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트리 Feb 04. 2020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마흔 특집 에세이

아지트에서 머리를 식힐 계획이었다. 내 아지트는 합정역에 있는 대형 서점이다. 서점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누군가의 지식을 빨아들이는 취미 생활에 몰입하던 즈음. ASMR 같던 백색소음이 멀리서 들려오는 유난한 소음에 의해 흩어지고 있었다. 그 특정 소음이 점점 가까워졌다. 시야에 앳된 초등학생 두 명이 들어왔다. 소음을  몰고 온 신난 망아지들은 캐럴 가사의 한 부분만을 해리포터가 외치는 마법의 주문처럼 힘주어 불렀다. 돌림노래로. 아주 또박또박. 몹시 우렁차게. 오시지 않으면 쳐들어갈 기세로.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다녀가실 산타에 대한 두 아이의 강한 소망은 동분서주하며 서점을 정복하고, 내 주의력을 정복하고, 급기야 유아서적 코너의 다른 아동들까지 정복했다. 나도 따라 불러야 하나 마나를 고민하는 어린 동공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마 두 아이는 우리가 아침에 우연히 들은 멜로디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온종일 따라 부르게 되고 마는 이어 웜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렇게 이해를 하면서 풋, 하고 웃었다. 나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이렇게 중독적인 패턴을 갖고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때마침 그 신난 아이들이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의 마지막 음절에 잔뜩 힘을 주며 내 옆을 지나갔다. 그러자 그 뒤로 불쑥 불호령이 나타나 장단을 맞췄다.


"안 다녀가시게 생겼어! 말도 안 들으면서 무어얼!!"


이 돌림노래 현상은 아침을 먹으면서 시작됐겠지. 응당 받을 것이 있다고 당당히 기대하는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느라, 엄마는 인내심이 늘었을 것이다. 그 인내심이 사람 많은 서점에 와서야 고삐를 당기느라 타이트해졌을 것이다. 계속 망아지처럼 굴면 선물은 보장할 수 없다는 뉘앙스를 노래 장단에 맞춰 구사하는 엄마. 그 가족이 귀여워 내가 다 흐뭇했다. 아이들은 엄마의 협박에도 아랑곳없이 오늘 밤을 강조하며 열창을 멈추지 않았다. 오실 줄로 믿습니까? 믿습니다! 같은 느낌마저 자아내는 형제의 듀엣은 성공할지.

아마 산타는 이들의 집에 다녀가는 것만은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형제의 엄마가 목소리와 달리 얼굴은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었으니까.


나이가 이쯤 되면 그런 생각이 든다. 크리스마스는 왜 존재하는가. 명절이나 연휴는 반길 수도 즐길 수도 없어 부담스럽다. 특별한 날을 골라 즐겁기보다 매일이 평온했으면 좋겠다. 사라진 아이들과 5분간 대화하는 상상을 했다.


나  : 얘들아, 너네한테만 말해주는 건데 산타는
        아마존에 밀려서 선물 배달 그만두셨어.
        그리고 아무리 노래해도 귀가 안 들리셔.

형  : 그럼 어떻게 해요?

나  : 직접 와서 가져가라고 뉴스에 났던데
        유튜브만 보느라 못 본 모양이구나.
        북유럽에 핀란드 알지? 거기 사신대.

제  : 거긴 어떻게 가요?

나  : 요즘에는 구글에 찍으면 다 나와.
        항공권 빨리 끊어야 돼,
         (유아서적 코너 어린이들 가리키며) 
         쟤네들도 벌써 다 끊어놨어. 
        자, 이제 가서 엄마랑 상의해. 안녀엉!
        (이제 몸을 낮게 수그리고 빠져나간다.)


나도 오늘 밤에 누가 좀 다녀가셨으면 좋겠다.

산타 말고 택배라도.

 

노답_ 몸에는 보약, 마음은 고약.  




I told you. NO SANTA.


매거진의 이전글 건드리지 마, 마춘기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