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래치 사운드로 시작한다.
긁힘이 레이저를 헛되게 만드는 순간, 열한 살의 여름이 돌아온다. 형의 방문에서 처음 만난 콜드플레이의 Fix You. 지구 바깥에서 온 것처럼 느껴졌던 음악.
벽면을 따라 천장까지 쌓인 앨범들. 다른 세계로 가는 문처럼 보였다. 형이 내 귀에 씌워준 헤드폰은 무거웠고 귓바퀴가 아팠지만, 귓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진동은 몸을 해체시키곤 세상을 다르게 보이게 했다. 소리가 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록이란 게 뭔지 알아야 해."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후에야 알게 된 것들. 형이 평론가를 꿈꿨다는 것, 방에 흩어져 있던 잡지들과 빽빽한 메모로 가득한 노트들이 꿈을 향한 흔적이었다는 것. 음악을 들려주며 늘 흥미로운 이야기를 더했던 형의 목소리는 음악 위에 덧입혀진 또 다른 트랙이었다. "이 부분 들려? bass와 드럼이 어긋나는 지점." 아무것도 듣지 못했으나, 고개만 끄덕였을 뿐.
오랫동안 형을 만나지 못했다. 혼자서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고, 그의 방에서 들었던 소리를 기억해 내려 애썼다. 여러 밴드의 음악을 들었다. 아무도 함께 앉아 설명해주지 않는 음악은 달랐다. 안내자 없이 들어야 했기에 스스로 탐구해야 했고, 내 감성만이 유일한 판단자로 기능했다.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만난 형은, 꿈을 접은 지극히 평범한 아저씨가 된 직장인이었다. 명절마다 잠깐 보는 어색한 친척. 그래도 가끔. 스치듯 음악 이야기가 지나가면 눈빛이 달라지고는 했다. 자신을 '재미없는 사람'이라 스스로 자평했지만, 나의 인류학적인 시선으로 그를 보건대, 아직도 음악에 관한 한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흐트러진 채로. 책상에 앉아있을 수 없었고,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못했으며,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다(비행청소년은 아니다. 날다 떨어진 것이 '비행' 청소년이라면 맞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표류하는 기분.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내게 주말에 시간 있냐고 물어왔다. "널 어딘가 데려가고 싶은데." 처음 들어간 공연장은 지하에 있었고, 좁고 어두웠으며, 이상하게 생긴 사람들로 가득했다. 심장이 빨리 뛰었고 손에 땀이 났다. 음악이 시작되자 베이스와 드럼 소리가 온몸을 감쌌고, 심장 박동은 느려졌다. 손은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바로 여기, 이 사운드의 중심.
"요즘 뭐 들어?" 형의 물음에 나는 그동안 발견한 밴드들을 나열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장을 다니는 날이 늘어날수록 학교에서의 삶이 조금 나아졌다. 흐트러짐 속에서도 중심이 생겼다. 음악이라는 닻.
열아홉, 스무 살. 형과 함께 홍대의 좁은 골목들을 누볐다. 벨로주, 빵, 에반스라운지. 이름도 생소한 밴드들의 라이브 공연장에서 땀 냄새와 맥주 냄새가 뒤섞인 채로 서 있었다. 어깨를 부딪치며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귀를 기울여 무대 위 보컬의 숨소리까지 들으려 했고, 그럴 때마다 형은 눈을 감았다. 공연이 끝난 뒤 유독 반짝이던 골목을 걸을 때에. 형이 물었다. "어땠어?" 좋았다고 하기엔 부족했다. 그는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 알아." 라고 했다.
입대를 앞뒀던 겨울. 스키장으로 가는 차 안의 창밖으로는 하얀 숨이 하늘로 올라가는 풍경이 펼쳐졌다. 스피커 볼륨이 올라갔을 때 들려온 것은 Fix You였으나, 평소에 듣던 버전과는 달랐다. "2012년 라이브야." 클라이맥스에서 관객들의 함성이 터져 나오자, 나도 모르게 "이 부분은 여전히 죽여주네." 라고 말했다. 그는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 너도 아는구나?"
형이 결혼하기 전. 자취방에서 보냈던 그의 마지막 총각시절의 주말들. 방 하나를 가득 채운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이 벽을 진동시켰으며, 우리는 서로의 플레이리스트를 번갈아 재생했다. 장필순의 ‘스파이더맨’을 틀었을 때, 그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네가 몇 살인데 이 노래를 아냐."
집을 옮길 때마다 앨범은 줄어갔다. 몇 번의 이사와 함께 디지털로 대체된 음악들은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지 않게 되었으며, 플레이어도 고장이 났다. 수리할 곳도 찾기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몇 장은 버리지 못했다. 서랍 속에, 상자 속에 남아 있게 되었고, 꺼내볼 일은 없었지만 그냥 있었다.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물질로서의 음악. 형의 방처럼 내 것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가 선택했던 소리의 증거였으므로.
늦가을, 그와 함께 고베로 여행을 갔다. 형과 여행을 떠난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지 성인이 되고는 처음일까. 오랜만에 함께 떠난 일본. 메리켄 파크에 위치한 호텔 발코니에 나란히 앉아 밤바다의 항구를 바라보았다. 그가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노트북을 꺼냈다. "이건 꼭 여기서 들어야 할 것 같아." (후에 알았지만 의도치 않은 선곡이었다고 한다. 이 앨범을 틀고자 한 것은 맞는데, 랜덤이었다고) Fishmans의 'Weather Report'가 흘러나왔다. 간주의 기타 리프가 고베의 밤바다와 완벽하게 부합했다.
곡이 끝났을 때 말했다. "형, 한 번만 다시 들을까요?" 그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멜로디에 잠식되어 있었다. 젖지 않았지만 끝없이 젖어든 밤. "요즘도 그 노래 들어?" "가끔." "앨범 아직 있어?" "다 삭았을 텐데." "괜찮아. 소리는 그대로일 거야."
고베의 향수가 느껴지는 이 밤. 오늘도 음악을 듣고 있다. 예전처럼, 형이 그랬던 것처럼. 형이 들려주었던 트랙을 틀고, 내가 발견한 노래를 튼다. 밤이 깊어가지만 음악은 끝나지 않는다. 형의 방에 쌓였던 앨범들을, 무거운 헤드폰을, 지하 공연장의 땀 냄새를, 걸으며 나눴던 감동의 침묵을, 스키장을 향하던 차에서의 하얀 숨을, 메리켄 파크 발코니에서 마신 차가운 맥주를, 형이 눈을 감던 순간을, "이 부분 들려?" 라고 물었던 목소리를. 나는 아직도 듣지 못하지만, 계속 고개를 끄덕인다.
Weather Report가 흐른다. 오늘은 이 곡을 타고 태평양까지는 나가볼 참이다. 클라이맥스에서 베이스가 쏟아진다. 어디까지가 그의 영향이고 어디서부터 내 선택인지 알 수 없지만, 그게 중요할까. 서랍 속 앨범은 꺼내지 않는다. 플레이어도 고장 났다. 하지만 소리는 그대로니까.
형과 함께한 라이브클럽, 스키장으로 향하던 차 안, 고베에서의 밤바다. 시간의 지층을 파고들어 찾아낸 파편들.
발굴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