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복도가 유난히 좁다고 느낀 건.
누가 문을 열고 나올까 봐
모서리를 돌기 전에 꼭 기침을 했고,
발소리를 죽이는 게 습관으로 굳었다.
아파트 구조가 다 똑같아서
남의 집 앞까지 와서야
여기가 아니구나, 하고 돌아선 적도 있었다.
복도 끝의 집은 늘 가라앉아 있다.
문틈에서 계절이 먼저 흘러나왔다.
겨울이면 김 빠진 국처럼 희미한 한기가,
여름이면 열려 있던 창문 틈으로
바람이 방 안을 흩고 지나갔다.
가끔은 피아노 소리가
벽에 부딪혀 오래 머물렀고
소리를 따라 걸으면
복도는 조금 덜 차가워졌다.
그땐 이 동네를 벗어나는 게 목표였다.
뉴스 속 재개발 이야기에도,
인터넷에서 본 서울 아파트 사진에도
마음이 흔들렸고,
내가 선 복도는
늘 어딘가 덜 지어진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선 모두가 고개를 숙였고,
문 옆의 관리비 고지서는 늘 같은 글씨체였으며,
겨울이면 외풍이 스며들었고,
여름이면 습기가 차올랐다.
나는 걷고, 버티고, 살아냈다.
그러는 사이
스무 살이 되고, 스물여섯이 되고,
결국 서른을 넘겼다.
몇 번이나 이사 갈 기회가 있었지만
왜인지 나는 떠나지 못했다.
떠날 줄 몰랐던 이 동네에
끝내 머물렀다.
요즘은 일요일 저녁,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복도 끝 창문 너머로 주황빛이 길게 스며든다.
빛이 벽에 닿아
낡은 페인트 위로 번질 때면
괜히 발걸음을 늦춘다.
어릴 적에는 늘 급해
눈을 들 틈이 없었는데,
이제는 조금 느리게 걷는다.
복도는 여전히 좁고, 여전히 오래됐지만
그게 그렇게 싫지 않다.
어쩌면 내가 변한 건지도 모른다.
떠나야만 살 것 같던 곳에서
살아도 괜찮다는 마음이
가끔, 스스로 놀랄 만큼
편하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