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의 모터는 낮은 구동음을 내며 주방 바닥을 점유했다. 웅, 하는 일정한 주파수는 타일을 타고 거실의 낡은 가죽 소파를 거쳐 내 등줄기까지 성실하게 전달되었다. 그것은 소리라기보다 일체화된 진동에 가까웠다. 냉장고가 잠시 숨을 고르며 멈추면, 이번에는 천장 너머에서 윗집 남자의 보폭이 내려왔다. 그는 뒤꿈치로 바닥을 찍어 누르는 확실한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쿵, 쿵, 쿵. 발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천장의 콘크리트 골조가 미세하게 떨렸고, 진동은 공기를 흔들 새도 없이 내 명치끝을 눅진하게 울려댔다.
서른 중반, 낡은 주공 복도식 아파트에 혼자 산다는 것은 타인의 구차한 생활을 소음의 형태로 수용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벽 너머 누군가의 세탁기가 탈수 모드에서 내는 히스테릭한 떨림이나, 복도를 지나는 익숙하지 않은 구두 굽 소리는 이 낡은 건물의 철근을 타고 아주 선명한 결을 그리며 내 몸을 통과했다. 나는 소파에 누워 천장의 얼룩이 매일 조금씩 그 형태를 비트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얼룩은 여러 겹의 가로무늬를 그리며 번져 있었는데, 조명 각도에 따라 마치 거대한 음파의 기록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선의 끝단을 눈으로 좇으며 내가 딛고 선 이 공간의 견고함을 의심했다.
현관문 너머 복도에서부터 날이 선 발소리가 다가왔다. 이어서 우리집 문을 부술 듯 두드리는 타격음이 정적을 난도질했다.
쾅, 쾅, 쾅.
나는 소파에 몸을 묻은 채 잠시 숨을 죽였다. 문밖의 소란이 그대로 잦아들기를 바랐으나, 금속성 타격음은 멈추지 않고 거실 바닥을 긁어댔다. 결국 나는 지독한 피로감을 밀어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현관까지 가는 몇 걸음이 늪을 걷는 듯 무거웠다. 문을 열자 402호 남자가 서 있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였지만, 그의 얼굴에는 늘 찌든 피로와 짜증이 훈장처럼 박혀 있었다. 남자의 셔츠 깃은 땀에 젖어 눅눅했고,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밭고랑처럼 잡혀 있었다. 복도의 낡은 형광등이 지지직거리며 그의 머리 위에서 명멸하고 있었다.
"이봐요, 진짜 너무한 거 아닙니까? 애가 지금 자다가 깨서 자지러지는데, 대체 위에서 뭘 하는 거냐고요!"
그의 목소리는 복도의 습한 공기를 가르며 내 고막을 찔렀다. 그의 입술이 달싹일 때마다 뿜어지는 가쁜 숨이 내 얼굴에 닿았다. 뺨에 닿은 타인의 호흡은 뜨겁고 축축했다.
"저는 계속 소파에 누워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아니, 지금 내 귀로 똑똑히 들었는데 무슨 헛소리예요! 지금 이 집 바닥이 울리고 있다고요! 내가 바보인 줄 압니까? 당신 말고 이 집에 누가 또 있냐고!"
그의 눈 밑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는 내 어깨너머 거실을 훑었으나, 거기엔 말라붙은 배달 음식 용기와 낡은 소파뿐이었다. 그의 분노는 갈 곳을 잃고 현관의 좁은 먼지들 사이로 힘없이 가라앉았다. 사실 그가 듣는 소리는 지금 머리 위의 윗집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었거나, 혹은 옆집에서 벽을 타고 전해지는 기이한 공명일 것이었다. 복도식 아파트는 소리의 통로가 미로처럼 얽혀 있어 발원지는 대개 착각 속에 있었다.
"제 말이 안 들려요? 좀 조심해 달라고요, 제발!"
남자는 마지막 비명을 지르듯 내뱉고는 몸을 돌려 계단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 그가 내뱉은 육두문자가 거실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도저히 방 안에 앉아 있을 수 없어 밖으로 나왔다. 복도는 습한 공기와 누군가의 집에서 흘러나온 된장찌개 냄새, 그리고 낡은 시멘트가 물기를 머금었을 때 내뱉는 텁텁하고 무거운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니 노란색 차단막이 쳐져 있었다. 두 대 중 한 대가 고장 나 수리 중이었다.
[점검 중]
빨간 글자가 디지털 화면에서 무미건조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나머지 한 대는 1층에서 올라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1, 2, 3... 숫자가 느릿하게 바뀌는 것을 보며 나는 복도 난간에 기대어 밖을 내다보았다. 단지 내 상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네온사인 불빛이 비에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붉은 헬멧을 쓴 배달 기사가 튀어나왔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복도를 달려 나갔다. 낡은 운동화가 바닥을 차는 삑삑거리는 소리가 복도 끝까지 길게 뻗어 나갔다. 나는 열려 있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닫힘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복도 끝에서 배달 기사가 다시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한 손에 빈 가방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헬멧을 고쳐 쓰며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땀과 빗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닫힘 버튼 대신 열림 버튼을 꾹 눌렀다. 기사는 숨을 헐떡이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아,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연신 인사를 건넸다. 엘리베이터 안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젖은 우비 특유의 고무 냄새로 가득 찼다. 좁은 공간 안에 흐르는 침묵 사이로 그의 거친 숨소리만이 박자를 탔다. 1층으로 내려가는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나는 그의 젖은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1층에 도착하자 그는 다시 어둠 속으로 뛰어 나갔다. 빗물 고인 웅덩이를 밟는 찰박거리는 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는 6층이었다. 위층으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정의감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내 머리 위에서 끊임없이 쿵쾅거리는 그 보폭의 주인이 정말로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6층 복도로 들어서자 외벽 너머에서 들이치는 빗물 섞인 바람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복도식 아파트의 긴 통로는 누군가 내뱉은 축축한 한숨들을 한데 모아놓은 거대한 관처럼 보였다. 낡은 형광등은 일정하지 않은 간격으로 깜빡이며 콘크리트 바닥 위에 희끄무레한 얼룩을 던졌고, 그때마다 지지직거리는 고주파의 마찰음이 정적을 뚫고 내 고막 안쪽을 긁어댔다.
602호의 문 앞에 섰다. 내 천장을 매일 밤 성실하게 짓누르던 그 보폭의 출발점. 문은 지독하게 침묵하고 있었으나, 너머에서는 분명 무엇인가가 육중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둔탁한 타격음이 복도를 타고 길게 뻗어 나갔다가 돌아왔다. 대답은 없었다. 다시 한번, 이번에는 조금 더 힘을 주어 문을 두드렸다. 철제 문의 진동이 손바닥의 살집을 뚫고 들어가 팔목 안쪽까지 뻐근하게 울려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안쪽에서 도어록이 해제되는 기계음이 들렸다. 철컥, 하는 그 소리는 유난히 날카로워 귓바퀴 안쪽의 예민한 살을 신경질적으로 긁어냈다.
문이 열리고 나타난 사내의 얼굴은 내가 상상했던 ‘거구의 가해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나보다 더 말랐고, 어쩌면 나보다 더 깊은 피로의 구렁텅이에 빠진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빛바랜 셔츠 차림의 그는 초점이 흐릿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무슨 일이시죠?”
그의 목소리는 갈라진 논바닥처럼 건조했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내 머리 위를 무자비하게 짓밟던 그 소리의 주인이 이토록 가벼워 보이는 사내라는 사실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래층입니다. 밤마다 걷는 소리가 너무 심해서요.”
사내는 내 말을 듣더니 힘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비웃음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자조 섞인 미소에 가까웠다. 그는 문을 조금 더 넓게 열어 보였다. 집 안은 내 집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가구라고는 낡은 소파와 조그만 식탁이 전부인 황량함. 그런데 거실 한복판에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주변 바닥에는 두꺼운 매트가 이중으로 덧대어져 있었고, 그 위로 다시 짙은 러그가 깔려 있었다. 사내는 맨발이 아닌, 족히 5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털 실내화를 신고 있었다.
그는 그 의자에 다시 가서 앉았다. 텔레비전도, 오디오도 켜져 있지 않았다. 방 안에는 오직 냉장고가 돌아가는 낮은 웅웅 거림만이 가득했다. 사내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때였다. 쿵, 하는 육중한 타격음이 우리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울렸다. 천장이 비명을 지르듯 울렸고, 식탁 위에 놓인 물컵 속의 수면이 미세한 파동을 그리며 떨렸다. 사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천장의 어느 한 점을 응시할 뿐이었다.
나는 사내의 실내화와, 그 밑의 이중 매트와, 다시 그 밑의 콘크리트 바닥을 보았다. 사내는 걷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앉아 있었을 뿐이다. 나는 천장을 한 번, 그리고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702호가 비어 있는지 어떤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다시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을 때, 고장 난 한 대의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고 나머지 한 대는 1층에 멈춰 있었다. 나는 계단실의 철문을 밀고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을 한 칸씩 밟을 때마다 내 체중이 시멘트 바닥에 실리며 만드는 낮은 타격음이 계단실의 벽면을 타고 위아래로 길게 뻗어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자 냉장고가 다시 낮은 구동음을 내며 몸체를 떨기 시작했다. 주방 타일에서 시작된 진동이 거실 바닥을 타고 내 소파 다리를 거쳐 척추에 닿았다. 나는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냈다. 캔을 딸 때 나는 ‘치익’ 하는 소리가 평소보다 유난히 날카롭게 들렸다. 맥주는 차가웠지만, 목덜미를 타고 넘어가는 액체의 질감은 뜨거웠다.
나는 소파에 앉아 홀로 맥주를 마셨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배달 기사의 젖은 우비 냄새와 그가 빗속으로 뛰어들 때의 찰박거리는 소리를 떠올렸다. 천장에서 다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크고 선명한 진동이었다. 나는 이제 그 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묻지 않았다.
잠시 후, 현관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402호 남자의 외침이 벽을 타고, 바닥을 타고, 내 몸을 통과해 지나갔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천장의 얼룩이 그렸던 여러 겹의 가로무늬들이 어둠 속에서 눈꺼풀 안쪽으로 번져나갔다. 그것은 습기나 보폭의 흔적이 아니라, 이 아파트가 내뱉는 길고 지루한 문장처럼 보였다.
나는 빈 맥주 캔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챙, 하는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얇게 베어 물었다. 창밖에서는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