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장소

by 임유진
길을 전혀 잃지 않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고, 길 잃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파국으로 이어지는 길이므로, 발견하는 삶은 둘 사이 미지의 땅 어딘가에 있다.
(리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 31쪽)


모험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신대륙처럼 낯설고 새로운 것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원래 가지고 있었으나 잃어버린 것, 외면하거나 무심코 지나쳐버린 것들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 되어야 하는가.


연초, 시간을 내어 작년에 쓴 일기를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그중 어느 날의 기록에서, 나는 삶을 사랑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나의 글이나 행동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사랑하게 만들고 싶은 것인지도 자문하고 있었다. 그리고 혹여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어렵더라도, 그런 상태 자체에도 아름다움은 있을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유미주의적 자기 연민도 덧붙이고 있었다.


세상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누군가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을 때, 처음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내 인생의 한 구석은 내가 원하고 남들이 원하는 무언가로 채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사랑하는 게 때때로 어렵다. 어느 때는 확신에 찬 태도로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내일이 기다려지고 그래서 오죽하면 영원히 살고 싶다가도, 어느 때는 이게 다 추잡스럽고 고통스럽게만 느껴진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에도 노력이 필요했던 것처럼, 내가 아닌 다른 존재들을 나처럼 사랑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언가를 애써 사랑하겠다면…… 그 대상은 살아가는 일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삶에 대한 사랑을 잘 붙들고 살 수 있을까. 이 순간이 지나면 행복이 찾아온다고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 생에 어떻게 애정을 가질 수 있을까.


일기에 남겨져 있던 질문은 그날 이후로 풀겠다는 다짐 없이 잊혀버린 숙제였다. 그 숙제를 다시 발견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책 <행복의 기원>을 읽었다. 그 책을 통해 의미 있게 사는 것과 행복하게 사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이냐, 행복한 삶을 살 것이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첫째, 이 둘은 같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는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삶의 선택과 관심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잣대가 필요하고, 많은 경우 그 잣대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다. (중략) 여기서 행복은 역풍을 맞기 시작한다.
(서은국, <행복의 기원>, 191쪽)


나는 과거를 등한시한다. 지나간 시간들, 먹은 것, 느낀 것, 말하고 실천에 옮겼던 생각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는 미래보다 가치가 떨어진다. 내가 찾던 삶의 의미는 아마도 미래에 있었을 것이다. 아니, 늘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하며 눈을 돌렸을 것이다. 덕분에 어느 정도는 의미 있게 살았다. 그러나 의미에서만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면 조금은 더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나를 찌르지 않은 유리병은 바닷물에 떠다니고 있었다. 내가 잠식당했던, 그리고 빠져나와서도 아주 오랜 시간 떠나지 않고 지켜보았던 마음속의 바다.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이유로 잠을 설쳤던 날들, 그리고 이유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던 날들을 떠올린다.


부유하는 마음의 찰나를 일기에 기록하고, 시간이 흘러 다시 읽었을 때 그것이 그저 지나가버리고 끝난 순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살아갈 이유는 의미심장하게 들려도 사실 지난 일 년간 스스로 던지고 받았던 무수한 질문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래서 답을 얻으려는 노력을 성실하게 기울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약간의 시간이 걸린 끝에 다시 그 질문이 열어둔 길에 들어선 기분이다. 생을 온전히 마주하고 사랑하는 법은 여전히 알고 싶고,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대상이며, 이제는 앎으로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감각해야 하는 무언가임을 어렴풋하게 깨닫는다.


그리고 다음 책으로 <길 잃기 안내서>를 읽고 나서, 안전하게 길을 잃기 위해 필요한, 돌아갈 수 있는 장소들이 어디인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어떤 장소로 남을 것인지도 생각해 본다. 그 과정에서 나는 오랫동안 머릿속에만 있었던 그곳, 우울하지만 편안하고, 춥고 무력하면서도 동시에 치열하게 끓어오르는 그 바다를 다시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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