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사주라는 통계학의 명확한 한계
오늘부로 ai 사주에 돈을 쓰지 않기 위한 선언문 같은 글을 쓰고자 한다.
나는 2026년 연초부터 해서, 인스타그램에 바이럴 되는 청x아x ai 사주와 타x트 ai 사주 등을 오가며, 여러 테마의 ai 사주를 봐왔다. 청x아x만 해도 신년운세, 정통사주, 커리어 사주 등 약 5개 이상 정도 되는 다양한 테마의 사주들로 내 운세를 점쳐보았다.
점성술, 자미두수 등 gpt에 정보를 입력해 가며 열심히도 보았지만, 결국 유료결제는 다를까 하는 헛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ai 사주는 '추가질문'이라는 추가적 결제 수단까지 있어, 줄줄이 더 지불하게 되는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처럼 샤머니즘에 마음이 열려있고, 기꺼이 기대도 좋다-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나는 온라인 사주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사주에도 열광하여, 단골 사주 선생님이 계시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운이 안 풀릴 때 6개월~ 1년에 1번 이렇게 보는 건 나쁘지 않으나, 나는 1달 텀으로 보러 가곤 했으니...
1달 텀으로 연속 3번 방문했을 땐, 이제는 선생님이 나에게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 왜 늘 대가를 지불하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깨닫는 것인지..!! 하하 )
이제는 오프라인도, 온라인도 지치는 마음으로 잘 보지 않게 된다. 그러니까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인데, 지푸라기도 되지 않는다고 느낀 건-
그들은 나라는 사람의 변수와, 내 주변 사람이라는 변수에 대해서까지 현미경을 들이대듯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사실이지만 새삼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생각하는 것과 아닐 때는 다르게 체감될 것이다.
사주라는 통계학 기반 역술과, 데이터 기반 ai가 케미를 내는 이유는 두 시스템의 운영체계가 '사람'이라는 변수를 간단히 배제하고 셈의 결과를 말해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대한 버거움으로 간단한 회피를 택한 것 같다.
차분히 노트를 펴고 스스로 생각하며 펜으로 써 내려가다 보면, ai보다, 역술가와의 대화보다, 명쾌하고 나 자신에게 기꺼운 방향성이 제시되기도 한다.
난 어느새 이렇게 비겁한 어른이 되어있나.
ai가 없던 시절에는, 최첨단 무언가가 없던 시절에는,
나는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울며 마포대교를 걷고,
누군가한테 전화해서 진심을 고백하고,
또 내 생각을 치열하게 써 내려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와 인물에 대한 토론을 했겠지.
직접 살면서 부딪쳐야만 하는 것들인데, 손쉽게 미래에 대한 예측을 손에 얻으려 했구나.
최근에 정말 손쉽게 기분이 좋아진 적이 있었다.
친구의 선물을 사기 위해 불교 용품 상점에 들렀는데, 상점 주인께서 부처보다 더 아름답게 웃으시며
'정말 정말 아름다우시네요.'라고 말해주시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순수하게 아름답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의 영혼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순간 낯선 경계의 마음이 풀리며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진심이 담긴 감사의 인사가 나왔다.
예상치 못한 불특정 타인의 말 한마디로 내 하루가 아름다워질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하면 아름다워지는 거였다.
세상은 그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