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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민 NIRVANA Dec 19. 2017

과하지않은, 썩 괜찮은 오락영화

영화 <강철비>

얄궂게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임에도, 종종 그런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보다 솔직하게 말하면 '먹고 사는 데'도 바빠서 머릿속에 담아둘 여유가 없다.

그러다가 문득 남북관계를 다루는 영화를 접하고 나서야, '아, 우리나라는 아직 분단국가지.' 라고

비로소 깨닫게 되곤 한다. 맞다, 우린 아직 철책선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진 분단국가다.

우연인지, 올해는 상하반기에 한번씩 남북관계를 소재로 삼은 영화들이 선을 보였다.

마치 시작과 끝을 장식하려는 듯이, 연초에는 <공조>, 연말에는 <강철비>가 바통을 이었다.

게다가 두 영화 모두 소위 '브로맨스'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루는 이야기나 분위기는 두 영화가 사뭇 다르다.



영화 <강철비>는 몇 해 전에 다음웹툰에서 연재되었던 <스틸레인>이 원작이다.

웹툰인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축소되고 수정될 수밖에 없기에

원작을 재미있게 본 입장에서 솔직히 기대감보다는 우려가 더 컸었다.

그래서 기대를 낮추고 영화를 관람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수라에 이어 두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정우성, 곽도원의 케미도 솔직히 퀘스천 마크였다.

선입견이라고 할까. 두 사람이 놓고 봤을 때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덜했다.

덕분에 모처럼 '내려놓고'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남북'이란 소재는 대단히 진부한 부분이 없잖아 있다.

빤히 예측되는 이야기의 구조라든가. 클리셰라든가.

그럼에도 <쉬리> 이후에 '첩보'라는 코드를 모처럼 가져왔다는 점에서 의외로 신선했다.

연초에 개봉했던 <공조>와 마찬가지로 북한 측은 무쌍을 자랑하는 정예요원,

반면에 남한측은 유들유들하고 처세에 능한 공무원이라는 배치가 묘하게 닮아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두 영화는 크게 차이를 보인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북핵'과 '쿠데타'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사실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짜낸다고 해도, 

우리가 실제로 안고 있는 현실의 장벽을 넘어서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냉정히 말하면 이 영화는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결론이 빤하게 보인다.

그 빤함은 '약점'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영리한 영화구나, 하고 느꼈다.

아마도 그것은 감독의 노련한 연출 때문인지도 모른다.


북한의 정예요원 양철우 역을 맡은 정우성의 연기는 늘 봐오던 그의 패턴 그대로다. 

개인적으로 참 매력 있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가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이미지를 연기할 때가 훨씬 빛난다고 본다. 이를 테면 <놈, 놈, 놈>에서 보여주었던 그런 모습.

그냥 '후카시'를 잡을 거면 첨부터 쭈욱 멋을 부리면 참 좋으련만 뭔가 조금만 심각함을 안고 있으면 이상하게 그의 근사한 외모가 바래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전작이었던 <신의 한수>나 <아수라>가 그랬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반복되는 패턴임에도 거부감이 적었던 이유는 그를 받쳐주는 상대역 곽도원의 공이 크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이 영화는 정우성의 영화가 아니라 곽도원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곡성에서 처음으로 원탑 주연을 맡았던 그는 점점 진일보하는 포스를 보여주고 있다. 마치 과거 송강호가 걸었던 행보와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아마도 몇 년 후면 포스트 송강호의 첫 번째 주자가 되어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어쨌거나.

영화 속에서 곽도원은 사실상 원맨쇼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변화무쌍한 감정선의 이동이라든가, 코믹에서 진중함, 그리고 눈물을 짜내는 연기까지, 관객들의 감성을 쥐락펴락하는 핸들러의 면모를 과시한다.

만약에 곽철우 역을 그가 아닌 다른 배우가 했다면 어땠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그 배역에 녹아들었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인데도 지치지 않고 종주할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히 곽도원의 공이 가장 크다고 하겠다. 물론 조연들의 연기들도 좋았다. 모처럼 악역에서 벗어난 이경영도 나름 임팩트가 있었고, 김의성이나 이재용,  김갑수 같은 중견배우들의 내공있는 연기도 박수를 쳐줄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종 대사가 거의 없이 표정과 몸짓으로 연기했던 조우진을 빼놓을 수 없겠다. 

북핵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사실 크게 긴박감을 느끼기 어려웠지만 그나마 텐션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조우진의 공로가 컸다. 솔직히, 조우진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는 것도 처음 발견했다. 그는 전작 <내부자>와는 또다른 악역의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다. 정우성이라는 만만찮은 배우를 상대로 조금도 꿀리지 않은 존재가믈 보여준 그는 이 영화의 숨은 공신이라 할 수 있다.

영화 <강철비>는 전제척으로 이야기는 느슨한 느낌도 들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남북문제를 다룬 영화들 중에는 손에 꼽힐 정도로 재미도 있고 완성도도 높은 편이다. 


상영을 마치고 객석을 나섰을 때, 처음 받은 느낌은 "이 영화가 올겨을 영화 전쟁에서 승자가 되겠구나."하는 감상이었다. 같은 주에 개봉하는 스타워즈라는 복병이 있지만, 데이터를 봤을 때 스타워즈 시리지는 명성에 비하면 국내에선 흥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어쩌면 롱런을 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이 영화는 스타워즈를 더블스코어로 누르고 흥행 1위를 달리는 중이다)

아마도 금주에 개봉하는 <신과 함께>의 스코어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강철비>의 기세가 더 세게 느껴진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과하지않은, 정말로 썩 괜찮은 오락 영화다.

다만, 한 가지 아쉽다면 에필로그가 조금 늘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정도.

그럼에도 영화 <강철비>가 올겨울 영화 전쟁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일단 보면 왜 그런지 공감할 것이다.

이유를, 극장에서 확인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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