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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트리 Feb 08. 2020

웃기려는 자,
우스워지는 것을 견뎌라

마흔 특집 에세이

    지금은 잘 모르겠으나 소싯적의 나는 꽤 웃긴 인간이었다. 대부분 믿어주지 않겠지만 정말이다. 남의 허파를 간지럽히고 싶어서 장난을 설계했고, 일석이조도 성에 안 차 웃음의 쓰리콤보를 겨냥한 위트를 연마했다. 나비처럼 날아가 벌처럼 쏘는, 농도를 조절한 농담을 참 좋아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던 에세이처럼, 울고 싶지만 이야기는 하고 싶어서 말하다 보면 어느새 한 편의 희극이 나오는 바람에 슬픈 얘기 중에 미안하지만 좀 웃겠다는 친구들이 속출하기도 했다. 그런 일이 왕왕 있다 보니 시트콤을 보고 자란 세대로서 '인생이 시트콤'이란 말을 명찰처럼 달고 살았다. 경험이 늘수록 나를 갖고 내가 웃기는 일들이 늘었고, 굳이 인생장르를 따지자면 드라마와 코미디를 섞은 드라메디에 가까웠다. 

  습관이 된 코미디는 여행 중에 소매치기를 만나도 튀어나왔다.  

 "소매치기를 딱 만난 거야. 남자가 스쳐가는데 쎄~ 하더라고."

 "어머어머어머, 그래서?”

 "앞질러 가더니 코너를 돌아 사라지더라. 그 코너 내 코넌데, 망설였지. 

  혹시 내가 잘못 의심하는 건 아닐까, 이대로 고냐 백이냐."

 "그래서?"

 "문워크를 했어."

 "갑자기?"

 "어! 뒤돌면 쫓아올까 봐 자연스럽게, 마이클 잭슨처럼.

  내가 안 오니까 궁금했는지 고개를 내밀더라구!

  우린 눈이 마주쳤지. 씩 웃으면서 바지춤에 손을 모았어.

  퉁겨주면서 큰 길 나올 때까지 후진했어, 이렇게(둠칫)."

  듣고 있던 동생이 신기해하며 물었다. 왜 웃긴 얘기를 하나도 안 웃으면서 하냐고. (웃기려고 한 얘기가 아니었으니까요.) 나는 공포물도 코미디물로 전환하는 담력을 가진 생활 유머의 달인이었다. 

  웃고 웃기는 게 좋았던 나는 인터넷의 바다가 열리자, 대학교 전산실에서 지금껏 쓰고 있는 이메일을 만들었다. 남들이 영문 이니셜을 딸 때 나는 개그맨 이경규의 웃음소리를 육성으로 흉내 내며 적었다. woomhahaha라고. 거기에는 나름의 철학도 있었다. 나한테 이메일을 쓰는 사람들이 한 번씩 소리 내 웃었으면 하는, 널리 유쾌하길 바라는 정신. 아니나 다를까 내 폰번호를 할당받은 텔레마케터가 전화 너머로 메일 주소를 물어보며 "움하하하, 그러니까 하가 세 번 맞으시죠? 확인 한 번 더 할게요. 움하하하!" 라고 할 때마다 둘 다 어쩔 도리 없이 웃어야 했다. 안내받은 상품에 가입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기분 좋게 전화를 끊었다. 이토록 스스로 웃음 밭의 파수꾼임을 의심하지 않았건만, 기회가 위기라고 하더니 위기는 기회의 모습을 하고 왔다. 


  무턱대고 예능 작가가 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웃음을 경작하려면 이만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송시장에 입성하자마자 나는 탄생 이래 최악의 웃음 흉년을 맞았다. 아무리 내가 밥도 안 먹고 유머 1번지를 보며 컸다고 해도, 일요일 아침마다 스타 청백전 때문에 교회를 빠졌다고 해도, 토토즐과 일밤 때문에 학생 신분에 월요병을 앓았다고 해도, 참참참과 토크박스와 쿵쿵따를 하며 순발력과 어휘력을 길렀다고 해도 예능의 원투쓰리를 쉽게 배울 수는 없는 법. 움하하하 정도로 웃는 애송이 따위가 발 뻗고 드러눕기에 예능의 세계는 참으로 불친절하고 거칠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혼이 빠지도록 복잡한 회의는 정확한 결론이 없었고(그래서 하라는 걸까, 말라는 걸까?), 불행히도 돌고래처럼 주파수로 소통하는 능력이 내게는 없었고, 모두가 예스할 때 노!라고 하는 광고는 성공했지만 모두가 안 웃을 때 나만 웃는 게 성공은 아니었고, 궁중 암투는 사극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가 방송국인지 방송궁인지 모르겠고. 움하하하, 맙소사... 그 당시 사회인이 된 기분이 어떠냐는 친구에게 '똥 사이로  가는 기분이야'라고 답하는 일기를 싸이월드에 끄적거렸던 기억이 난다. (주변 사람이 똥이란 게 아니라, 내가 까딱 잘못하면 낭패가 된다는 뜻으로!)

  이 세상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은 나의 상식을 뒤집어 놓았다. 옳다고 여겨졌던 선한 캐릭터는 바보 취급받고, 독하고 앙칼진 캐릭터는 독해서 좋다고 인정받았다. 독한 캐릭터라이징과 대담한 포지셔닝으로 기싸움에서 이겨야 했다. 비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순수한 칭찬도 새끼줄처럼 꼬여 전달됐다. 뒤집힌 세계에서 나는 오락가락하는 존재였다. 누구는 최고라 하고 누군가는 최악이라 했다. 나는 여기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먼 산만 보던 실성한 움하하하는 업무차 메일을 보낼 때나 영혼 없이 웃어보는 처지가 되어갔다. 그런 내게 한 선배가 조언을 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말투로. 

  “널 버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버려. 여긴 그런 곳이야.”


  날 버리라고? 왜 때문이죠? 날 버리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되는데, 나를 잃고서는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죠? 

  그렇지만 달리 들을 조언도 없었기에 실천해보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버리는 작업을 하기 위해, 나를 가지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했다. 알아야 버릴 수 있을 테니까. 마치 피카소가 평생 배운 것을 버리고 나서 입체파의 그림을 그려냈던 것처럼.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쉴 새 없이 판단하는 일은 대부분 긴장과 초조, 불안 속에서 이루어졌고 의아함을 남겼다. 버릴 것을 찾으면 찾을수록 길을 잃었다. 전에는 대수롭지 않았던 일도, 나를 잃고 나니 전부 어려워졌다. 무엇이 맞고 틀린 지 기준을 잃고 남들의 눈치를 살폈으며, 선배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강박에 실수가 잦아져 눈물만 났다. 내게서 버릴 점들을 찾다 보니 장점은 눈에 들지 않고 단점만 가득했다. 어느덧 훌륭한 장점까지 갖다 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에게 버림받았다. 

  나는 마치 속없이 웃다가 급랭된 한 마리 동태 같았다. 활기 없고 얼어 있는 인간. 쓸모 있게 '일하는 사람'이 되려 했지만, 유쾌한 기능이 사라져 오히려 쓸모없어지고 말았다. 좀 부족하고 모자라도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 나의 재능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 그 자애감을 잃고 사는 맛도 잃었다. 인정하기 분하지만 사회에 침투하려던 나의 자아는 균형 게임에서 지고, 분리수거에도 실패한 것이다. 웃음을 만들고 싶었는데 우스워졌다. 유머를 좋아하는 것과 예능작가가 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오래도록 잊지 않았다, 선배의 그 한 마디를. 혹시 '비움'의 미학을 '버림'의 미학으로 잘못 전한 게 아닐까, 애송이인 내 모든 것이 못마땅해서 그랬을까, 독하게 키우려는 애정의 마음이었을까. 차라리 에고를 쫓아내고 텅 비워두라고 말했다면 달랐을텐데. 어떤 의도였든 오류가 있었고 부작용은 컸다. 

  내가 뭘 모르긴 어지간히 몰랐던 바보였다는 걸 인정한다. 간단히 말해 이렇게 몰랐다. 굳이 티 내지 않아도 알 사람들은 다 알아보고 (아니? 영원히 아무도 모른다) 성실하고 솔직한 사람은 인정받고 (아니? 권력이 보는데서 성실해야 한다), 같은 업종의 사람들은 나와 같은 마음이다(아니? 적과의 동침이다). 구체적으로 이런 철부지 같은 믿음을 갖다 버리라고 알려주지 그랬나. 

  그로부터 먼 훗날, 친구들이 나를 위해 담합을 도모했었다는 걸 전해 들었다. 각자 집에서 본 저녁 8시 뉴스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다니던 방송국의 교양국에서 일하던 막내 작가에 관한 뉴스였다. 그는 마음을 버리며 일하다 결국 일하던 중에 옥상을 찾아 자신을 내다버리는 선택을 했다. 갑자기 친구들의 전화기가 바빠졌다고 한다. 

  "호랑이가 힘들다고 하는 건 다 들어주자. 진짜 힘들단 얘기래."

  "애가 부정적으로 굴어도 우리가 잘 해주자.”

  "걔 얼굴이 아주 죽상이 됐어."

  한동안 나를 지켜주려는 우정에 힘입어 힘을 내서 힘든 얘기를 힘주어 할 수 있었다. 나의 실수담에 애들이 웃어주면 조금씩 치유가 되었다. 다만 친구들은 잠깐씩 등장하는 연예뉴스를 듣기 위해 재미없는 나의 노동뉴스를 끝까지 참고 들어주어야 했다.  

 

  웃기는 게 좋았던 자가 웃음으로 밥 먹고 살려다 우스워진 이야기를 좀 길게 했다. 그로부터 대략 16년을 더 살았다. 묵은 관계와 감정의 분리수거가 필요한 생애전환기를 맞으며 무엇을 얻고 버려왔는지 생각해봤다. 삼십 대를 넘어오는 동안 버릴 것이 늘었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구분할 줄 알게 됐다. 경력이 쌓이면서 미움도, 편견도, 고집도 적잖이 쌓였다. 이제는 감사만 남기고 그 모든 것을 갖다 버릴 때가 됐다. 한차례 분리수거가 끝나면, 나는 꽉 찬 것도 텅 빈 것도 아닌 상태가 될 것이다. 공기 반 소리 반처럼 반은 비고 반은 차 있는 존재랄까. 빈 곳은 고요하고, 채운 곳엔 오로지 웃는 나뿐이길 바라며.

  나는 새 후배를 맞을 때마다 내게 성급히 찾아왔던 수수께끼 조언을 떠올린다. 그리고 엄청난 프로그램을 만드는 그의 소식을 접할 때면 물어보고 싶어 진다. 그래서 당신은 그 오래전 무엇을 버렸는지, 버리고 무엇을 얻었는지. 너무 어리고 무지했던 나는 덕분에 빈대 잡다 초가삼간 태우듯 영혼까지 홀랑 태워버렸다는 것을 혹시 아는지. 

  바싹 타버린 시간 덕에 알게 된 것 하나는 있다. 자신을 잃은 사람은 웃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누구도 웃길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없을 땐 비위만 맞춰주면 방긋 웃는 갓난아기 앞에도 가기 꺼려진다는 것을.) 나는 버리지 않을 것이다. 웃음과 눈물의 대환장 콤비네이션의 맛을 아는 나를.  

 

노답_ 나는 요즘 꽝 중의 꽝이야. 우스꽝!
너도 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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