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를 잡지 않는 예의

by 임월

나는 면허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운전대를 잡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면허가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대개 경제적인 결핍이나 게으름으로 해석하곤 하지만, 나에게 면허가 없음은 일종의 자기 방어이자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나는 내가 운전석에 앉았을 때 무엇이 새어 나올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동승자에게 어떤 감정을 쏟아낼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최근 테슬라를 타볼 기회가 있었다. 전기차가 주는 정숙함이나 자율주행 기술의 정교함보다 나를 더 놀라게 했던 것은, 차 안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무취의 감정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운전자의 감정이 동승자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내연기관의 불규칙한 진동이나 가속 페달을 밟는 발끝의 미세한 신경질이 전동 모터의 일정함 속에 완전히 걸러지는 것 같았다. 차라는 밀폐된 공간이 운전자의 정서로부터 이토록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꽤 충격적인 해방감을 주었다.


어린 시절 기억 속 아버지의 차는 테슬라와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었다. 아버지는 감정 기복이 극심한 사람이었고, 운전석에만 앉으면 그 증세는 더 나빠졌다. 가족과 함께하는 외출은 늘 설렘보다 공포로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핸들을 잡는 순간 세상 모든 것과 전쟁을 치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끼어드는 차를 향한 욕설은 기본이었고, 신호가 조금만 늦게 바뀌어도 핸들을 쾅쾅 내리쳤다. 아버지는 운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로 위에 자신의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 좁은 공간에서 아버지의 감정은 여과 없이 내게로 전이되었다. 그것은 멀미라기보다 타인의 거친 감정을 강제로 주입당했을 때 나타나는 거부 반응에 가까웠다. 아버지가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나의 위장은 뒤틀렸다.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쏟아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노골적인 기류가 차 안의 산소를 희박하게 만들었다. 목적지가 어디든 상관없었다. 나는 차만 타면 토할 것 같은 메스꺼움을 느꼈고, 차 문을 열고 탈출하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며 뒷좌석에 박제되어 있었다.


서른이 넘어서도 운전을 배우지 않은 기저에는 나 자신에 대한 깊은 불신이 깔려 있다. 내 몸에도 결국 아버지의 피가 흐른다. 나 역시 감정의 진폭이 큰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가끔 내 안에서 솟구치는 통제 불능의 짜증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운전석에 앉아 누군가를 태우고 있을 나를 상상하며 소스라친다. 내가 겪었던 그 메스꺼움을 누구에게도 물려주고 싶지 않다. 핸들을 잡는다는 것은 단순히 기계를 조작하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가장 낮은 바닥을 타인에게 전염시킬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작년, 정선의 별장에 머물며 친구들을 불러 게스트하우스처럼 운영했던 날이 있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저녁, 인천에서부터 먼 길을 달려온 한 친구 부부가 도착했다. 그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자신들이 이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고생했는지, 비 오는 산길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거칠게 설파했다. 짐을 풀기도 전이었다. 산세의 운치나 오랜만의 만남이 주는 반가움이 들어설 틈은 없었다.


나는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함께 하나로마트에 가서 장을 보자고 권했다. 이미 도착해 있던 다른 손님들과 섞이기 전에, 먼 길을 온 그들과 먼저 시간을 보내는 편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그들을 배려한 환대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제 막 도착한 자신들을 다시 데리고 빗길을 뚫고 산 아래로 내려가자는 제안은, 그들에겐 커다란 불쾌함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차에 올라탄 순간부터 친구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조수석에 앉은 그의 아내는 창밖만 응시하며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차 안은 순식간에 압력으로 가득 찼다. 친구는 운전대를 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억누르고 있는 짜증은 엔진의 진동보다 더 선명하게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커브를 돌 때마다 쏠리는 몸의 반동 속에 소리 없는 비난이 섞여 있었다. 나는 어릴 적 아버지 옆에서 그랬듯이 이번에도 애써 모른 체하며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기엔 너무 나이를 먹어버렸고, 불편한 감정은 침묵 속에 구겨 넣게 되는 나이였다.


마트 주차장에 차가 섰을 때, 나는 문을 열기 전 잠깐 숨을 골랐다. 빗소리가 지붕을 두드리고 있었다. 위장이 익숙한 방식으로 뒤틀려 있었다.


다행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내가 직접 핸들을 잡지 않고도 목적지에 닿을 수 있는 시대가 올 것 같다. 기계가 감정 없이 도로의 신호를 읽고, 나는 그 뒷좌석에서 누구의 분노도 감내하지 않은 채 창밖을 볼 수 있는 날. 아버지에게서 온 그 기질이 타인에게 전달되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고립의 날.


나는 그날을 기다린다.