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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진 Dec 21. 2021

해피 크리스마스, 해리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2001)

해리포터는 내게 함께 성장한 어릴 적 친구 같은 존재다. 해리포터를 책으로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해리와 비슷한 나이의 초등학생이었고, 매해 출간되던 다음 편에서 해리도 나처럼 나이를 한 살씩 더 먹고 새 학년에 올라갔다.


총 일곱 권으로 이루어진 원작 소설은 나의 십 대 시절 전체에 걸쳐 천천히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해리포터 신드롬을 직접 겪은 세대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 편이 출간되었다는 뉴스가 들려오면,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일까, 표지는 어떻게 생겼을까, 기대에 찬 마음으로 서점을 찾아가 입구에 가득 쌓인 신간을 집어 들던 일이 교복 입던 시절의 낙이었다. 뒤이어 만들어진 영화도 모두 챙겨봤음은 물론이다. 영화관에서 대망의 마지막 편을 관람하며, 어른이 된 해리와 친구들의 엔딩신을 지켜보던 나는 어느덧 대학생이었다. 그로부터 제법 시간이 흐른 지금은 오랜만에 영어공부를 한답시고 원서로 다시 읽고 있다. 비즈니스 영어를 공부해야 할 상황이지만 깃펜이나 망토 같은 단어를 단어장에 주워 담으며 실실거리는 삼십 대가 되고 만 것이다.


책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건, 단언컨대 1권 마법사의 돌이었다. 주인공 해리가 충분히 불우하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벗어나, 마법사라는 자아를 깨닫고 마법학교에 가는 도입부 때문이었다. 괴물이나 어둠의 마법사처럼 비현실적이고 타협 불가능한 존재들을 대적하는 것보다는, 시쳇말로 '혐생'을 벗어나서 본래 자신이 속한 세계로 돌아간다는 신화적 서사에 더 감정 이입했는지도 모른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허전했던 부분들이 마법이라는 도구로 채워지는 과정은, 마치 내가 바랐던 무언가처럼 마음에 생생하게 남았다. 해리는 갓난아기일 때 고아가 되어 친척집에 떠맡겨졌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실은 마법사였고, 그 세계에서는 모두가 그를 알고 환영한다는 인생의 반전 같은 비밀을 알게 된다. 먹고 싶은 만큼 충분히 먹을 수 없었던 음식은 호그와트에서는 눈 깜빡할 순간에 은쟁반에 풍성하게 차오르고, 스카치테이프를 덕지덕지 감아서 써야 했던 부러진 안경 따위는 지팡이만 한 번 휘두르면 깨끗하게 고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작에 대한 선명한 기억을 바탕으로 할 때 영화 1편은 더 볼만하다. 두꺼운 책이 담고 있었던 많은 에피소드들이 영화에서는 다소 압축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마치 꿈을 꾸는 듯 순식간에 흘러간다. 해리가 겪었던 각종 비마법적 수난과 시행착오는, 영화보다 책에서 훨씬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었다. 나의 머리는 마치 문장을 자동 완성하는 키보드처럼, 영화를 보는 내내 장면과 장면 사이에 원작에서 읽었던 디테일을 끼워 넣었고, 어쩌면 영화가 내게 기대했던 그 이상의 응원과 지지를 주인공에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해리가 겪었던 외로움을 잘 알기 때문에, 내가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눈 쌓인 성의 기숙사에서 잠을 깬 해리가 따뜻한 벽난로와 가득 쌓인 선물들을 바라보면서 론과 크리스마스 인사를 주고받는 순간이 되었다. 등장인물들을 향한 애정이 있을 때 더욱 귀엽고 포근하게 느껴질 테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영화를 보는 누구에게나 이 장면은 소중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뒹굴뒹굴 노는 따뜻한 크리스마스에 대한 소망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올 한 해 다소 힘들고 어려웠더라도 잠시나마 환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연말을 보냈으면 좋겠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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