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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moon society Aug 15. 2016

꺼지지 않는 이문동

꺼지지 않는 이문동이라구요?

조선시대 방범초소 역할을 했다는 것에서 유래한 이름인 '이문동'이 현세에 와서도 꺼지지 않는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때야 도둑을 감시하고 도둑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24시간 동안 감시하는 누군가의 졸림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이문동을 꺼지지 않게 한다는 것일까. 지금의 이문동에는 누가 있고, 그들의 무엇인가를 누가 왜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일까.


'불 따위가 사라져 없어지거나 걸렸던 시동이 도로 죽다', '거품 따위가 가라앉아 사라지다', '분노 따위의 심리적 현상이 사라지거나 풀어지다' 또는 '물체의 바닥 따위가 내려앉아 빠지다', '신체의 일부가 우묵하게 들어가다'라는 의미의 '꺼지다'라는 용언이 가지는 힘은 사라지는 것들의 과정으로 나아가거나 그들을 묘사한다.


바쁜 이문동의 사람들


동쪽으로는 중랑천을 끼고, 서쪽은 회기동, 남쪽은 휘경동 그리고 북쪽은 석관동에 걸쳐서 동대문구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문동에는 꺼져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문동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는 오랫동안 그곳을 지키기 위해서 예전부터 삶과 씨름하는 사람들이 있고, 경희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같이 학교를 다니려고 외부에서 들어온 대학생들이 있다.


전자의 사람들에게 있어 이문동은 오랫동안 살아오고, 또 살아가야 할 장소이지만 재개발 진행으로 인해서 곧 떠나가야 할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들은 투쟁해왔고 아직도 소수는 투쟁하고 있지만,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떠나야 하는 것을 인정하고 돈을 벌기 위해, 새로운 장소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침에는 더 바쁘게 일어나고, 오후에는 말할 것도 없이 바쁘며, 밤에는 고민을 가득 안고 소주 한 병을 위안 삼아 잠이 든다. 후자의 사람들은 자취하는 학생들로 갑작스럽게 부모님을 떠나온 학생들이거나 이제는 혼자가 익숙해졌지만 가끔씩 가정이 생각나는 학생들이다. 학교생활과 연애, 취업 같은 개인이 가지는 고민으로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바쁘고, 오후는 말할 것도 없으며 휴식을 취하고 싶은 저녁에는 막상 누워도 많은 생각들로 잠이 오지 않는다.


더 일찍, 더 늦게 이문동에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하고 잠은 가장 적게 자는 곳에서 우리는 항상 바쁘고 여유가 없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면 다 괜찮아진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다. 취업이니 스펙이니 하며 주변은 항상 바쁘게 돌아가고 나만 항상 멈춰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복잡하기만 하다. 아침에는 얼마나 빠르게 오늘 하루를 달려야 할지를 신경 쓰고, 오후에는 항상 달리고 있고,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저녁, 방 한켠에서 나는 오늘 너무 느리게 달리지 않았나 라는 생각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 와중에 배는 고프다. 이렇게 힘들고 바빠야만 하는 곳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까?


그런데, 여유가 없는 사람들 중에서 이문동의 학생들을 위해 '더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문동 아침의 '바쁨'을 위해서 '더 바쁜' 빵집이 있고, 일주일 중에서 가장 긴 월요일에 가장 '길게 남아있는' 월요순대차가 바로 그것이다.


5 로브즈


한국외국어대학교 후문에서 오른쪽으로 1분 정도 걷다 보면 의류 수거함을 따라 두 갈래 길이 나온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다시 1분 정도를 걷다 보면 한국예술종합학교로 통하는 골목이 나온다. 그곳에서 큰 전봇대가 있는 두 번째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면 주택가가 나오고, 그곳을 다시 2분 정도 걷다 보면 은은한 빵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오병이어라는 그리스도적인 기적과 배려에서 가게의 이름을 따온 5 로브즈 빵집은 정식적으로는 9시에 가게가 열리지만, 5 로브즈가 있는 골목은 7시부터 빵 굽는 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근처에 사는 자취생들에게 이 빵 냄새는 마치 아침 7시를 알리는 알림과도 같다.


7시 30분에 첫 빵인 치아바타가 나오면 가게는 더욱더 바빠지기 시작한다. 8시가 조금 넘은 무렵 Close를 반쯤 열린 Open으로 만들어 버리는 단골손님이 와서 비어있는 빵 정렬대가 아닌 카운터로 가서 빵을 주문하고, 진열되기 전의 빵을 사들고 가면서 비추는 퉁퉁 부은 눈은, 마치 잘 부풀어 오른 빵과 닮았다. 9시 이전 5 로브즈의 문은 Close라는 팻말과 함께 닫혀 있지만, 가게 내부에서 보면 문에는 Open의 팻말이 보인다. 오픈 전부터 진열되기 전의 빵을 사가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닮았다.


"여기 9시부터 판매하는 거 아니에요?"라는 물음에는 소박한 웃음을 지으면서 '원래는 안 되는데... 아침에 바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요'라며 말하며 '그래도 가장 맛있는 빵인 바로 나온 빵은 저희가 먹어요'라고 덧붙이는 5 로브즈의 제빵사들은 9시 오픈을 위해 4시에 기상을 해야 한다. 일어나서 이문동으로 달려와 빵을 성형하며, 이문동의 꺼지지 않는 아침을 지킨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근처에 살면서 5 로브즈를 자주 방문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4학년 학생은 말했다. "제가 이제 곧 여기를 떠나가지만, 이문동을 기억할 때, 아침마다 힘들게 학교를 가면서 맡은 달콤한 빵 냄새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오픈하기도 전에 저도 많이 빵을 사 갔었거든요." 5로브즈는 향기와 맛, 그리고 더 일찍 여는 '배려'로 이문동 사람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월요순대


띵똥! 메신저 소리가 울린다. 길고 긴 월요일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허기가 져서 순대 아저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저씨~ 오늘 몇 시까지 계세요?'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답장이 왔다. '오늘은 3시까지입니다.' 날씨도 슬슬 더워지고, 하루 종일 수업에 알바에 준비해야 할 게 산더미인 자격증 시험.. 거기에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것 같은 하루의 고민이 버스 안에서 폭발할 때, 우리는 길고 긴 순대와 맥주 한 캔을 생각한다.



시간은 벌써 12시에 가까워지고, 학교를 지나서 집으로 가는 길은 다른 사람들이 있어도 어둡기만 하다. 하지만 후문에 이르러 CU편의점이 보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월요순대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12시가 되어도 학생들이 시끌벅적하니 모여 있다. 한 여학생은 얼굴을 찡그리며 친구에게 '아, 시간 없는데 왜 이렇게 늦는 거야'하며 수군거리고, 남자친구인지 모를 남학생은 '원래 여기는 이래'하며 웃는 모습에 여학생은 덩달아 웃음에 전염된다.


바쁜 와중에도 순대를 썰며 포장을 하는 아저씨는 언제나 느긋하다. 계산보다도 다른 사람의 포장이 먼저인 순대 아저씨의 얼굴에는 주름기가 가득하고, 주름기가 가득해 주름을 펼치면 마치 그게 순대가 되듯이 순대는 길고 깊은 주름처럼 속이 꽉꽉 차있다. '아저씨 저희 쌈장 하나 가져갈게요.' 다양한 지역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지역에 따라 순대를 먹는 방식이 다르지만, 이곳에서는 모두가 쌈장으로 통일이다. 혼자서 포장해서 먹을 때에는 4천원이면 '모둠순대'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친구와 둘이 있을 때에는 단돈 만원으로 떡볶이와 모둠순대, 그리고 맥주와 함께 밤의 고민을 나눌 수 있다. 일주일 중 가장 길고 느리게 지나가는 월요일이 월요 순대차의 느린 칼솜씨와 느린 계산 앞에서 '기다리는 행복'으로 바뀌고, 꽉 찬 순대처럼 늦은 시각의 허기짐을 '저렴한 배려'로 채울 수 있다.


위로(路)의 배려



이문동은 슬픔이 있는 곳이다. 떠나가야만 하는 토착민들이 삶과 타협하거나 투쟁하면서 떠나갈 곳을 위해서 머무는 곳이거나, 떠날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타지에서 들어와 가족과 떨어져서 홀로 살아가는 곳이다.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결국 어떤 길을 걷는 것이고, 누구나 자신만의 길이란 것이 있다. 슬픈 길 위에서 누군가와 같이 걸어간다는 것은 중요한데, 함께 갈 누군가가 없을 때 한 곳에서 머물러 주는 장소가 있다면 나 혼자여도 그 길을 걸어 갈만 하다.


이문동 후문에 바로 나오는 큰 길과 그리고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한 골목길에는 한 곳에서 머물러주며 바빠야 하는 이문동의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장소가 있다. 5 로브즈와 월요순대는 각각의 다른 소재와 방식으로 사람들을 위로해 준다. 바쁜 아침의 공복을 채워주거나 늦은 저녁의 허기짐을 채워주고, 아침 길 위로 베어드는 빵의 향기와 차가운 밤공기에 묵직한 순대 향기는 사람들에게 짧지만 여유의 순간을 즐기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빵과 순대를 아침과 저녁, 우리의 입에 집어넣었을 때, 더 일찍 시작했고 더 늦게 마감했던 사람들의 배려가 느껴지며, 이는 꺼져가는 밤과 밝아지는 아침의 어두운 간극을 밝혀준다.









ⓒ 김동욱 안중건 이주하 이준우 임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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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동 문화지도 : http://alertsky3.wixsite.com/i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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