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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moon society Aug 11. 2016

이문동 사랑방에서 시간의 향기를 맡다

우리는 입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최소 4년을 학교에 다닙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거의 매일 이문동에 오게 되는데, 우리는 이문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학교 밖 이문동에서 우리가 자주 보는 풍경은 무엇인가요? 수업시간에 쓸 프린트를 뽑기 위해서 줄 서서 기다리는 인쇄소의 학생들, 지하철을 타기 위해, 혹은 지하철에서 내려 학교에 가는 학생들, 식당에서 ,카페에서 공강시간을 보내는 학생들, 저녁엔 술 한잔 하러 모이는 학생들...


우리가 보는 이문동은

학생들의 공간, 학교가 있는 동네입니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고 외대앞역에 도착하면, 학생뿐만 아니라 꽤 많은 어르신들이 지하철에서 내리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문동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이문동에 자취하는 학생들을 흔히 이무너라 부르는데, 학교에서 조금만 벗어나 동네로 들어가면 40, 50년차 '베테랑' 이무너들이 살고 계시죠. 우리가 모르는 이문동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베테랑 이무너들이 모여 계시는 두 곳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시원한 그늘에서 편안히 쉬었다 가요, 독구말 공원



독구말 공원은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의 이문동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고, 정자에는 어르신들이 앉아 쉬시거나 말씀을 나누고 계십니다. 아무리 더운 날씨에도 이 정자에 앉아 있으면 시원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왜 여기에 모여 계시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 정자에서 서씨 할머니와 박씨 할머니를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이문동의 소소한 얘기들과 어르신들의 일상 이야기를 같이 이야기 하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박씨 할머니와 서씨 할머니는 이문동에 50년 정도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자녀분들도 이문동에서 다 키우셨습니다. 자녀분들은 모두 이문동을 떠나 멀리 살고 계시고, 장사를 하느라 연휴에도 잘 못 찾아오신다고 합니다. 할머니들은 자식보다 손주들이 더 그립다고 하시는데, 연세가 비슷한 저희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두 분께 이문동에 있었던 행복했던 기억을 여쭤보았습니다.



<박씨 할머니> 좋은 일? 별로 없여~ 할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시고 야채 장사하느라 힘들었어. 그냥 이렇게 나와서 수다나 떨고, 이런게 행복하지.



<서씨 할머니> 나는 젊을 때 하숙일 하면서 애들 키우면서 공부를 잘 해가지고 성적을 잘 받아올 때가 좋았지~ 요새 할아버지도 쫒겨날까봐 노름도 안 나가고 편해~


놀이터와 붙어 있는 정자여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하면 혼내시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을 싫어하시나 했는데, '손주는 어릴수록 예브고 할머니는 늙을수록 예쁘다'고 웃으시면서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어린아이들을 누구보다 예뻐하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내숭없는 그녀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두산 슈퍼 앞


신이문 쪽으로 가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오래된 슈퍼 하나가 있습니다. 슈퍼 옆에는 오래된 의자, 소파와 함께 널빤지와 돗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슈퍼 근처 사시는 어르신들을 위한 것인데요, 아무 것도 없는 슈퍼 옆의 길이 어르신들께는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는 장소입니다. 저희는 모여 앉은 어르신들의 거친 입담과 저희들에 대한 관심을 통해 어르신들을 내숭없는 그녀들이라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두산 슈퍼마켓 앞은 내숭없는 그녀들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딱 봐도 이문동 주민같지 않은 저희가 오자 처음엔 조금 쳐다보시더니, 우리가 인사들 드리자 "웅~ 여긴 어쩐일로 왔어?"라며 물어보십니다. 저희는 여기서 우리가 모르는 이문동의 옛날 모습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옛날에 연탄공장 있을 때는 장사꾼도 많아서 먹을 곳도 참말로 많았는데.


이문동엔 예전에 연탄공장이 많았지만, 지금은 신이문 쪽에 하나 남고 다 없어졌다고 합니다. 이 동네에 연탄 공장이라니,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8-90년대에는 외대 학생들이 데모를 많이 해서, 창문을 꽁꽁 닫고 사셨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외대와 인연이 깊으신 분도 계셨습니다. 40년 전 남편분이 외대에 관리인으로 취직하셔서 공주에서 이문동으로 오게 되셨다고 합니다. 할머니께서는 딸 6명 중 2명이나 외대에 보내셨다고! 다른 할머니들께선 그 집 딸들이 효도도 많이 하고 잘 해줘서 부럽다며 한 마디씩 하십니다. 한 골목에 함께 오랫동안 살아오셔서, 서로의 자녀도 다 알고 계시는 할머니들이었습니다.


아들, 딸들을 생각하면서 미소 지으시며, 몇 번이고, 착했다고, 얼마나 착했다고 하시는 모습이 누구보다 자식들을 그리워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사이인 만큼 허물 없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지켜보고만 있어도 시트콤을 보는 듯 즐거웠습니다.


우리 마음 속 이문동 지도는 학교 주변이 아니면 거의 공백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그 공백의 공간은 사실 어르신들이 살고, 모여서 이야기 하시고, 동네시장에 장보러 가시고, 아이들이 뛰어 노는, 추억이 가득한 이무너들의 '장소'였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장소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어느 새 그 공간이 우리에게도 편안하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점심 먹고 학교로 돌아가던 발걸음을 살짝 돌려 베테랑 이무너들을 만나러 가 보세요. 오랜 시간 이문동의 향기를 맡아 오신 분들이 우리가 몰랐던 이문동에 들어가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 박희준 김정은 신희 강민지 이유진






문화지도에서 더 많은 장소를 찾아보세요.

이문동 문화지도 : http://alertsky3.wixsite.com/i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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