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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트리 Feb 11. 2020

즐겁게 춤을 추다가

클럽수행


일을 마치고 우리는 곧장 클럽으로 향했다. 

춤으로 조금 몸을 풀고 앉은 재희가 더는 못하겠다는 얼굴로 말한다.

 

“아무래도 다시 연락할까 봐요.”


 “아니, 왜 그래야 하는데?”

 

“자꾸 생각나서요.”

 

재희는 며칠 전에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그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이유는, 연애할 때가 아닌 거 같아서. 


“너무 이기적이란 생각 안 들어? 먼저 그만두자고 한 건 너고, 자꾸 생각하는 것도 너고, 다시 연락하고 싶은 것도 너인데.”


 “그런가요?”


 “한 번 끊어낸 테이프는 다시 이어놓을 수 없지. 걔 그만 괴롭혀."


나는 춤이나 추자고 했지만 재희의 얼굴을 보니 자기가 만든 상황을 파악하느라 술이 확 깬 것 같았다. 

남자들은 대체적으로 그랬다. 늙든 젊든 상관없이. 생각 없이 '저지른 것'에 책임지기보다는 욕구와 본능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것만 자기 책임이라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여자 없는 여유와 편리가 절실하다는 착각을 시작한다. 단순히 여자의 노력을 귀찮게 여긴다.


그에 비하면 여자는 얼마나 복잡한가. 남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이. 자신이 내키지 않는 것도 남자가 원할만한 일이라면 찾아서 하는 것이 자기 책임이라 생각한다. 남자가 좋아하니 둘 다에게 좋을 거라는 착각을 시작한다. 그렇게 사랑받고 싶은 자의식을 유지하는 방식을 고집한다.

일반화해서 미안하지만, 지금은 좀 하자.


남자 하나가 망가져가고 있는 이 순간을 보자니, 춤맛이 확 떨어질 지경이다.

아까 네 번이나 들이킨 데낄라도 평소보다 빠르게 해독되고 있었다. 


"누나, 나 어떡해요?"


"어떡하긴, 춤춰."

 

다른 생각 말고 음악에 몸을 맡겨, 오늘 밤은 춤추기로 했잖아. 시간이 얼마 없다고.  

누나가 지금보다 아주 어렸던 날, 

이별의 고통이 데낄라보다 독하게 증류되고 있던 그날도 오늘처럼 클럽에 있었다. 

지금의 너처럼 나 또한 춤에 미친 사람들 사이에서 유령처럼 희미해지고 있었어.

그때 친구가 말없이 내 손을 잡고 대신 흔들기 시작했었다. 

그야말로 나를 망치려고 나타난 나의 구원자

마주 잡은 손끝으로 무덤덤하고도 단단한 위로가 전해져 춤이 되었어

나는 슬픔이 춤이 된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지. 

그 날, 태어나서 가장 즐거운 춤을 춘 것 같아.

그러니까 너도 춤추자나와 마주 보고 추는 거야.


 조금 비겁하지만 오늘만 구해줄게.


재희는 울면서 춤을 춘다.

어제의 감촉을 기억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어제의 입술을 잊기 위해 누군가의 입술을 죽을 듯이 탐한다.



New York, USA ©2012. hr


여기 나와 나의 구원자 제시카의 쿼트를 너에게 전해주마. 


Dance to remember. Kiss to forg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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