 5년 재직한 나를 배려해 주셔서 작은 감동은 받았으나 ‘누가 그렇게 하래?’라는 상처의 말을 덮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 달은 힘들 것 같아요. 두 달, 석 달 걸릴 것 같아요”
지점장은 “(곤란하다는 듯 약간의 침묵) 그래. 많이 아쉽네”
실제로 뉴욕은 한 달 가지고는 샅샅이 볼 수 없을뿐더러 성격상 지키질 못할 약속은 하지 않기에 솔직하게 얘기했다. 다시 돌아온다면 과연 앞만 보고 달렸던 입사 초기처럼 잘할 수 있을까 자신도 없었다. 번아웃이 제대로 왔었다.
남들은 뉴욕행을 부러워했지만, 사실 나는 더 오래, 더 멀리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그것은 단순한 여행의 목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나를 찾는 여정이었다.
여행의 시작은 한 여행사에서 소개한 9박 10일의 미국 동부 패키지여행이었다.
‘300만 원으로 한 달 유럽 배낭여행’이 유행했던 시기, 유럽여행의 루트를 짜다가 비행기에서 배편, 배편에서 기차노선 정하는 일이 머리가 아파서 유럽 배낭여행을 포기했던 경험으로 가이드와 함께 하는 안전한 여행을 원했다.
여행코스는 크게 ‘게츠버그→ 워싱턴 D.C→ 나이아가라 폭포→ 맨해튼’ 일정으로 알찼다. 자유여행의 장점도 있지만, 패키지여행 또한 추천한다. 가이드의 역사 해설은 여행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워싱턴 D.C에서 캐나다 국경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기 위해, 야간에 봉고차를 타고 이동했다. 가이드 샘이 불면증이 있는 사람은 영화 한 편을 추천했다. 미국에 왔으니 꼭 봐야 하는 영화라며 추천해 주셨는데 그것은 내 최애 영화 중 다섯 손가락에 뽑히는 영화 <브레이브 하트>였다. 이 영화는 영국의 통치에 맞서 스코틀랜드 지도자 윌리엄 윌리스의 투쟁을 그렸다. 마지막 장면에서 목숨을 다해 ‘프리덤 Freedom!’을 외치는 클라이맥스에서 나는 감동해서 어두컴컴한 버스 안에서 눈물을 왈칵 흘렸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은 1776년에 독립했다. 윌리엄 윌리스의 영혼과 후손들이 자유와 억압에 대한 저항을 보여준 게 아닐까 유추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