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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트리 Feb 06. 2020

미용실의 반칙 선수들

마흔 특집 에세이

   미용실의 약품 냄새는 사람을 홀리는 데가 있다. 이 냄새를 서너 시간 맡으면 미모를 되찾아 나갈 수 있을 거라는 마법적인 냄새. 나는 엄마가 내게 첫 파마를 시도할 때 앉았던 의자를 기억한다. 어른들이 앉는 미용실 의자에 꼬마 의자 하나를 더 얹어서 미용사의 눈높이에 맞췄다. 그리고 불에 달군 은색의 집게로 꼬불꼬불하게  말리는 내 머리를 지켜보며 엄마는 연신 "예뻐지는 거야, 가만있어." 라고 했다.

   그래서 결과는?

   거울 속에 볼살이 통통한 양배추 인형이 앉아 있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미용실의 첫 경험이다. 그 이후로도 엄마는 내 머리에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국민(!) 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들장미 소녀 캔디>에 나오는 이라이자의 머리 스타일과 같은 일명 '부메랑' 파마를 시켜주었다. 나는 꼬불꼬불 말려 올라간 머리카락에 보자기를 쓰고 있는 내내 미용사의 실력과 파마의 정체성을 의심했지만, 최종적으로 수건을 벗겨내고 얻은 머리에 내심 만족했었다. 검은 색깔만 다를 뿐 내 머리는 이라이자의 얄밉도록 윤기 나는 귀족 머리 그 자체였으니까. 나는 신데렐라가 된 기분으로 낭만적인 입학식을 그리며 학교에 갔다.

   그러나 결과는?

   귀족의 멋 따위를 알 리 없는 남자 어린이들이 입을 놀리기를,

  "야, 네 머리 돼지 꼬리냐? 얘 머리에 돼지 꼬리를 달고 왔대요~!"

라고 하였기에 나는 엄마에게 당부했다. 아침마다 힘들게 머리를 말아주지 말라고. 더 이상 놀림을 견디기 힘들다고. 다리 사이에 날 끼고 머리모양을 잡아주던 엄마는 이건 말아야 제대로 사는 머리다, 돈 주고 한 머리를 왜 안 하겠다고 고집부리냐, 며 빙빙 돌리던 손가락을 마지못해 거두었다. 그리하여 이라이자고 캔디고 신데렐라고 뭐고 간에, 부메랑 머리는 내 인생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그 대신 코흘리개 소년들에게 옐로카드를 부메랑처럼 날렸다.

*

*

   사람으로 태어나 미용실과 인연을 맺는 것은 도시인이라면 웬만해선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코리언 뷰티의 시대에 코리언으로 살면서, 머리를 방치한 코리언은 푸대접을 받기 십상이다. 우리는 이제 미용실에서 비단 탐스러운 헤어스타일만 얻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기싸움을 잊게 해주는 부드러운 거품과 나른한 샴푸 향과 시원한 가위질이 주는 힐링을 얻으러 가기도 한다. 머리를 만지는 전문가의 손길을 느끼는 순간, 클라크 켄트로 들어왔지만 슈퍼맨이 되어 나가기를 욕망하게 된다.

   내가 그런 욕망을 채우러 가는 미용실이 두 곳 있다. 고객의 욕망을 두 손안에 쥐고 흔드는 두 명의 원장을 알고 있는 셈이다(그 둘이 나를 아는 것과는 별개로). 참고로 그들은 모두 남자이며, 서로 견주어도 지지 않을 정도의 마르고 깐깐한 인상이 특징이다. 편의상 닮은꼴 연예인 이름을 따서 (유)희열과 (서)태지라고 하겠다. 그들의 깐깐함을 신뢰했던 나는 희열과 태지를 번갈아 만나곤 했다. 그런 이유는 내가 스타일을 크게 바꾸지 않기에 날짜와 시간이 빨리 허용되는 쪽을 선택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 편리한 생각이 헤어디자이너의 자존심을 건드릴 줄은 몰랐다.


   나는 여자로서는 드물게 일 년에 딱 두 번 머리를 한다.  모량도 많고 모질도 고집이 세기 때문에 상반기 하반기로 나눠 공사해주는 느낌으로. 대놓고 '나 멋 부렸어요'가 아니라, '원래부터 이렇거든요'하는 클래식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영애의 무심하게 숱 많은 머리라든지, 라붐에 나오는 소피 마르소의 수수한 단발머리 같은 스타일 말이다 (얼굴 얘기는 일단 넣어둬). 그래도 디테일에 유별나게 목숨 거는 성격이라 조금씩 다른 스타일 샘플을 여러 장 준비해서 보여주는데, 그들은 내 머리를 내 맘대로 하게 놔둔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타이즈와 망토를 빨아 입은 슈퍼맨 정도는 만들어 주었다.

   희열과 태지를 번갈아 만나면서 알게 된 점은 서로가 서로의 실력을 되게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내 머리를 사이에 두고 시공간을 뛰어넘어 만나는 두 사람은 '네가 누군지 모르지만 이렇게 자르면 어떡하니'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나는 그들의 비방을 듣는 주체로서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자주 가지는 않더라도 내 마음의 미용실은 단 두 곳뿐이라 스스로를 단골이라 의심치 않았는데 그건 그쪽 입장도 들어봐야겠지. 그도 그럴 것이 두 곳 모두 갈 때마다 편함과 불편함의 어디쯤 앉아 있는 애매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래서 머리 하기 좋은 어느 날, 그날따라 무진장 극진한 서비스를 받고 싶었던 나는 일 년에 쓰는 두 번의 기회 중 하나를 새 미용실을 찾는 데 쓰고 만다. 두 미용실 입장에서는 원래 외도를 밥 먹듯 하는 고객이 또 새로운 외도를 한 셈으로 어차피 알 수도 없는 외도였다.

   그러나. 지조를 잃은 나의 최후는 처참했다. 두피에 달린 철수세미 덕에, 두 조강지처에 대한 사랑이 불타오르는 것이었다. 짝짝짝. 단골은커녕 문제 고객으로 강등된 것을 축하한다.


   까치집을 하고 먼저 찾은 곳은 희열의 미용실이었다. 희열은 오랜만에 만신창이가 되어 온 나에게 단단히 뿔이 났다.

   "자주 오는 것도 아니면서! 나한테 어려운 걸 하라네!"

   어려운 거니까요, 실력을 믿어서 왔습니다만.

   그러길래 누구와 외도했는지 집요하게 묻는 희열에게 그게 무슨 일급비밀이라고 나는 대뜸 말하지 못하고 기억나지 않는 척했다. 미용계도 방송계만큼이나 좁고 좁은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인 걸 풍문으로 들어 알기 때문이다. 희열은 스스로 단발령이란 묘안을 가져온 나를 상상력이 부족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문제아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가위질이 중반에 이르자 생각보다 잘 어울렸는지 "오, (의외로) 똘똘해 보이네."라고 하더니만 "내가 워낙 잘 자르니까!"라며 자신을 추켜세웠다. 앉아 있는 내가 원래 똑똑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했나보다. 사각사각 잘려나가는 건 머리카락인데 왜 신뢰감도 잘려나가고 있는 걸까. 그에게서 반칙의 기미가 보였다.

   죄인의 칼처럼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똘똘한 학생 취급까지 당한 마흔의 여자는 설명할 수 없는 짜증을 느꼈다. 자신의 솜씨를 지나치게 뽐내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한껏 충만했던 믿음이 그의 잘난 척에 닳아 없어지고 있었다. 나는 죄인 된 마음에 잠자코 앉아서 희열의 타박과 자화자찬을 모두 들었다. 드라이 바람도 얄미운 그의 자아도취를 가볍게 날려버리지 못했다. 아, 거 참.

   그는 점점 만신창이 인간을 살렸다는 성취감에 취해갔다.

   "얼굴에 머리카락 안 묻었어요?"

   내가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으나, 그는 단언컨대 없다고 했다. 무심한 서비스에 나는 옐로카드를 꺼낼까 말까 고민했지만 그냥 퇴장하는 걸로.

   집에 와서 거울을 보자, 머리카락이 이마와 콧등에 잔뜩 있었다. 게다가 숨 죽은 뒤통수라니!

   뒤통수를 납작하게 만든 희열. 나는 그의 가위질을 술 마신 조니 뎁의 가위손보다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원숭이가 그냥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까불다가 떨어지는 것이다. 진정한 실력은 마지막 디테일과 겸손에 있다. 나도 아는 것을 디자이너가 모르다니. 그날 밤, 나는 단발머리의 예민한 소녀가 되어 베개를 적시며 잠들었다.

   몇 주 뒤, 친구의 말에 의하면 가발로 유명했던 고등학교 때 학생주임이 떠오른다는 뒷통수를 하고 이번에는 태지를 찾아갔다. 역시 심폐소생을 급히 요청합니다.

   "흠... (이 여자가 왜) 흠... (나한테 와서는) 흠."  

   말하지 않아도 다 들리는 것 같은 그의 속마음. 그는 희열보다 더 답이 없는 얼굴로 내 머리를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태지도 뿔이 났다. 아무래도 이 머리 모양을 자기가 가끔 만나던 희열의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지금 본인 머리가 얼마나 웃긴지 알아요?"

   돈도 내고 조롱도 당하는 고객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다. 이쯤 되니 나는 내 머리를 가지고 내 돈을 내면서 혼나러 다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의 고급 기술에 대한 값은 기꺼이 지불할 의사가 있으나 거기에 혼나는 비용까지 포함되진 않을 텐데.

나도 살짝 짜증이 났지만, 여기서 잘못되면 자기 탓을 할 게 뻔하다며 한술 더 뜬 태지를 안심시켰다. 그럴 일은 없다고. 뭐가 되어도 내 탓으로 여길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제 머리 깎는 기술이 없다는 이유로 나는 을이 되어버린다. 내 꼴이 어지간히 노답이라 자기도 잘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잘라보겠다며 가위를 드는 태지. 휴... 잘라줘서 고맙습니다, 하는 마음이 되고 말았다. 아, 거 참.

   희열과 태지는 단골도 '못 된' 주제에 문제아가 되어 찾아온 내가 여간 싫은 게 아니었나 보다. 충성이 없는 관계는 이렇듯 못 생겼다.



   미용사의 심술을 당해낼 고객은 없다. 머리털을 아름답게 그루밍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없어지지 않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사람들. 인간의 자신감과 직결된 신체 부위를 다루는 만큼 그들은 절대 권력을 차지한다. 그들이야말로 손끝 하나로 사람의 자존감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타노스가 아닌가. 디자이너들은 내 머리에 대한 권위는 몽땅 자신한테 있다는 투로 말한다.

   "그것도 드라이예요."

   그들의 업장은 앞머리도, 쇼트커트도, 파마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기분 전환하러 가는 미용실에서 나는 왜 스트레스를 받았나. 절개와 지조를 지키지 않음으로 자기 발등을 찍었다고는 하지 말자. 내 머리도 내 맘대로 못 하는 판국에 무슨 절개와 지조!

   그러고 보니 미용실도 받기 싫은 손님이 있겠구나, 오는 손님을 막을 수도 없고 난감하겠구나. 그게 나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불현듯 찾아왔다.

   그래서 지금 결과는 어떠냐고?


   네. 사랑해요, 문!희!준!입니다.(또르르)


   연거푸 반칙을 당하고 나서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우연히 한 횡단보도에서 희열을 만났다. 반갑고도 짧은 인사 중에 그의 시선은 내 머리로 옮겨갔다. 나의 거듭된 반칙을 눈치챈 눈빛이었다. 횡단보도가 이렇게 길었던가, 나는 당황하여 급히 연말 인사를 건네고 뛰었다.

   "원장님, 머리 크리스마스!"


노답_ 내 머리지만 지분은 나한테 없어.



(이게 아닌 거 같은데...)


헤어디자이너는 죄가 없어. 얼굴이 반칙했잼!


반칙 인생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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