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초

by 임월

소년은 남은 밥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오늘 급식의 주인공이었던 소시지 야채볶음은 평소보다 윤기가 돌았고, 케첩의 시큼하면서도 달큰한 향이 코끝을 집요하게 자극했다. 입안에서 터지는 소시지의 탱글한 식감을 조금 더 누리고 싶었지만, 소년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선두 그룹 아이들은 이미 식판을 비우고 잔반통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운동장에서 보낼 1분 1초를 아끼기 위해 입안에 든 음식물을 채 씹지도 않고 삼켜버리는 부류들이었다. 소년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숨을 골랐다.


오늘은 평소보다 밥을 늦게 받았다. 선두 그룹보다 한참 뒤처졌다는 사실이 등에 식은땀을 흐르게 했다. 쏘야가 나왔지만 미처 다 먹지 못한 채 자리를 정리했다. 식판 가장자리에 남은 소시지 조각들과 끈적한 케첩 소스가 아쉬운 듯 매달려 있었으나 소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잔반통으로 향하는 소년의 발걸음은 빠르되, 결코 급해 보이지 않으려 자연스럽게 유지되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시선은 정면보다 살짝 아래를 향하며, 마치 도서관에 볼일이 있는 아이처럼 적당한 긴장감만을 연출했다.


점심시간이 시작되고 8분에서 12분 전후. 이 4분 남짓한 시간은 학교라는 거대한 기계 안에서 기적적으로 발생하는 진공의 구간이다. 이 타이밍에 교실로 복귀하면, 소년의 반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장담하건대 4반이 위치한 4층 전체가 적막 속에 깊게 잠겨 있을 터였다. 밥을 다소 느긋이 먹으러 가는 최후발대조차 지금쯤이면 급식실의 가장 깊숙한 자리에 착석하여 숟가락을 들었을 것이고, 운동장은 이미 축구공을 쫓는 아이들의 고함으로 포화 상태일 시점이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복도의 공기는 점차 차갑고 무거워졌다. 1층의 시끌벅적한 열기가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3층을 지날 때는 정적의 무게가 어깨를 눌렀다. 4층에 다다르자 소년의 운동화 소리가 복도 벽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소리만이 들렸다. 복도 끝 창문에서 들어온 정오의 햇살이 바닥의 낡은 왁스 칠 위에 먼지 섞인 얼룩을 길게 만들고 있었다. 소년은 4반 교실 문 앞에 섰다. 앞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뒷문은 누군가 서둘러 나간 듯 한 뼘 정도 열려 있었다. 소년은 그 틈으로 몸을 미끄러뜨리듯 집어넣었다.


교실 안은 주인 없는 책상들이 군대처럼 도열해 있었다. 소년은 몸을 낮게 숙였다. 혹시라도 창밖에서 누군가 들여다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소년은 책상 여기저기를 오가며 의자 옆에 걸린 가방들을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5학년 아이들은 대체로 부주의했다. 가방 지퍼를 끝까지 닫지 않거나, 지갑을 아예 가방 앞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어두는 식이었다. 소년은 능숙한 손길로 책상 옆에 매달린 가방들의 지퍼를 조심스럽게 벌렸다.


조금씩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가방에선 구겨진 알림장과 연필심이 부러진 필통이 손끝에 걸렸다. 두 번째 가방에선 천 원짜리 한 장이, 세 번째 가방에선 누군가와 주고받은 듯한 편지와 동전 몇 개가 나왔다. 소년은 천 원짜리를 잠시 만져보다가 다시 제자리에 두었다. 천 원은 너무 적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가져가기엔 효율이 떨어지는 금액이었고, 그것은 소년의 철저한 계산 아래에서 탈락했다.


네 번째 책상, 평소 목소리가 큰 녀석의 가방을 열었을 때였다. 빳빳한 오천 원권 한 장이 손가락 끝에 걸렸다. 소년은 그것을 낚아채 주머니 깊숙이 쑤셔 넣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만족하고 마무리해야 했다. 너무 많은 아이들의 돈이 사라지면 그것은 사건이 된다. 하지만 이따금 한두 명의 돈 몇천 원이 사라지는 것은 대개 아이의 착각으로 치부되곤 했다. 본인 혹은 선생님조차 ’어디서 잃어버렸겠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었다. 확신할 수 없으나 지금까지는 늘 그랬다.


소년은 이 모든 일을 정확히 100초 이내에 끝냈다. 자신의 엄정한 조사에 따르면, 2분이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슬슬 다른 놈들도 4층에 한두 명씩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안전을 위하면 이쯤이 나았고, 빠르게 교실을 벗어나서 운동장 혹은 도서관에 가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웠다. 소년이 반에 혼자 남아 있다가 오천 원의 주인을 마주치면 조금 곤란했다.


소년은 복도로 나와 도서관으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며 주머니 속에 담긴 오천 원권이 허벅지를 스칠 때마다 묘한 고양감이 느껴졌다. 1시간에 500원이니까, 적어도 내일까지는 즐거울 것이다. 오늘 이것으로 넥슨카드 3천 원권을 사고, 피시방의 안락한 어둠 속에 몸을 파묻을 수 있게 되었다. 소년에게는 친구가 없다. 친구라는 존재는 소년의 정교한 일상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소음이자 변수에 불과했다. 누군가와 시선을 맞추고 영양가 없는 일상을 공유하는 행위는 소년에게 하등의 가치가 없었다. 학교라는 거대한 던전 안에서 반 아이들은 그저 정해진 동선에 따라 움직이다가, 때가 되면 전리품을 내어주는 몬스터와 같았다. 가장 최근에 누군가와 의미 있는 말을 섞은 건, 며칠 전 급우가 복도에서 어깨를 툭 치며 던진 말 때문이었다.


“야, 너 한림 알지? 거기 사장님이 너 좀 꼭 보자는데.”


소년은 그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호명한다는 것은 대개 이런 식의 위협이나 추궁을 동반했다.


“…어 날 왜?”


“너 만화 빌려가서 한 달 넘도록 안 가져왔다며. 사장님이 요즘 가게 오는 애들마다 너 아냐고, 이름 물어보고 다닌대. 너 잡히면 가만 안 둔다던데?”


“…아 그거…”


대화는 늘 그런 식이었다. 소년은 이런 방식으로 용돈을 충당하면 언제까지고 피시방에 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피시방의 어두컴컴한 구석 자리에 앉아 헤드셋을 쓰고 모니터 안으로 침잠할 때, 소년은 비로소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완벽한 안전지대에 도착했음을 느꼈다. 그곳에서는 만화방 사장의 추궁도, 학교의 지루한 침묵도 소년을 건드리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때 즈음, 시끄러운 교실에 소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축구를 마친 아이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운동장의 흙먼지 냄새가 뒤섞여 교실 안은 금세 눅눅해졌다. 누구도 소년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소년은 자리에 돌아와 책상에 머리를 박고 엎드렸다. 책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소년은 고개를 살짝 왼쪽으로 돌렸다. 자신의 자리는 분단의 중간쯤이었다. 문득 뒤쪽에 앉으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선의 사각지대야말로 소년이 가장 머물고 싶은 영토였다.


옆 책상에서는 아까 소년이 천 원을 그냥 두었던 그 녀석이 지갑을 확인하고 있었다.


“어? 돈이 좀 모자란 것 같은데….”


녀석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내 가방을 뒤져보더니 혼잣말을 했다.


“아, 맞다. 어제 컵라면 사 먹었지.”


소년은 엎드린 채 속으로 비웃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기억보다 소년이 설계한 우연을 더 신뢰했다. 오천 원을 잃어버린 녀석은 아직 지갑을 열어보지도 않은 채 옆 친구와 장난치기에 바빴다. 녀석이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잃어버린 돈의 행방을 소년에게서 찾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년은 그들에게 그저 ‘거기 있는 아이’ 일뿐, ‘무언가를 하는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5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담임 선생님이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선생님은 교탁 위에 출석부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아이들이 주섬주섬 수학책을 꺼내는 소리가 들렸지만, 소년은 엎드린 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하는 대신 코를 킁킁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야, 이게 무슨 냄새냐? 반 전체에서 땀 냄새랑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데 창도 안 열고 뭐 하니 대체? 거기 창문 옆에 있는 놈들, 창문 좀 열어.”


선생님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교실 안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소년은 그 말을 듣지 못한 채 멍하니 있었다. 주머니 속의 오천 원과 방과 후의 피시방, 그리고 만화방 사장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뒤섞이고 있었다.


“야, 뭐 해? 창문 좀 열라잖아.”


옆자리 녀석이 소년의 팔꿈치를 툭 쳤다. 소년은 그제야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틀에 손을 올리자 낡은 알루미늄의 차가운 촉감이 손바닥에 닿았다. 소년이 힘을 주어 창문을 밀자, 뻑뻑하던 창문이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밀려났다.


그 순간,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한 바람이 화아아 하고 교실 안으로 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