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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연 기자 Jan 30. 2021

<인간수업><스위트홈> 신인배우들, 기자의 선구안이란?

(2)  아이템 발제부터 기사 마감까지

사약 남매라고 부른다면서요...? <스위트홈>의 고민시, 이도현(왼쪽부터)은 KBS <오월의 청춘>의 주연으로 발탁됐습니다.


제가 막 기자가 됐을 때, 수습 기간 내내 했던 과제가 있습니다. "하루에 아이템 3개씩 작성해오기". 처음엔 "하루에 3개나 생각해오라니, 요즘 유행하는 거 다 써야 하나?" 라며 떠오르는 대로 아이템을 막 만들어서 제출했습니다. 당연히 안 좋은 피드백을 받았지요. 당시 냈던 아이템들을 방금 다시 들춰보니 어마어마한 흑역사를 마주한 것만 같네요. 흑흑. 안 본 눈 삽니다. (그때는 아이디어 쥐어짜 내느라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다~ 신입 기자에게 필요한 숙제였습니다.) 


리뷰, 인물 피처, 인터뷰, 리포트 등등 기사에는 여러 가지 형식이 있습니다. 4P 이상의 심층 기사는 '기획'이 되고, 메인과 여러 개의 서브 기사가 묶여 총 10P 이상으로 확장되면 '특집'입니다. (그래서 주간지에서는 그 주 특집이 무엇인지가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회의 시간에 아이템을 발제할 때는 이 기사가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왜 지금 다뤄야 하는지, 대략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 취재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등 편집장과 취재팀 동료들을 설득하는 내용을 담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시면 '아이템'이 무엇인지 보다 감이 잡히실 거예요.




지난해 제가 주무를 맡았던 특집 중 'OTT 시대 신인배우를 말하다'라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두 달 정도 더 빨리 썼어야 했는데! 라며 마음이 조급해졌던 아이템인데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매체보다 반년은 일찍 트렌드를 캐치해 완성한 기사였습니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5836


'웹드라마 신인 특집'을 하자는 얘기는 10대 사이에서 <에이틴> 열풍이 불었던 2018년부터 꾸준히 나왔습니다. 다만 언제 하면 좋을지 타이밍을 보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OTT로 범위를 확장해보면 어떠겠느냐는 의견을 제가 2020년 3월 23일 아이템 회의 시간에 냈더라고요.^^; 마침 넷플릭스에서 <인간수업>이라는 드라마가 4월 말에 릴리즈 되고 주연진을 전부 신인 배우들로 캐스팅했고, 배우들이 잘했고 괜찮다는 소문이 막 들려오고! <좋아하면 울리는>(이하 <좋알람>)의 송강에 이어 <인간수업>까지 있으면 이 아이템 특집으로 해볼 만한데? 저는 회의 시간에 틈만 나면 이 아이템을 밀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주말 드라마 막내 커플이나 독립영화로 발굴되는 신인이 많았는데, 요즘은 OTT 플랫폼을 통해 뉴페이스들이 나와요. <좋알람> 보셨어요? 제가 작년에 거기 나온 송강이라는 신인 배우 인터뷰했잖아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200만이 넘어요! 이 친구는 해외에서 먼저 터졌거든요."


<좋아하면 울리는>의 송강. 이 드라마 공개되고 한동안 관계자들 만날 때 들었던 인사말이 이거였습니다. "기자님 좋알람 봤어요?  선오파 혜영파?"


그런데 아직은 때가 아니었죠. <에이틴>의 배우들이 전부 드라마 주연이 됐다는 것(신예은, 신승호, 김동희)은 분명 상징적이지만 이것만으로 특집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넷플릭스에서는 딱 들어맞는 사례가 <좋알람>의 송강 밖에 없었고 <인간수업>이 나오려면 한 달 넘게 남았었죠. 그런데 <인간수업>에 대한 정보가 하나씩 공개되고, 기자로서 냉정하게 검토해본 결과, 아무리 생각해도 이 드라마는 터질 것 같았고 최대 수혜자는 여기 나오는 신인 배우들이 될 게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공개 일정에 맞춰 <인간수업> 배우/제작자/감독 인터뷰를 모두 하자는 아이템을 내는 동시에 이 특집을 해야 한다고 회의 시간에 꾸준히 어필했습니다. 4월 29일에 공개된 <인간수업>은 넷플릭스 순위 역주행에 성공해 결국 1위를 찍었고, 제가 일로 만나는 모든(과장 아님) 업계 관계자들이 <인간수업> 얘기를 했으며, 주연 배우들 주가가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기자에겐 이런 능력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대중에게 공개되기 앞서서 어떤 작품이 잘 될지, 어떤 배우가 뜰지 알아보는 것! 나는 재미없게 봤어도 사람들은 좋아할 거라고 예상하는 것 혹은 나한테만 재밌을 테고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반응 안 할 거라는 걸 일찌감치 인정하는 것도...^^;) "미리미리 인터뷰 아이템을 냈던 내 안목~! 거봐!!!" 하며 동료 기자들에게 건강한 자뻑을 부리던 저는 5월 11일, 드디어 아래의 형태로 특집 아이템을 최종 발제하게 됩니다. 날 것의 내용이 담긴 것을 삭제하고^^; 당시 회의에 올린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기획 혹은 특집/OTT에서 라이징 스타들이 나오는 풍경에 대한 리포트

신인 기용에 있어서 영화/TV 드라마보다 더 과감할 수 있고, 이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한방에 전 세계로 이름을 알리는 현상. 전에는 없던 일입니다. 예전의 '한류스타'는 안방 드라마에서 조연-주조연-주연 거쳐서 한국에서 톱스타 된 후에 중화권에 드라마 방영되고 순차적으로 인기를 끄는 순서였다면, 넷플릭스 드라마를 통해 처음 주연을 맡은 배우가 한방에 해외 팬까지 거느리는 일이 나타나는 게 상징적입니다. 간단한 예시로 <좋알람>의 송강은 TV 드라마에서 아직 주연도 안 맡아본 신인인데 이 드라마 하나로 해외 팬이 엄청 생겨서 인스타 팔로워 200만, 화장품 광고 모델까지 됨. 드라마 주연작 물망도 하나 오름. 오로지 넷플릭스 드라마 인기로 인한 것.


* 사례

<좋아하면 울리는> 송강 

<인간수업>으로 김동희 박주현 정다빈 남윤수 다 같이 상승세. 최근 관계자들 사이에서 김동희, 박주현 언급량 높음.

후반 작업 중인 <스위트홈>은 이응복 감독(<태양의 후예> <미스터 선샤인>) 연출의 크리처 물. 송강, 이도현, 고민시, 박규영, 고윤정 등 신인배우 대거 포진. (고윤정은 한소희가 얼굴 알리는 계기였던 릿츠 크래커 현 광고모델)

곧 제작 들어가는 <지금 우리 학교는> 주인공으로 <벌새>의 박지후가 캐스팅. 그 외 학생 역으로 신인배우 대거 캐스팅. <다모> <완벽한 타인>의 이재규 감독 연출작.


드라마 제작자나 감독 취재하고, 배우 매니지먼트사에 넷플릭스 드라마 오디션 분위기가 어떤지 취재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드디어 이 특집 아이템이 PICK 됐고, 장기 취재가 필요한 만큼 취재원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컨택하며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드라마 제작자, 영화 제작자, 투자배급사, 배우 매니지먼트사, 감독 등등 엄청나게 만나고 전화를 돌렸던 것 같아요. 모든 특집이 중요하지만 특히 이렇게 새로운 이슈를 발굴하는 특집은 몇 주에 걸쳐서 취재를 미리미리 해둬야 합니다. 1~2주 취재해서 쓰면 깊이 있는 내용이 안 나옵니다. 평소에 사람들 많이 만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두는 것도 중요하고요. 이때 취재하면서 새로 알게 된 분들이 있고, 올해까지 꾸준히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기자가 취재원을 다양하게 늘리기 위해서는 꾸준히 새로운 아이템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아이템이 1263호 특집으로 최종 결정됐죠. 그다음에 할 일은? 구성안을 짜야합니다. 실제로는 기사마다 어떤 내용이 들어가는지 약간의 설명이 더 붙긴 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뼈대만 남겼습니다.


도비라 2P

메인 3P (수연)

서브1/플레이리스트 박태원 대표 인터뷰 1P (동미)

서브2/OTT가 낳은 라이징 스타 4인과 기대해볼 만한 얼굴들 3P (소미) 

차세대 스타 4인

-송강, 박주현 1P

-김동희, 신예은 1P

기대해볼 만한 새로운 얼굴들 

-이나은, 김영대, 이은재, 정건주, 박정우, 김수현 1P

서브3/신인 발굴이 기대되는 작품들 1P (동미) 


총 10P


(잠깐! '도비라'가 뭐냐고요? 잡지를 보면 기사 시작할 때 이렇게 넓게 펼쳐서 가는 페이지가 있죠? 이게 '도비라'랍니다.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에겐 이 도비라 이미지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 결정하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담당 기자가 구성안 짤 때 편집과 디자인팀에게 도비라에 대한 의견도 같이 줘야 합니다. '도비라'는 '문짝'이라는 뜻의 일본어인데요. 사실 이런 말을 쓰면 안 되지만 이쪽 업계에서 워낙 오랫동안 통용된 용어이다 보니ㅠㅠ)

'OTT 시대 신인배우를 말하다' 특집 기사의 도비라 이미지



7월 2일... 저는 대망의 특집 메인을 마감하게 됩니다. 제가 주무를 맡았으니 특집을 함께 하는 동료 기자들의 기사 진행 상황도 실시간으로 체크했습니다. (저까지 총 3명의 기자가 이 특집에 동원됐습니다.) "인터뷰 섭외 제대로 됐어? 언제 해?" "인터뷰에서 어떤 내용 나왔어? 메인에 참고 좀 해야겠어." "서브2에 배우들은 누구누구 쓸 거야?" "어떻게 쓸 거야? 필모 요약 아니고 짧은 인물 피처 쓴다고 생각해야 해." "서브3에 어떤 작품이 들어가? OOO는 꼭 넣어." 주무는 구성안도 짜고 다른 기사도 하나하나 챙겨야 합니다. 즉, 자기 꺼 말고도 할 일이 많습니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5837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5838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5839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5840


이 길고 긴 여정을 글로 옮기니 눙무리... OTT 신인 특집의 경우 최종 메이드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 축에 속합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최소한으로 잡아도, 아이템 발제부터 기사 작성까지 적어도 10일 이상 걸린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지난해 말 <스위트홈>이 전 세계적으로 대박이 나면서 <씨네21>의 OTT 신인 특집은 다시 주목받게 됩니다. <스위트홈>의 송강, 이도현, 고민시, 박규영, 고윤정 등은 영상 콘텐츠 업계 키 플레이어 55인이 주목한 신인 배우 투표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 (이도현 씨 1위 축하합니다. 여기서 1위 하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인데! 송강 씨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곧 500만을 넘겠네요. 후덜덜덜.) <인간수업>의 김동희, 박주현은 나란히 2위에 올랐네요. 7월에 냈던 기사가 2020년 업계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어낸 것이지요. 기자로서 자부심이 생길 때가 바로 이런 순간입니다. 


아이템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평소 업계 동향을 잘 살피고, 사람들 많이 만나고 대화도 많이 나누고, 귀를 열고, 기본적으로 콘텐츠를 많이 봐야 하며, 다른 기사도 많이 읽고, 전체 산업과 콘텐츠 자체에 대한 분석력, 선구안 같은 것이 필요하지요. 그래야 시의성 있는 아이템을 발제하고, 조금씩 내용을 보충해 아이템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을 잘 해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지난해 <영화하는 여자들>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정말 재밌습니다!) 코로나 시국임을 감안해서, 이 책에 참여한 여성 영화인들을 몇 명 모아 줌으로 대담을 해보자는 아이템을 낸 적이 있습니다. 


-기획/<영화하는 여자들>(주진숙, 이순진 지음) 대담

30년 역사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여성 영화인의 인터뷰를 기록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인터뷰집. <여성영화인사전> 이후 20년 만. 심재명, 안정숙, 임순례, 박곡지, 채윤희, 전도연, 문소리, 강혜정, 류성희, 최은아, 남진아, 신민경, 박혜경, 김영덕, 제정주, 엄혜정, 김일란, 윤가은, 전고운, 천우희가 인터뷰에 참여했습니다. 지금 요르단에서 영화를 찍고 있는 임순례 감독님을 포함해, 책에 참여한 사람들 중 일부를 모아 줌으로 만나 대담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코로나 시국 2.5단계에 걸맞은 역사적인 그림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아이템을 아주 간결하게 썼지만, 구구절절 설명 안 해도 설득되는 좋은 아이템 아닙니까? :-) 그래서 <씨네21>이 1년 중에서도 특히 더 신경 써서 만드는 추석 합본호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아래는 잡지에 실제로 실렸던 재편집 사진이에요.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윤가은 감독, 심재명 대표, 배우 문소리, 임순례 감독. 그리고 하단에 너무 활짝 웃고 있는 저...


'영화하는 여자들' 랜선 대담 현장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6225


'영화하는 여자들' 출간 소식을 일찌감치 접하고 섭외 요청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여성영화인모임'이 하는 일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죠. 앞선 포스팅에서 평소 업계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기자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이러다 제가 기자로서 가진 노하우를 다 공유해 드리면 어떡하나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 취재는 어떻게 하는지, 인터뷰 준비는 어떻게 하는지, 기사는 어떻게 작성하는지 등등 할 얘기는 아직 많이 남아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글쓰기'에 대해서도 길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고요. 이 중에서 '인터뷰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업계 밖 분들이 재밌게 읽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보며 내일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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