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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진 Aug 08. 2023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를 진실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이 우울한 이유는 제각각 다르다. 그리고 각자의 불행을 이해하거나 공감받는 일은 그만큼 쉽지 않다.


내가 의사나 상담사가 아니어서기도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그가 우울한 이유를 나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상황만큼은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단순히 왜냐고 천진난만하게 묻거나 고작 그걸로 우울해하면 되겠냐는 식의 태도가 상대방에게 상처만 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우울증의 원인은 당사자도 명확하게 알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처음 의사와 상담을 할 때 다소 두서없이 늘어놓았던 일련의 사건들은 표면적인 증거가 되어주었다. 흔히들 우울감을 느낄만한 몇 가지 사건을 연달아 겪었으니까. 그러나 치료를 시작하며 스스로 도움이 될 만한 몇 권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한 이후로는 점차 그 사건들이 진정한 이유는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슨 일을 겪었는가 만큼이나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또한 관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왜 우울한 지 안다는 것은 여러모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이유가 무엇인지를 떠나서, 본인이 얼마나 우울한 지조차 잘 모르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일 거라고 생각한다. 일단 감정이라는 것은 손으로 만져지거나 저울로 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만약 하루의 기분도 몸무게나 체지방률처럼 측정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주기적으로 기록하고 관리할 텐데. 나의 경우, 어릴 적 가끔 상태가 안 좋을 때 그걸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은 어머니나 학교 선생님 같은 주변 사람들이었다.


슬픔이나 분노는 빗물처럼 젖어들면 몸을 무겁게 만드는데, 그렇게 눅눅하고 처지는 상태가 지속되면 어느 순간부터 가뿐하고 뽀송했던 시절의 감각을 잊어버리게 된다. 우울한 사람들은 입은 웃고 있어도 눈밑은 그늘져 있다. 억지로 말을 시키면 약간 잠긴 목소리로 핵심에 겉도는 문장들만 장황하게 늘어놓을지도 모른다. 하루 중 어느 시간에 만나더라도 침대에서 막 굴러 떨어진 것처럼 얼빠진 표정이나 추레한 몰골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물론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 글만 읽고 내 주변 사람들은 다 괜찮은 것 같다고 섣불리 예단하지는 말자.


진실한 감정은 종종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작당처럼 느껴진다. 사적인 문제일수록 그 일에 대한 감정은 불쾌감 또는 불편함 정도로 에둘러 표현 가능한, 검고 커다란 먼지 덩어리처럼 보일 때도 있다. 게다가 부정적인 감정을 촉발하는 문제보다 당사자의 감정적인 상태 그 자체가 더 문제처럼 여겨질 때, 감정은 이제부터 초점을 맞추고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프레파라트가 아니라 마치 욕실 하수구에 엉켜 있는 머리카락처럼 서둘러 치워야 할 대상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속으로 감춰진 기분은 많은 사람들과 부대낄 때 더욱 뒷전이 된다.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들에게 시종일관 우울한 기색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니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마치 물속에 잠겨 있다가 막 빠져나온 것처럼 납덩이같이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이끌고 학교에 가고 회사에 가고 집에 갈 것이다.


본인도 다루기 어려운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조리 있게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왜 힘든지, 얼마나 힘든지, 아무리 공감해 주기를 바라봤자 어차피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한다. 아픈 사람에게는 가혹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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