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서적 기원은 함백산의 가파른 등허리를 휘감아 도는, 막막한 고도의 길 위에 놓여 있었다. 능선 끝자락에 홀로 선 ‘엽기소나무’가 비바람을 정면으로 받으며 파수꾼처럼 버티고 선 산줄기 아래로, 이제는 잡풀만이 무성해진 좁고 가파른 흙길이 실금처럼 뻗어 있었다. 이곳은 어린 날의 어머니가 무거운 책보를 메고 매일같이 숨 가쁘게 오르내리던 등하굣길이었고, 가난과 희망이 뒤섞인 채 발자국마다 깊게 패어 있던 기억의 통로였다. 그 굽이진 길들은 다시, 한때 시커먼 석탄을 집어삼킨 대형 트럭들이 굉음과 비명을 지르며 질주하던 운탄고도와 거칠게 교차하며 예미(禮美)라는 작은 무인역으로 흘러들었다.
예미는 더 이상 석탄의 열기로 들끓거나 검은 먼지를 뿜어내지 않았다. 다만 길목마다 박힌 시커먼 흙은 어쩐지 그 시절의 거친 숨결을 속살까지 서늘하게 배어든 탄가루 얼룩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태백선 줄기를 타고 굽이굽이 올라가면 만나는 그 역은 화려했던 산업의 기억을 녹슨 안개 속에 묻어둔 채 하루에 몇 번 서지 않는 무궁화호 열차를 기다리며 고립된 섬처럼 떠 있었다. 역사 주변은 바람조차 길을 잃고 겹겹이 고여버린 눅눅한 정적의 무게로 가득했다. 운탄고도를 달리던 트럭들이 쏟아낸 미세한 탄가루가 세월의 층을 뚫고 여전히 부유하는 듯 코끝에는 늘 서글프고 건조한 금속성 냄새가 맺혔다. 쓸모를 다한 것들이 내뿜는 어쩔 수 없는 체취였고,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낮고 긴 비명이었다.
나는 당시 외조부가 남긴 함백산 자락의 낡은 목조 가옥에 홀로 머물고 있었다. 집은 산그늘이 깊게 지는 북향 비탈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어, 정오가 한참 지나서야 마당의 서리가 겨우 투명한 눈물을 흘리며 녹기 시작했다.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온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를 사정없이 훑고 지나갔는데, 그 바람에는 늘 오래된 침엽수의 진득한 송진 냄새와 눅눅한 흙먼지의 향이 배어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외조부가 평생을 닦아온 낡은 놋그릇들을 마른 헝겊으로 문지르며 시간을 보냈다. 놋그릇의 차가운 촉감이 손바닥에 닿을 때마다, 나는 이 집이 품고 있는 시간의 두께와 가라앉은 침묵의 질감을 손끝으로 가늠해보곤 했다.
놋그릇을 마른 헝겊으로 닦아내는 일은 내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움직임에 가까웠다. 인천에서 쏟아냈던, 기름기 돌고 눅눅한 문장들은 소금기 밴 바람처럼 나를 끊임없이 질식시켰고, 나는 그 번드르르한 말들의 홍수를 피해 이곳 산그늘의 끝자락으로 기어 들어온 참이었다. 가방 구석에는 차마 버리지 못한 원고 뭉치들이 잉크가 말라붙은 만년필과 함께 뒤섞여 있었으나, 그것들은 이미 생기를 잃은 죽은 문자들에 불과했다.
헝겊이 놋그릇의 거친 표면을 긁어내며 내는 ‘스윽, 스윽’ 소리는 예미역 대합실에 고인 정적의 질감과 기묘하게 닮아 있었다. 무언가를 끝없이 비워내고 닦아내어도 결국 본래의 둔탁하고 고집스러운 누런 빛깔로 되돌아오려는 금속의 완강한 광택을 마주할 때면, 나는 그 서늘한 빛 위에서 숨을 멈춘 채 한참을 머물렀다. 서재에 켜켜이 쌓인 누런 잡지들과 송가가 태백에서 함백으로 옮겼을 전후의 낡은 문학 전집들을 연도별로 분류하는 작업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먼지 낀 시간의 단면들을 하나하나 손끝으로 문질러보는 일이었고, 이미 사라진 것들이 남긴 온기가 과연 내 손바닥에 여전히 남아 있는지 확인하는 수행이었다.
마을 어귀를 지키는 ‘은하슈퍼’의 노파는 내가 생필품을 사러 들를 때마다 굽은 허리를 펴고 나를 빤히 바라보곤 했다. 먼지 앉은 진열대 너머로 나를 살피던 노인은 늘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송씨네 손주, 오늘도 종이 위로 농사짓나?” 그 노인에게 문장이라는 것은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일처럼 몸을 써서 해내야 하는 정직하고도 고된 노동의 갈래로 읽혔던 모양이다. 노파는 내가 사가는 잉크병이나 빳빳한 원고지 뭉치를 보며, 그것이 마치 내일의 풍작을 약속하는 씨앗이나 비료라도 되는 양 신기한 눈으로 매만졌다. 그렇게 나는 이 외딴 산골에서 ‘작가’라는 이름으로 먼저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름은 예미역의 눅눅하고 무거운 공기 속에서 하나의 명예로운 직업이라기보다는, 말수 적은 이방인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가장 편리하면서도 쓸쓸한 기호에 가까웠다. 나는 내가 쏟아내는 문장들이 함백산의 그 깊은 산그늘을 단 한 줄이라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지 의심하며, 밤마다 검은 잉크가 말라붙은 만년필 끝을 혀로 축축하게 적셔가며 종이를 채웠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역무원이 떠나고 없는 예미역의 텅 빈 대합실로 스며들었다. 하얗게 먼지가 앉아 손가락 끝에 서늘한 분말이 묻어나는 나무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열차가 저 멀리 산굽이를 돌아 자취를 감춘 뒤에도 선로는 한참 동안 웅웅 거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천장의 거미줄 틈바구니로 가늘게 쏟아지는 햇살은 가만히 내리쬐는 게 아니라, 마른 모래알이 바닥에 흩뿌려지듯 서걱거리는 마찰음을 내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기차가 역사로 밀고 들어올 때의 거친 숨결과 요란한 진동만을 이곳의 전부라 믿겠지만, 예미가 숨겨둔 진짜 살결은 열차가 떠나고 난 뒤의 텅 빈 대합실에 고여 있는 어떤 무게감 속에 있었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가벼운 상태가 아니라, 누군가 남기고 간 축축한 발자국과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이 먼지와 뒤섞여 공기 중에 진득하게 가라앉아 어깨를 짓누르는, 묵직한 공백의 무게였다.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낡은 화면을 켜고 이른바 ‘슈퍼 해피한 영화’ 속 장면들을 수집해 모으는 버릇이 있었다. 인물의 갈등이나 감정의 끈적이는 흔적 같은 건 애초에 스며들 틈도 없는 투명한 영상들이었다. 그저 주인공들이 평온한 수평선을 가만히 응시하는 장면이 10분, 아니 20분씩이나 끝없이 되풀이되는 빛의 기록들 말이다. 영상 속 바다는 실제의 바다처럼 살을 에는 듯한 짠 기운에 피부가 쓰리거나 파도에 밀려온 거친 해조류가 발등을 괴롭히는 소란함이 전혀 없었다. 정교하게 조율된 픽셀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명멸하는 무해한 빛의 조각이자, 단 한 뼘의 소음도 허락하지 않는 평온함의 끝이었다. 그 일렁이는 반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는 이토록 정갈하고 영원한 것들에 빈틈없이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들떠오르곤 했다.
함백산의 숨소리조차 얼어붙은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나는 자꾸만 가공된 영상 속 바다를 끄집어냈다. 발밑의 산세는 거칠고 투박하여 금방이라도 살갗을 할퀴어댈 듯 날카로운 날이 서 있었지만, 멀리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면 푸른빛을 머금은 산등성이들이 서로의 어깨를 넘으며 만드는 완만한 굴곡은 기이하게도 그 평온한 바다의 파도 등허리와 포개졌다. 나는 산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에서, 인천의 소음 속에 흘려보냈던 문장들을 다시 낚아 올리려 애썼다. 검은 잉크가 번진 원고지 위로 함백산의 서늘한 습기가 배어들고, 눅눅한 결정들이 글자마다 무게를 더해갈 때면 나는 그것이 마치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비늘 돋친 말들인 양 하나하나 정성껏 매만져 문장을 쌓아 올렸다.
어느 날, 나는 마당 한복판에 서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놋그릇의 얼룩을 문지르듯, 투명한 공기를 정성스럽게 닦아내는 시늉을 해보았다. 이곳에 고여 썩어가는 결을 하나하나 매만지는 나만의 거룩한 손짓이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비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원고지의 빈칸에 글자를 박아 넣는 행위는 손바닥에 닿는 서늘한 여백을 닦아내어 길을 내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손바닥이 허공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날카로운 냉기가 손금을 파고들었고, 머릿속을 웅웅대며 부풀어 올랐던 말들은 풍선처럼 하나둘 터져 사라졌다. 손바닥에는 오직 함백산의 차가운 수분과 예미역 대합실에서 만졌던 그 단단한 적막의 질감만이 맺혔다.
함백산의 겨울은 영원히 멈춘 상태가 아니라,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는 퇴적의 과정이었다. 탄광이 입을 다물고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는 하루가 다르게 뼈대를 드러내며 삭아갔다. 길가에 처박힌 녹슨 궤도차와 서까래가 꺾인 채 주저앉은 창고들은, 누군가 일부러 지우개로 문지른 듯 풍경의 가장자리에서부터 흐릿하게 지워지고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그 폐허들 사이를 달리며, 어제 본 붉은 녹이 오늘 더 깊어졌는지, 혹은 기어코 지붕 한 칸이 마저 무너져 내렸는지를 시린 눈으로 쫓았다.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부피가 줄어드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을 지탱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더 이상 머물지 않게 될 때, 사물은 비로소 이 세계에서 뿌리째 뽑혀 나가는 것임을 나는 예미의 겨울바람을 견디며 보았다.
원고지의 네모난 칸들은 여전히 녹지 않은 성에처럼 하얗게 비어 있었으나, 펜을 쥔 손가락에서 힘을 뺄 수 있었다. 고여 있던 것들은 반드시 길을 찾아 흘러야 한다는 사실을, 예미의 젖은 흙이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함백산 꼭대기에 쌓였던 침묵이 녹아내려 예미역의 녹슨 선로 아래를 적시고, 시커먼 탄가루를 씻어내며 정선의 조양강으로 굽이쳐 흘러가는 끈질긴 여정. 그 차가운 물줄기 속에 내가 공들여 닦아낸 놋그릇의 서늘한 광택과, 차마 문장으로 뱉어내지 못한 채 속으로 삼킨 말들의 파편도 함께 뒤섞여 동해를 향해 거칠게 나아가고 있을 것이었다.
외조부의 가옥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나는 낡은 카세트 플레이어의 뚜껑을 열고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빈 테이프를 밀어 넣었다. ‘치이익-’ 하며 재생 헤드가 빈 리본을 긁어대는 마찰음은, 예미역 대합실 구석에 층층이 고여 있던 서늘한 적막의 소리와 닮아 있었다. 나는 이 소리 없는 소리 속에 귀를 담근 채, 이제는 내 안의 산그늘이 수평선으로 길게 펴져야 할 시간임을 깨달았다. 함백산의 짙고 스산한 어둠이 바다의 푸른 파동으로 몸을 바꾸는 그 거대한 전이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배낭 속에는 여전히 잉크가 말라붙은 만년필과, 어느새 예미의 큼큼한 흙냄새가 깊게 배어든 두툼한 원고지 뭉치가 묵직한 무게를 더하고 있었다.
함백산의 그늘을 뒤로하고 동해로 넘어서는 길은, 무겁게 가라앉았던 시야가 소금기 머금은 햇살에 하얗게 바래가는 과정이었다. 예미역의 눅눅한 고요가 가슴 밑바닥에 눌어붙은 시커먼 탄가루였다면, 아야진의 바다는 그 답답한 공기를 단번에 찢어발기며 몰아치는 거대한 파열음이었다. 낡은 배낭을 고쳐 매고 들어선 포구에는 갓 건져 올린 해조류의 비릿한 체취와 갯지렁이가 썩어가는 눅눅한 냄새, 그리고 방파제를 때리고 비산하는 물보라의 짠 기운이 엉겨 붙어 있었다. 예미의 건조한 쇳가루 냄새와는 전혀 다른, 삶의 끝단에서 터져 나오는 몸부림이자 제 몸을 문질러가며 사멸하는 것들이 내뿜는 독한 생명력이었다.
아야진의 해안은 유독 뼈마디가 불거진 듯한 바위들이 많았다. 수만 년의 세월 동안 파도에 깎이고 소금기에 절어버린 화강암 덩어리들은, 거대한 짐승의 화석처럼 해안선을 따라 기괴한 무늬를 그리며 엎드려 있었다. 나는 그중 가장 너부데데하고 외진 바위를 골라 자리를 잡았다. 눈앞의 수평선은 날카로운 선을 그으며 바다와 하늘을 가르고 있었고, 그 경계 위로 납빛 구름이 거대한 스크린의 배경처럼 묵직하게 흘러갔다. 예미역 대합실에서 마주했던 먼지 낀 풍경이 빛바랜 정지 화면이었다면, 이곳 아야진의 바다는 매 순간 픽셀이 요동치며 교체되는 압도적인 고화질의 연속물이었다.
. 나는 소금기에 삭아버린 바위 위에 주저앉아, 촉 끝이 뻑뻑하게 굳어버린 만년필을 만지작거렸다. 원고지의 빈칸을 마주하는 대신, 차가운 액정 화면을 문질러 내가 수집해 온 그 영상을 띄웠다. 인천의 비루한 골목과 예미의 적막을 건너온 내게, 이 십오 분짜리 파도 영상은 유일하게 매끄러운 안식처였다. 화면 속 바다에는 비린내를 풍기는 해초 찌꺼기도, 고막을 긁어대는 갈매기의 비명도, 모래사장으로 밀려온 낡은 플라스틱 부표도 없었다. 오로지 결벽에 가까운 푸른빛의 일렁임만이 정해진 주기에 맞춰 눈부시게 명멸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그토록 집착하던 ‘슈퍼 해피한 영화’의 정점이었다. 살갗을 파고드는 이 거친 해풍과 실제의 바다를 앞에 두고, 나는 왜 이토록 가공된 픽셀의 정교함에 기대를 품는 것일까.
바닷바람이 손 밑의 원고지를 날카로운 날처럼 세워 사정없이 뺨을 스쳤다. 나는 파르르 떨리는 종이를 손바닥으로 거칠게 짓누르며, 은하슈퍼 노파가 내게 던졌던 ‘작가’라는 두 글자를 혀끝으로 천천히 밀어보았다. 노인에게 글쓰기가 흙을 일구어 생명을 길러내는 정직한 농사였다면, 내게 그것은 삐뚤어진 수평선의 높낮이를 억지로 꿰맞추는 위태로운 수선 작업에 가까웠다. 이미 지워진 기억들을 억지로 소환하고, 너무 비대해진 슬픔의 덩어리들을 문장이라는 칼로 얇게 도려내는 일. 나는 아야진의 파도가 억센 화강암에 몸을 던져 하얀 거품으로 산산이 흩어지는 찰나를 응시했다. 파도는 제 몸을 부수어 비명을 지름으로써 제 자리를 증명하는 듯했지만, 그 흔적은 이내 거대한 물밑으로 기껍게 소거되었다. 바다는 기억을 쌓지 않는다. 오직 제 몸을 부수어 다시 돌아올 뿐이다.
예미의 툇마루에서 허공을 문지르던 나의 거룩한 손짓과 같은 궤적이었다. 함백산의 먼지가 사물의 윤곽을 흐리며 겹겹이 내려앉은 시간의 무게였다면, 아야진의 파도는 그 켜켜이 쌓인 태(態)를 사정없이 긁어내어 바닥을 드러내게 하는 거친 소금의 마찰이었다.
나는 아야진의 갯바위 틈새, 소금기가 응축된 투명한 바닷물을 만년필 촉 끝에 깊게 적셨다. 차갑고 짠 액체는 검은 잉크 대신 원고지 칸 속으로 소리 없이 스며들었으나, 종이 위에는 단 한 줄의 궤적도 남지 않았다. 물기는 종이의 거친 결을 따라 번지다 이내 흔적도 없이 말라버렸다. 내가 평생을 바쳐 닿으려 했던 가장 결백한 문장이었다.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비명을 삼켜버린 상태. 나는 예미역의 적막한 대합실에서 기어코 찾아내려 했던 ‘사라지는 소리’의 실체를 이제야 만졌다. 함백산의 짙은 산그늘이 계곡의 바닥을 훑어 이곳 바다에 닿았을 때, 비로소 묵직한 고요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파동이라는 투명한 몸을 입는 것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아야진항의 등대는 주기적으로 밤의 허리를 베어 물며 빛을 뱉어냈다. 빛은 수평선을 한순간 하얗게 벼려놓았다가 이내 어둠의 식도 속으로 속수무책으로 말려 들어갔다. 나는 등대가 내민 빛의 박동에 허파를 맞추었다. 들이마시는 숨에는 바다의 거친 소금기가, 내뱉는 숨에는 함백산 툇마루에서 묻어온 송진 향의 서늘한 냉기가 한데 섞여 들었다. 내 안에서 두 세계가 부딪히며 비릿하면서도 선득한 진동을 일으켰다. 문장을 쌓는 일은 더 이상 견고한 성을 짓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잘 마른나무를 태워 재로 만드는 일처럼, 더 완벽하게 흔적을 지워내고 저 순환의 물결 속에 가볍게 섞여 들기 위해 단어 하나하나를 벼려내기로 마음먹었다.
휴대폰 속 ‘슈퍼 해피한 영화’는 어느덧 멈추었고, 죽은 눈동자처럼 검게 변한 화면 위로 아야진의 별들이 서늘한 잔상으로 맺혔다. 매끄럽게 가공된 액정 속의 평온함보다, 지금 내 발등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무자비한 실제의 포말이 훨씬 더 나를 안심시켰다. 내가 이토록 거대하고 멈추지 않는 흐름의 한 귀퉁이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는 감각, 설령 내가 이대로 문장 한 줄 남기지 못한 채 지워진다 해도 이 바다는 결코 멈추지 않고 일렁일 것이라는 무심한 질감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바위에 묻은 소금기를 털어내며 가방을 고쳐 매었다. 이제는 팽팽하게 당겨진 수평선의 날 선 가장자리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시간이었다. 배낭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던 예미의 눅눅한 산그늘과 큼큼한 흙냄새도, 이제는 아야진의 소금기 밴 바람에 씻겨 수평선의 일부로 투명하게 증발할 것이었다. 나는 내가 앉아 있던 자리, 거칠고 차가운 화강암의 정수리에 잉크 한 방울 묻지 않은 원고지 한 장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밀려온 파도가 이 하얀 종이를 낚아채 포말의 일부로 흩뜨려주기를, 그렇게 바다의 거대한 흐름 속에 이름 없는 무늬로 섞어주기를 바랐다. 등 뒤에서는 아야진 등대의 불빛이 여전히 밤의 장막을 주기적으로 가르고 있었고, 바다는 제 몸을 부수고 다시 합치기를 반복하며 단 한 뼘의 잔상도 남기지 않은 채 자신을 지워내고 있었다.
나는 이제 빛도 그림자도 없는 어둠의 심장을 향해 천천히 발을 뗐다. 젖은 모래 위로 깊게 패던 발자국은 이내 밀려온 하얀 거품에 씻겨 곧장 지워졌다. 세계는 여전히 해피엔딩이었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혹은 모든 것이 이미 여기에 있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