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 온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고 잠든다. 확인하면 답장해야 하고, 답장하면 또 보내야 하고, 그러면 밤이 지나버린다는 걸 알아서다.
받아 든 청첩장에 대한 근원적 의문. 대체 결혼을 왜 할까. 이건 결혼을 그려보는 모든 이들이 한 번쯤은 입안에서 굴려봐야 할 질문이다. 쓴맛이 나든 단맛이 나든.
내게 사랑은 언제든 방전될 폰 같은 거였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과 그럼에도 기꺼이 기쁨을 나누는 사이. 사라질 수 있어서 더 간절했고, 바람이 불면 흩어질 꽃잎처럼 아슬아슬해서 더 예뻤다.
결혼은 여기에 보호필름을 씌운다. 투명하지만 미끄러지지 않게, 깨지지 않게 만든다. 계약서에 도장 찍고, 증인 세우고, 국가에 신고하는 순간 사랑은 법적인 효력을 얻는다. 손톱으로 뜯어내려 해도 끈적한 자국만 남는 보호막으로 변한다.
문제는 이거다. 과거의 많은 사랑들도 지금처럼 뜨겁고 소중했다는 것이다. 각각 달라서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저마다의 색과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나이의 나는 그녀 없이는 못 산다고 진심으로 생각했고, 또 다른 나이의 나는 이번엔 정말이라고 가슴에 손을 얹고 다짐했고, 그때의 나는 이제야 진짜 사랑을 안다고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런데, 끝났다. 모두.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들을 마지막에 다시 하게 됐다. 너 없으면 못 살 것 같아,라고 했던 말을 마지막엔 “너 없어도 잘 살 거야,라고 맺어버렸다. 같은 입술, 같은 성대, 정반대의 내용을.
지금 옆에 있는 사람도 예외가 아닐 거다. 아무리 뜨겁고 아무리 확실해도, 반드시 온다. 이별의 이유들이. 처음엔 귀여웠던 감정 표현이 나중엔 유치하게 느껴지고,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차이점들이 감당할 수 없는 벽이 되고, 함께여서 든든했던 일상이 숨 막히는 루틴이 되는 순간들이.
그래도 사람들은 결혼한다.
과거의 모든 실패를 훤히 알면서도.
그녀가 물었다. 우리 언제 결혼할 거야? 나는 그 순간까지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랑이 충분히 좋았는데 왜 거기에 뭔가를 더해야 하나 싶었다. 막연한 기분이 들었다. 거부감도 기대감도 아닌.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 아니라 사랑의 변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정에서 동반으로, 연인에서 가족으로, 소유에서 이해로 바뀌는 과정. 같은 감정이지만 다른 형태로 진화하는 것. 뜨거운 물이 식어서 미지근해지는 게 아니라, 뜨거운 물이 얼음이 되는 것처럼. 온도는 정반대지만 여전히 H₂O인 채로.
어쩌면 결혼은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사랑 이후를 준비하기 위해 하는 것일지도. 감정의 변화무쌍함을 인정하고, 너머의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가기로 하는 약속.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는 환상을 벗어던지고, 그래도 함께 걸어가 보자고 손을 내미는 일.
이상한 건,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다. 결혼을 비관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랑을 다시 하고 싶어 한다는 거. 누군가와 그 뻔한 과정을 밟아보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런 질문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관계 말이다. 반지나 예식장이나 혼수 같은 건 필요 없다. 우리 둘만 있으면 되는, 그런 확신이 드는 사랑.
내 안에 두 명이 살고 있다. 하나는 결혼 따위 무용하다고 말하는 나, 다른 하나는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랑을 다시 하고 싶다고 속삭이는 나. 결혼식이나 법적인 절차는 싫지만, 그 사람과 우리만의 방식으로 영원을 약속하고 싶어 하는 나. 둘이 매일 싸운다. 이기는 쪽은 날씨나 기분에 따라 바뀐다.
서른이 넘은 지도 오래인 지금, 여전히 결혼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랑을 다시 하고 싶기는 하다.
결혼식도 싫고, 축의금도 싫고, 하객들 앞에서 서약하는 것도 싫다. 우리 둘만 있으면 되는데 왜 온 세상에 알려야 할까.
그럼에도, 언젠가 손을 내밀고 싶다. 완벽한 사랑을 찾아서가 아니라, 불완전한 사랑과 불완전한 나를 끌어안고 견디며 살아보기 위해서.
결혼도 사랑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는 우리. 그 미완성이야말로 계속 살아갈 이유일지도.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질문을 품고 사는 것.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편하다.
모든 걸 다 알 필요는 없다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