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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니스 Feb 26. 2024

미트패킹에서 생긴 어긋난 관계 I

친절한 유카짱


세상의 중심에서 홀로서기를 한 나는 맨해튼에서  지하철로 1시간 떨어진 '플러싱'이란 곳에서 첫 숙박을 했다.

찾은 숙소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해서 예산을 아끼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대비할 준비는 해야 했다. 비록 한국에서 걸려온 우울병이 낫지 않아 한 달도 안 돼서 도심으로 게스트하우스를 바꿔야만 했지만.


Anyway, 장기여행자는 고독하다.

우울병이 있는 여행자는 더더욱 혼자 있으면 안 된다.

두 번째로 옮기는 게스트하우스는 미드타운의 가든하우스다.

2호점까지 있는 이곳 주변은 한국식당도 많고 마트도 있어서 적어도 향수병은 나지 않았다.




2호점에서 난 상냥한 유카짱을 만나게 됐다.

그녀는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일하다가 관광과 취업을 목적으로 뉴욕으로 건너왔다. 작은 체구의 유카짱은 양쪽에 덧니가 있고 귀여운 스타일의 친구다.
나는 항상 그녀가 이쁘게 사진 포즈를 취할 때면 '가와이(귀여워)'라고 말해줬다. 성에 관한 개념은 나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보수적인 편이었다.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 멤버 독일인 소피아와 유카짱과 나는 심야 택시를 예약하고 미트패킹 핫플레이스를 찾았다.
이상하게 여행 중에 하얀 피부에 깊게 파인 파란 눈의 소유자 백인들을 잘 볼 수 없었다.
나의 여행시간이 오전, 오후였기 때문에 화이트칼라 백인들은 오피스에 머물렀던 것인가 암튼 백인을 여기서 가깝게 만나다니 근처에는 오후에 다녀왔던 신선한 해산물과 달콤하고 아기자기한 쿠키를 샀던 첼시마켓이 있다.



미트패킹 구역 Meatpacking District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정육점이 있는 창고다. 지금은 카페와 바, 어퍼 뉴욕의 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변화했다.
빨간 조명이 뭔가 야릇한 분위기를 주는데, 난 솔직히 이런 곳이 좋다. 술을 잘 못 해 금세 빨개지는 얼굴을 가릴 수 있고, 때론 누군가의 눈엔 이뻐 보일 수 있으므로.
도미토리에서 유카짱이 먼저 만난 소피아는 남자처럼 키가 컸다. 한 175cm는 족히 보였고, 오뚝한 콧날에 한국으로 귀화한 방송인 크리스티나와 비슷한 생김새다. 특히 파마한 것까지 비슷했다.
‘유럽사람은 다 그래?’ 할 정도로 굉장히 남자를 밝혔다. 여기 온 목적이 굳이 묻지 않아도 다분했다. 밤 문화를 즐기러 가자고는 내가 말했지만, 적극적으로 택시를 예약하고 실행에 옮긴 건 그녀였다.



우리는 어느 술과 간단한 안주가 나오는 바에 자리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사실 난 영어와 일본어 반반 섞어가며 유카짱과 대화가 통했지만, 소피아는 영어만 썼기 때문에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독일인 특유의 억양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와인 한 잔만 마시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거의 커플들이었기 때문이다.
소피아는 백인 남자만 보면 힐끔힐끔 보기 바빴다. 바라는 데로 이루어진다고 했을까, 하얀 셔츠를 입은 금발 머리, 파란 눈의 두 호주 남성과 컨텍이 돼서 합석하게 됐다. 왜 하필 호주남자인가! 과거가 떠올랐다. 당시 호주 홈스테이를 하면서 호스트가 일본 차는 ‘굿 카 good car’, 한국 차를 ‘배드카 bad car’라고 면전에서 들은 적이 있었는데, 한국을 무시하는 언사를 종종 했었다. 어쨌든 내키지 않은 합석이다. 3:2, 왠지 금방 파투 날 것 같았지만 소피아는 내가 영어를 못하는 걸 남자들에게 말했는지 그들은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호주라는 나라와 약삭빠른 소피아가 갑자기 싫어지는 순간이다.
유카짱은 나에게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길래 나는 미소를 띠며 '다이조부(괜찮아)'라고 말해주었다. 유카짱의 따뜻한 마음씨에 두 커플이 잘 놀 수 있도록 난 혼자 연신 맥주를 들이켰다. 바깥은 온통 까맣고 붉은 조명만 나를 위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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