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체조

by 임월

삼 학년 겨울, 형과 도쿄에 갔다.

형은 고등학교 삼 년 내내 나를 사람 만들겠다고 했다.


자신이 오래 들어온 록 음악을 들려주고, 혼자 가던 콘서트에 데려가고, 오래된 영화관과 서점에도 함께 갔다.

무엇을 봐야 하는지, 뭘 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를 말하진 않았다. 그냥 자꾸 보여줬다. 그땐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들이 나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걸 안다.


도쿄에서 처음 전철을 탈 때, 습관처럼 이어폰을 꺼내려다가 그에게 제지당했다. "너 아직 여행이 뭔지 모르네. 그냥 좀 지루해 봐. 이어폰 꽂지 말고, 주변을 좀 봐." 별로 대단한 말은 아니었지만, 창밖으로 스쳐 가는 거리, 전철 안의 작은 소음, 바쁜 얼굴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그때 처음 '지루함을 그대로 겪는 시간'이 뭔지 생각했던 것 같다.


서른이 넘어서 다시 형과 여행을 갔다. 이번엔 교토 옆 작은 소도시, 조요였다. 고베에서 밤늦게 도착했고, 내 아이폰은 배터리가 방전되어 있었다. 숙소를 찾아가야 했다. 형에게 구글맵 좀 쓰자고 했다. 그는 주소만 알려주고, 지도를 보여주진 않았다. "그냥 찾아가 봐. 그렇게 어렵지 않아."


어려웠다.

실제로 한 시간 가까이 헤맸다. 길도 좁고, 어두웠고, 사람도 거의 없었다. 처음엔 화가 났다. 왜 이렇게 불편하게 구냐고.


헤매는 동안, 화는 형에게서 나에게로 옮겨갔다. 지금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기계가 없으면 길 하나 제대로 못 찾고, 내 위치조차 감을 못 잡는다는 사실. 효율과 속도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게 너무 민망했다.


나는 이런 사람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었다. 항상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고, 계획대로 행동해야만 안심하는 사람. 그런데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답답한 시간을 못 견디던 나.

잠깐의 지루함조차 무언가로 덮어야 안심이 되는 나.

화면을 열고 음악을 틀고 손끝을 계속 움직여야

겨우 버틸 수 있는 나.


형은 나를 사람 만들겠다고 했었다.

무슨 뜻인지, 조요의 골목에서 알게 되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건 잘 기다릴 줄 아는 일.

지루함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온전히 겪어내는 일.

이 안에서 나를 조금 들여다보는 일.


이걸 모른 채 오래 살았다.

지루한 시간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고,

이 틈을 어떻게든 뭔가로 채우려 했다.

그런 습관이 쌓이고,

어느새 습관이 나를 만들고 있었다.


형이 전철 안에서 말했던 게, 이제야 조금 이해된다.

여행이 뭔지 모른다는 말. 이어폰을 빼고 주변을 보라는 뜻이 아니라, 뭔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을 받아들이라는 말.


형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나는 그때보다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