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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moon society Jul 30. 2016

이문동을 처음 만난 외국인에게

누구에게나 나만의 장소가 필요하다


누구나 타지에서 나만의 장소를 찾고 싶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에겐 어려서부터 이사를 많이 다닌 친구가 있었다. 그는 늘 자신만의 장소를 찾아 헤맸다. 다른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치는 곳이라도, 자신에게는 마음을 붙일 수 있는 곳을 말이다. 그 친구는 스스로가 꼭 철새 같이 느껴진다고 말하곤 했다.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철새들도 짧은 기간이라 해서 아무 곳에나 머무르지는 않는다. 잠시 동안이지만, 그들이 서식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을 찾아 머문다. 


사실 진짜 철새들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이문동의 철새들인 외국인 친구들의 이야기다. 매 학기 수백 명의 외국인 친구들이 고국을 떠나 외대를 찾는다. 그들은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문동에 머무르다 돌아간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마치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철새 무리를 떠오르게 한다.


마음 기댈 곳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공간이 아무리 멋지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이라고 해도 내 마음에 와 닿지 않으면 의미 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특히나 고국을 떠나온 이문동의 철새들에게는 온전히 마음을 쉴 수 있는 철새도래지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이문동은 외국어 대학의 특성상 외국인 학생들이 구성원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 비해 외국인에 대한 배려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제화 부문 1위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교내 시설에서도 외국인 학생은 배려받지 못한다. 오직 한글로만 이루어진 학교 내 학생식당과 복사실부터, 길거리의 간판, 표지판 등은 외국인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낯선 이국음식과 한글로만 설명된 메뉴로 인해 이문동에 처음 와서 몇 주 동안 학생식당에서만 끼니를 해결한 외국인 친구도 있었다. 이런 곳에서 나만의 장소를 찾아 향유하는 것은 그들에게 시도부터가 높은 장벽을 넘는 것처럼 매우 힘겹게 느껴진다.



그런 그들을 위해, 여기 이문동의 한 철새가 또 다른 철새들을 위해 철새도래지를 직접 만들었다. 바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동 288-45의 JJAY45이다. 우리는 이곳을 기록하려 한다.


JJAY45는 이문동 한 골목에 위치한 바(Bar)다. 중국에서 철새의 삶을 살았던 사장님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문동에 자리했다. 경험을 통한 사장님의 배려는 곧 JJAY45의 내부 모습에서 드러난다. JJAY45는 외국의 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픈식, 스탠딩 구조로 잔을 들고 테이블을 자유로이 오가며 다른 무리와도 쉽게 어울리는 개방적인 분위기이다.


가게 안에는 그들이 그리워하는 다양한 놀이거리들이 가득하다. 다트나 푸스볼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이문동 유일의 비어퐁을 빼놓지 않았다. 고향에서 자주 가던 술집을 생각나게 할 뿐만 아니라, 아는 사람 하나 없던 이곳에서 비어퐁을 하며 자연스레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곳이 처음 외국인 학생들에게 입소문을 타게 된 계기도 우연히 간판에서 비어퐁을 본 독일 학생이 방문하면서였다.



저는 사실 영어를 못해요. 하지만 철새 시절 생각으로 먼저 다가갔어요.


이 곳은 사람들에게 아지트로, 또 쉼터로 다가갔다. 특히나 외국인 친구들은 이 곳을 통해 이문동에 정을 붙이게 되었다. 이 모든 배경에는 JJAY의 사장인 김용은씨가 있다. 용은씨는 외국인들이 주로 오는 바(Bar)를 운영하지만 영어를 못한다. 그럼에도 자신 또한 철새로 살았던 경험이 있기에, 그때를 생각하며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한 걸음 먼저 다가가서 건넨 저녁은 먹었냐, 요즘 뭐하고 지내니 같은 말들은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외국인 친구들이 이곳을 다시 찾는 이유가 된다. 작은 관심과 사소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으로 그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소함에 많은 철새들이 JJAY45로 모이게 되었다.



햇수로 2년째 이문동에 자리한 용은씨에게 JJAY45와 관련한 특별한 이야기를 물었을 때, 우리는 그가 늘 쓰고 있는 JJAY라고 장식된 모자와 헨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헨리는 독일에서 왔던 유학생으로, JJAY45에 오던 손님 중 하나였다. 그는 외대로 교환학생을 와 이곳에 머무르며 JJAY45를 자주 찾았다. 이 곳에서 그는 자신의 시간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용은씨와도 친구가 되었다. 가게 주인과 손님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 중심엔 앞서 말한 용은씨의 마음이 있었다. 처음 헨리가 왔을 때, 용은씨는 언제나 그랬듯 먼저 다가갔다. 서툰 영어실력이지만 몸짓까지 더해가며 대화를 풀어갔고, 개발 중인 메뉴를 서비스로 주기도 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영어로 대화하는 것에 부끄럼이 많듯 용은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두려움보다 자신의 가게를 찾아준 외국인 친구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이 더 컸다. 헨리는 이문동에 머무는 4달 동안 꾸준히 JJAY45를 방문하여 용은씨와도 개인적으로 종종 만나곤 했다. 헨리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그들의 관계는 지속되고 있다. 크고 화려한 추억은 아니지만 타지에서 소소하게 공유했던 일상의 기억이라는 사실이 그와 용은씨의 관계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JJAY 모자는 헨리가 독일로 떠나기 전 함께 맞춘 것으로, 서로의 일상에 일부가 되어 힘이 되어준 두 사람의 우정을 기억하는 증표 었다.


이곳을 기억하는 친구들이 이문동에 다시 찾아왔을 때,
내가 여기 없다면 그 친구들은 속상하지 않을까요?


용은씨는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 이문동 생활을 떠올릴 때 먼저 생각나는 곳이 JJAY45였으면 좋겠다고 한다. 즐겁고 편한, 마음을 기댈 수 있었던 곳으로 말이다. 현실적으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을, 특히나 이문동의 작은 바를 다시 방문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곳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기억 속에 이미 JJAY45는 이문동에서의 쉼을, 친구들과의 시간을, 즐거움을 나누던 장소로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이 공간은 의미를 갖는다.


밤에 해야 하는 일인 만큼, 때로는 체력의 한계를 느낄 때도 많다. 그럼에도 그가 계속 가게를 운영하는 이유는 이 곳을 찾았던, 또는 찾고 있는 많은 '친구들' 때문이다. 그는 수많은 친구들의 추억 속의 공간을 유지하며, 새로운 친구들에게 또 마음을 기댈 곳이 되어주는 장소인 JJAY45를 오늘도 지키고 있다.


지도를 펼쳐보게 될 때,

우리가 보는 것은 찾고자 하는 지명이 기대어 있는

과거와 미래의 흔적이다. <김선우의 사물들>


이곳을 마킹하는 일은 이문동을 다녀간 철새에게 추억으로, 이문동에 찾아올 철새에게 쉼터로, 과거와 미래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이곳을 거쳐간 친구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때로는 누군가의 기억 자체로 장소는 가치를 갖게 된다. 기억 자체로 하나의 가치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이문동의 잊혀진 구성원이던 외국인 학생들에게 마음 기댈 곳이 되어준 이 공간을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JJAY45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동 288-45


영업시간

월~수, 일 20:00~02:00

목~토 20:00~04:00


인기메뉴

무알코올 : 신데렐라

알코올 : 미도리샤워(도수 낮음), AMP (도수 높음)



놀이거리

비어퐁, 다트게임, 푸스볼




ⓒ 류명훈, 제수현, 김희진, 강은선, 조율


이문동 문화지도 : http://alertsky3.wixsite.com/i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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