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모든 게 조금씩 가라앉는 것처럼 느껴진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채로
아무 데도 닿지 않는 방향.
세상도 그렇고, 우리 젊음도 그렇다.
누가 신호를 준 것도 아닌데, 어쩐지 다들 떠나고 없고
기억은 얼룩져 가고, 남은 건 줄어든 말뿐이다.
언제 끝날지 안다고 해서
오늘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그저 가끔
지금이 지나간 다음의 장면이 떠오를 뿐이다.
우리끼리 웃으며 "그땐 그랬지." 하고 말할 순간들.
조금은 부끄럽고, 조금은 그리운 얼굴들.
그 안에 있을 내가 낯설 것 같은 예감.
많은 걸 가진 적은 없다.
무언가 원하긴 했지만
끝내 손에 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그게 다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늘 뭔가를 잃으면서도,
같이 웃을 수는 있었으니까.
가끔은 궁금해진다.
이 모든 게 끝난 뒤엔 뭐가 남을까.
죽음 너머엔,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그럼에도 다음 날은 다시 오고.
우린 또 사랑하고, 실망하고, 울고, 웃는다.
모든 감정이 바삐 오고 가는 걸 보면서
결국은 이렇게 살아지는 거구나, 싶다.
누구나 자기만의 날을 산다.
어떤 날은 환하고
어떤 날은 설명할 수 없이 어둑하다.
좋아하던 것이 문득 싫어지기도 하고
미워하던 것이 뜻밖에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걸 반복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덜 날카로워지고
덜 조급해진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무의미하다는 말에 붙잡히지 않아도 된다.
우린 아무것도 아닌 줄 알면서도,
좋아했고,
기다렸고,
기억했다.
그거면 된 거라고
이제는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파도는 있다.
우리가 거기에 있든 없든
계속 밀려오고 밀려간다.
그러니까
조금은 안심해도 된다.
모든 건 결국
왔다가,
가는 거다.
그걸 알게 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