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먹어라, 더 먹어라, 먹고 또 먹으라던. 왜 몰랐을까? 그 말들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할머니가 떠난 지 오래다. 얼굴은 희미해졌는데, 손등의 온기만은 또렷하다. 정선의 그 부엌, 김이 오른 감자밥, 하얀 밥그릇, 울퉁불퉁한 감자 한 덩이. 할머니는 감자를 밥에 넣었다. 국에도 넣었다. 전을 부치고, 쪄서 으깨고, 그냥 삶아서도 내놓았다. 정선에서는 감자가 안 끼는 곳이 없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는데, 그 울퉁불퉁한 모양만은 여전히 내 안에 박혀 있다. 준비하지 못했던 이별은 자꾸만 나를 여름밤의 식탁으로 데려가고, 그때마다 나는 감자밥 냄새 속에 웅크린 아이가 된다. 엄마도 그렇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의 마음이 할머니의 자리로 향한다.
기억하고 싶다. 밥을 먹자고 깨우던 성가신 새벽을, 둘이 낑낑거리며 깎던 감자를, 솥뚜껑을 열 때마다 쏟아지던 김을, 늘 식탁 한가운데 있었던 감자밥과 감잣국을. 옥수수밭을 해쳐 나오던 할머니의 뒷모습을, 퉁퉁 부은 손과 지팡이 소리, 느린 걸음, 알아듣기 어려운 사투리, 낮은 숨소리까지. 나는 그 모든 것을 아주 자세히 기억하고 싶다.
요즘은 엄마를 본다. 할머니를 닮은 손끝, 감자를 깎을 때의 습관, 그녀의 혼잣말처럼 흘러나오는 "많이 먹어라, 먹고 더 먹어." 그래서 미리, 아주 열렬히 엄마를 그린다. 언젠가 이 부엌에서의 시간도 사라질 것을 알고 있어서.
그래서 자꾸 남기고 싶어진다. 식탁 위의 감자 껍질, 김이 서린 창문, 아직 따뜻한 밥 냄새, 이 안에 머물던 목소리. 감자의 울퉁불퉁한 면이 꼭 할머니 같아서, 오늘도 밥을 꼭꼭 씹으며 사무친다. 그러니 나는 아주 잘 남겨져야만 한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사랑이 많아서. 할머니가 내게 물려준 그 감자를 온몸에 품고, 나는 오늘도 잘 남겨질 궁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